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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센티아 Dec 15. 2021

분주함 속에서도 언제나 마음 챙기기

얄짜리 없는 삶

아~요즘 마음이 어쩜 이렇게도 분주하다냐!

정말이지 감당할 수 없어 미치고 환장할 듯하다.


나이 들어갈수록 더 차분하고 온유해지고, 신경 쓰는 기술이며 마음 배분하는 능력이 점점 더 좋아질 줄로 알았는데, 완전한 오산이었다. 정말이지 뇌의 능력이 쇠퇴해가기 때문인 걸까? 판단이나 직관, 인지능력의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 이전보다 유능하고 노련미가 생긴 것도 사실이지만, 다른 어떤 부분들은 확실히 퇴보한 것을 알겠다.


© cdx2, 출처 Unsplash


이를테면 소리에 매우 예민해져 내가 선별하여 안테나를 세운 소리 이외의 잡음들이 극심하게 거슬린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조용한 곳보다는 어느 정도 웅성거리는 곳에 있어야 심신이 안정되었다. 귀에 이어폰을 아예 달고 살았기에 어디를 가든 혼자 있는 곳에선 무조건 음악을 들어야 했다. 마치 드라마처럼 내 삶의 기저에는 항상 BGM이 깔려줘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클럽처럼 시끄러운 곳을 사랑했고, 힙합과 랩 음악을 숭배했다.


그런데 너무도 극적으로 이제는 그런 것들에 극혐을 느끼는 수준이 되었다. 한때는 신앙처럼 떠받들던 것들이 어쩜 이토록 거짓말처럼 단박에 싫어질 수 있단 말인지. 스스로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기이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니 그건 필시 뇌의 노화와 관련이 깊다는 깨달음이 왔다.


이제는 주변에 시끄러운 소음이 들려오면 (내 기준에서의 '소음'이다) 우선 생각이란 것 자체를 못하겠다. 클럽같이 귀 따가운 음악이 고막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곳에 가면 바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그 장소를 탈출하고 싶은 욕구를 누를 수가 없다. 예전에는 어떻게 그런 곳에서 희희낙락 대화도 나누고 했던 걸까? 더군다나 대화 도중에 누군가 끼어들어 훼방을 놓거나 흐름이 끊기면 생각의 흐름과 논리도 완전히 놓쳐버리고 횡설수설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 brucemars, 출처 Unsplash


예전에 나이 든 사람들에게서 발견했던 말하기 습관이 나 스스로에게도 나오는 것이 느껴진다. 말하는 도중 자신의 얘기에 몰입해 집중해야만 제대로 발신을 할 수가 있다. 나 스스로 무슨 소리를 하는지 신중하게 검열도 해가면서 그간의 경험과 논리와 이성을 끄집어내어 어긋나지 않게 말하기 위해 말하는 스스로의 세계에 빠져들 때가 많다. 그래서 나이 든 사람들은 남의 얘기는 안 듣고 자기 얘기만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실시간으로 동시에 잘 듣고 말하기를 하는 뇌의 어떤 능력이 떨어진 것이다. 잘 들으려면 내용을 곱씹고 찬찬히 따져봐야 하다 보니 피드백을 순발력 있게 할 수도 없다.


게다가 클래식이나 가사가 없는 잔잔한 연주곡을 들어야만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수가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2 pac이나 50센트를 들으면서도 시험공부도 하고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는데. R&B나 소울 풍의 팝을 좋아하는 내 음악 취향이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지만, 그조차도 머리가 복잡할 땐 전혀 듣고 싶지 않다. 동시에 이것저것 다 소화할 수 없게 된 용량에 맞추어 나는 이제 좀 더 은은하고 고요한 쪽을 택해야만 한다. 이런 날이 올 줄은 차마 꿈도 꿔 본 적은 없지만.

© marcelalaskoski, 출처 Unsplash


내 뇌는 늙어버렸나 보다!


