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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누구는 꼰대가 되는가

이제 더 이상  라떼를 이야기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꼰대"란 권위주의에 젖은 어른이나 교사를 비하하는 은어로 최근에는 꼰대질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하지만 상황이나 대상에 따라 조금씩 그 의미와 쓰임이 다르다. 그중에서도 영국 BBC방송에서 소개한 '자신이 항상 옳다고 믿는 나이 많은 존재로 늘 자기를 제외한 다른 사람은 잘못됐다고 여긴다'는 정의가 개인적으로 가장 와 닿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꼰대란 ‘고리타분한 연장자’라는 의미를 넘어서 '너는 모르고 나만  안다고 생각해서 소통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재정의하고 싶다. 그러고 보니 최근 들어 꼰대력을 테스트하는 다양한 검사들도 생겨나고 벌써 수년째 꼰대 담론이 형성되어 '꼰대인턴'이라는 드라마까지 제작된 걸 보면 모두가 공감하는 주제는 확실한 것 같다.  


드라마 초반,  리얼리즘의 절정을 보여준 김응수의 꼰대 연기                                    이미지 출처: 스포츠 동아(2020,05,08.)


  나도 직장인인지라 조직 안에서 이른바 꼰대로 통하는 상사와 함께 일하고 있는 중이다. 상사의 지난 업적들은 참으로 대단했다. 어느 때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기도 하고, 어느 때는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한 번에 풀어버리는 명석함을 지닐 정도였으니 그의 문제해결력은 매우 탁월 수준이었던 것 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렇게 몇 년 간을 함께 일하다 보니 자연스 존경하는 마음 생겼다. 그러나 해가 더해갈수록 왜 그러는 건지 상사는 자꾸만 급속도로 지독한 꼰대가 되어가고 있었다. 어떤 때는 벌컥 화를 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외부인들과 함께하는 회의에서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는 탓에 내부 사람인 내 얼굴 붉힌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심지어 어느 때는 외부에서 진행하는 중요한 행사에서도 자꾸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이처럼 상황에 적절하지 않은 상사의 언행에 나는 꽤나 큰 실망을 하게 되었다.


  두어 달 전에는 새로운 현안과 관련하여 그동안 작성한 제안서를 검토받은 적이 있었다. 상사는 내용 전체를 보기도 전에 첫 문장부터 빨간 줄을 찍 그으며 "이 외부 회의에 들고 가면 앞에서는 웃지만 뒤에서는 욕한다."라며 빈정거렸다. 처음에는 아직 내가 역량이 부족해서 아니라고 하시는 말씀인 건가 하며 더 많은 자료들을 찾아 분석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더 큰 배신감을 느끼는 지점은 반성하기 위해 더 많은 최신 자료들을 찾아보면 볼수록 상사가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는 때였다. 상사에게 가진 신뢰만큼 스스로를 반성했던 나 스스로가 더 밉고 화가 났다. 차라리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꼰대가 꼰대 짓한다."라며 욕이라도 실컷 할 걸 괜히 자책하면서 시간만 허비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꼰대짓'을 하는 '꼰대'에게 사람들이 분노하게 되는 지점은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항상 옳다.'라는 그들의 오만함에서 비롯된 나태함이라고 생각한다. 나 같이 신입도, 관리자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있는 직장인들은 유사한 업무만 수년 째 한 사람들이다. 업무가 어느 정도 손에 익었다는 말이다. 게다가 상사처럼 전체 업무계획하고 점검하는 게 아, 구체적인 실무를 끌고 가다 보니 어느 때는 상사보다 더 세밀한 내용들을 파악하는 경우도 많다. 나와 같은 직급의 가장 큰 답답함은 작년과 올해는 다르고 더욱이 '라떼'와 지금은 더 많이 다른데 상사의 시계는 자꾸 10년 전에만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업무 추진을 위하여 별도로 자료를 찾아 공부하지 않는다. 그러나 애매한 직급의 사람들은 위로는 상사에게 지적당하지 않고 아래로는 신입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한다. 모두가 다 그렇지는 않지만 작년의 데이터와 올해의 데이터의 차이, 10년 간 사업의 추이 등 맡은 업무를 추진하기 위 준비되어 있다. 이 같이 애매한 직급의 사람들에게는 역량은 있지만 결정권은 없어 더 많은 괴로움이 따른다.   


