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희망퇴직 한 남편, 등 떠민 아내
남편의 하루 일과는 아직 구체적으로 물어보진 못했지만 새벽에 일어나는 거 같다. 요즘은 새벽4-5시에 일어나는 거 같고, 오늘은 새벽 4시반에 일어났다고 한다. 압박감과 스트레스로 잠이 안오는 건가 싶다. 새벽에 일어나서 무와배즙을 달여서 우리셋이 먹을 즙을 해놨고, 노트북으로 필요한 법인 서류 작업을 하고, 아이들 등원가방을 챙겨놓고, 등원을 위해 차를 가져온다. 나는 6시반쯤 일어나 씻고 내 준비를 했을 뿐이였다.
남편이 새벽을 이렇게 분주하게 보내는게 예전에는 좋아보였는데, 이제 무거워진 어깨로 저렇게 하니까 사실 좀 두렵다. 궐기의 3년이라고 했는데, 고생 3년 하자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남편에게 너무 큰 짐을 짊어지게 한건 아닌지 좀 두렵다. 남편은 원체 힘들다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고, 책임감이 있으며, 감정을 쉬이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라, 힘들지 않을까 걱정이다.
남편은 2주에 한번 격주보고를 해주기로 했다. 해달라고 말을 웃으며 하긴 했지만 그게 남편에게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도움이 되길 바란다. 나도 보고 해야하나? 너무 연구소장처럼 보고만 턱턱 받는 느낌이다. 남편은 회사를 나와서도 나한테 보고를 하는구나;;
운동도 하고 좀 루틴하게 삶을 가꾸라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남편도 나의 조급필터가 씌워진거 같다. 계속 1순위를 월급만큼벌기, 월급3배이상 벌기로 목표를 잡고 있으니. 내가 종용한거나 마찬가지다. 계속 과한대출에 의한 생활비 부담을 호소했고, 현실은 이렇다며 비어진 통장과 앞으로의 학원비 생활비등 추가 운영비를 통보했으며, 남편에게 남편 능력으로는 월급은 가뿐히 넘고 월 몇천 벌 수 있다는 무조건적인 가스라이팅을 시전했다. 그래서 남편 목표 1 순위가 독립이었는데, 그 독립안에서도 경제적 독립이 간절해진거 같다. 와이프가 옆에서 계속 저렇게 말하고 있으니.
하지만 당장 우리는 월말결산을 해야한다.
매달 하는건데 11월을 못했다. 비상금도 바닥이며, 다음달운용계획도 세워야한다. 다음달부터는 남편 월급이 없기 때문이다. 예상으로는 실업급여와 버티기로 1월을 나야하는데, 1월에 단독주택 입주를 앞두고 있어 뭔가 자금흐름이 복잡할수도 있다. 오늘이나 내일 월말결산을 하자고 해야겠다. 화상회의로. (남편과 팀원같다ㅎ)
새벽의 남편에게
지금도 너무 잘하고 있다고, 이렇게 매일매일 꾸준히 잘 하면 되니까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무리하지 말라고도 말해주고 싶다.
열심히 일하면 무리가 될 수도 있겠지. 그런 순간이 오는건 당연하다. 하지만, 힘뺄힘줄. 힘을 줘야하는 순간이 오면 그렇게 할 때 하면되고, 평소에는 오히려 루틴과 효율챙기는게 중요하다는거. 남편은 누구보다 잘 알것이다. 혈기왕성한 20대 때보다는 조금 더 고민하고 생각하고 겪어온 우리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