이제 깨끗이 인정해야 할 듯하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 청각기능을 담당하는 신경은 전보다 쇠퇴한 게 분명하다. 대화에 있어서의 순발력과 기민함도 살짝 뒤처지고 있다. 대신 눈치와 직관은 스스로도 놀라운 경지에 오른 듯하다. 방금 만난 사람과 아주 잠깐 대화를 나눠봐도 엄청난 정보와 배경지식이 훅 들어옴을 실감한다. 편견과 일반화의 오류도 분명 작용은 하겠지만 단박에 상황과 진의 파악이 되다 보니 살아가는데 너무도 효율적이다.


척하면 척이라는 말

아는 만큼 눈에 보인다는 말

본질이라는 것


이런 것들을 볼 줄 아는 것을 이르러 우리는 '통찰'이라는 단어를 붙인다. 결국 나이 사십에 귀머거리가 된 대신 봉사가 눈을 뜬 꼴이라고 해야 할까? ㅎㅎ 얼핏 보이긴 보이는데 그걸 또 잘 말로 설명해 내지는 못하겠으니 결국엔 나 혼자 깨닫고 나 혼자 가는 세상일세. 참 아깝기도 하다. 나 말고도 이 세상을 오래오래 살다 간 선배들이 자신의 삶을 통해 얻은 그 통찰과 직관력을 남에게 이식시켜주거나 그대로 전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 말이다.


© rahu, 출처 Pixabay


개중에는 글재주와 말재주가 뛰어난 이들이 있어 제법 그 능력을 후세에게 잘 전달해 주기도 하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쌓고 쌓은 통찰력은 그들의 육신과 함께 저 땅으로 스며들고 말았다. 나 역시 내 머릿속에 든 이 생각들의 단 한 줌도 아들에게 전해줄 방도가 없다. 아깝고도 아깝다. 맨땅에 헤딩하며 다 맨몸으로 겪어서 얻어낸 지혜의 단 한 방울도 그냥 넣어줄 수 없는 이 안타까움이여.


결국 나와 함께 필멸하게 될 테지만, 어떻게든 나는 적어보려 한다. 후세에 무슨 지혜를 남겨준다거나 하는 거룩하거나 인류애적 기여의 정신은 일도 없다. 그런 건 어차피 다 스스로의 몫일뿐. 나는 그저 살아보려고 내가 살아내 보려고 적을 뿐이다. 점점 더 질서 정연하지 않아 가는 내 사고, 스트레스와 소음에 엄청나게 취약해져 가는 내 정신을 정리하며 보강해 가기 위해서다.


글로라도 써보지 않는다면 대체 무슨 수로 이 분주한 머리를 조금이라도 정리해 내고 비워낸단 말인가. 갈수록 글 쓸 시간도 나지 않고 삶의 신변잡기적인 용무에 꼼짝없이 사로잡혀버리는 내 신경. 언제나 주변의 잡음과 신호들에 시달리느라 고요하게 들여다볼 여유도 없는 내 마음을 오늘도 나는 글이라는 청소기를 돌려 말끔히 치워본다.

© OpenClipart-Vectors, 출처 Pixabay


결국 요즘 마음이 이토록 분주하고 무언가에 계속해서 좇기는 듯 느껴졌던 건 조용한 성찰의 글쓰기가 고프고 고팠던 탓인듯싶다. 쇠해가는 능력은 뭐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연연해 봐야 헛일일 뿐. 대신 새롭게 강해져 가는 슈퍼파워를 데리고 또 남은 생을 더 풍요롭게 가꿔가야겠다. 이 능력은 잘되면 독심술, 안되면 편견과 아집으로 극대화될 수 있는 양날의 검인지라, 아주 현명하게 잘 써야만 한다. 그래도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주는 이 인생의 은혜로운 법칙이 어찌 나도 감사한지.


아주 오랜만에 나는 인생에 꾸벅 절하며 참 감사하다고, 얄짜리없이 참 공평하기도 하시다고 대뇌이고 또 대뇌였더랬다.


참 얄짜리 없으셔~ 인생 당신.

덕분에 헷갈리지가 않으니 참 감사하긴하네요~ 

반드시 하나 잃어야만 하나 준다는.


© bel2000a,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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