  언젠가 '이케아 세대 그들의 역습이 시작됐다.'라는 책을 본 적이 있다. 책에서는 교육 수준이 높고 스펙이 뛰어나지만, 불안정한 고용으로 미래를 계획하기 힘든 78년생 전후의 세대를 일컬어 '이케아 세대'라고 말한다. 나 또한 기성세대와 Z세대 사이에서 갈팡질팡 혼란스러운 이케아 세대다. 그저 대학만 나오면 서울에 아파트 한 채는 뚝딱 나오던 라떼시절과는 달리 아무리 치열하게 일해도 수도권에 몸 하나 일 공간 하나 마련하지 못하는 비운의 세대다. 위로는 상사의 꼰대질과 밑으로는 90년생들의 눈치를 봐야하 낀 세대의 고충이랄까. 애매한 위치인 이케아 세대의 직장생활 어려움에 대해 꼭 한 번 포스팅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었더랬다.


   이를 위해 관련 자료를 찾다가 '꼰대'와 '꼰대질'을 하는 심리적 접근에 대한 글귀를 하나 읽은 적이 있다. 그 글은 '인지부조화 이론'에 근거하여 꼰대가 되는 과정을 좀 더 설득력있게 접근한다.


중년의 남성 A는 나이가 들자 여러모로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낀다.
외모와 체형은 가시적으로 퇴보했다.
센스도 떨어지고 유머의 질도 낮아진 것 같다.
전반적으로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욕망은 그대로다.
젊은 사람들처럼 멋진 외모와 체형을 갖고 싶다.
적절한 타이밍에 세련된 농담을 던져 좌중을 휘어잡고 싶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이것은 매우 어렵다. 전형적인 인지부조화 상태인 것이다.
(남보람, 2020)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이론에서는 인간은 일반적으로 태도와 행동 사이에서 일관성을 유지하고자 하는데 이러한 일관성이 유지되지 않을 때 경험하는 인지적 불편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누구나 이 같은 불편감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를 직장생활에 비유해보자면 이러하다.

  

상사는 자꾸만 밑에서부터 자신의 자리를 치고 올라오는 젊은 세대의 패기와 역량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잘 해내고 싶은 욕심과 인정의 욕구 위협 받는다. 그리고 이러한 욕망이 이제는 현실화될 수 없음을 직감하고 불안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진정한 '어른'과 '으르신'의 차이가 명백히 드러난다. 이같은 '인지부조화를 수용하고 자기 성찰을 통해 나 또한 성장을 위해 나아갈 것을 결단'하거나 '계속해서 스스로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서 상대만 끌어내릴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러한 결정으로 인해 누군가는 인정받는 롤모델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모두가 외면하고 싶은 꼰대가 되기도 한다.

 

  한편, Hoerr(2006)은 모두가 존중하는 리더는 비전을 수립하는 것을 넘어서 한 명, 한 명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관계중심적 행동을 한다고 한다. 반면에, 관료적인 리더는 그저 규칙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에 집중한다고 한다. 앞서 말한 바처럼 꼰대는 자신이 항상 옳다고 믿기 때문에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을 마음이 없다. 그리고 스스로의 전성기에 머물러 그저 그 당시 기준들을 현재에까지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겸손'한 태도와 이를 통해서만 발휘될 수 있는 상호 간의 '소통'일 지도 모르겠다. 최근 들어 조직이론에서 겸손에 대해 다양한 정의들이 새롭게 만들어지며 해당 연구 또한 확장되고 있는 추세다. 다양한 연구들에서 공통적으로 밝히는 겸손의 핵심 개념은 타인 지향적이며, 개방적이고, 실수를 인정하고자 하는 의지가 얼마나 있는지에 대한 내용들이다. 그리고 이 꼰대들에게 부재한 요소들이기도 하다.


  연차가 쌓이면 쌓일수록 느끼는 것은 리더에게 바라는 능력 뛰어난 업무 역량만은 니라는 점이다. 그저 조직원들을 품을 수 있는 넓은 아량과 그들을 신뢰하는 태도를 지녀야만 부여할 수 있는 임파워먼트(Empowerment)가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라떼만 늘어놓는 꼰대들에게 말하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업무에 대한 처리속도나 언어 혹은 비언어적인 이해능력 떨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그리고 무턱대고 그러한 상사들을 대놓고 무시하거나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도태될까 봐 두려워 라를 강조하고 아집만 부린다면 스스로가 가장 두려워하는 그 끔찍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서로를 항한 배려를 기반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해야 할 일들을 묵묵히 할 수만 있는 환경을 마련해준다면 지금과 같이 꼰대, 꼰대질, 꼰대력과 같은 신조어들은 더 이상 생기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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