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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춘의한조각 Aug 18. 2020

일확천금이 생기면

지지리 궁상 타이틀은 이제 안녕 거대한 파티를 해야지

나의 유년기는 앵두나무가 있는 예쁜 단독주택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기존에 살던 집을 허물고 새로 집을 지었다. 나만의 방이 생긴다는 설렘으로 집이 완성되어가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넓은 마당이 있는 2층짜리 단독주택으로 1층과 2층에 내 방이 두 개나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부자'라고 했다. 중학생 때 학원 수업이 끝나고 원장 선생이 학원차로 집에 바래다주었는데, 우리 집에 나를 내려줄 때 학원 아이들의 '우와 집 좋다'라고 외치던, 그 부러움 가득한 눈빛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어렸을 때부터 분명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늘 돈에 제약을 받았다. 부모님은 돈 문제로 자주 싸우셨다. 번듯한 집과 자동차, 직장이 있었지만 돈에 예민했다. 사업이 잘 되지 않았던 건지 아빠의 한숨이 늘어가던 추운 겨울, 우리 집은 경매에 넘어갔고 집행관들은 갑자기 찾아와 물건을 다 밖으로 옮겨버렸다. 친구들과 주고받았던 편지, 남몰래 쓰던 일기장, 가족사진, 취미로 수집하던 옛날 돈과 우표들까지 내 소중한 물건들을  잃어버렸다. 추억도 행복도 그때 같이 잃어버렸다. 가족들은 이산가족이 되어 뿔뿔이 흩어졌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망연자실했고 이런 상황을 만든 아빠를 원망했다. 이후 연락도 하지 않았고 내 물건을 찾으러 가지도 않았다.


학교로 돌아와 독하게 살았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으고, 악착같이 성적을 올려 장학금을 받았다. '하루아침에 모든 게 없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늘 불안했다. 다음 학기 등록금 이상의 돈이 계좌에 들어 있지 않으면 초조했고, 자격증 시험공부를 하는데 문제집을 사는 것이 아까워 학교 도서관에서 몇 해가 지난 문제집으로 공부를 하기도 했다. 인터넷이나 지하상가에서 산 옷을 아껴 아껴입었다. 생수를 사 먹는 것도 아까워 물병을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학교 정수기에서 물을 담아서 다녔다.


대학을 졸업하고 아빠는 하늘나라에, 우리 가족은 작은 아파트에 다시 모였다. 나는 대기업에 취업하고 결혼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불안하고 그래서 알뜰하다. 남들 다 있는 명품가방 하나 없어 하나쯤 장만하고 싶은 마음에 명품백을 저렴하게 판다는 여주 아웃렛을 한 시간 반을 달려가 두 시간 고민을 하고 그냥 집에 돌아온다. 그리고 다른 아웃렛에서 산 6만 원짜리 핸드백 하나 주야장천 들고 다닌다. 여전히 인터넷으로 옷을 구입하고 이런 옷을 아껴 5년을 넘게 입는다. 이런 나를 보고 남편은 알뜰하고 생활력이 강하다는 의미로 '가성비가 좋다'라고 표현한다. 나는 여전히 이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인다.


“일확천금이 생긴다면 뭐할래? 우리 천억이 생겼다고 생각하고 즐거운 망상 한번 해보자"


친구가 말했다. 순간 생각했다. 상사의 벗어진 머리를 한 대 빡! 때리고 회사를 뛰쳐나와야지. 멋있게 사원증을 던져버리리. 그리고 목 좋은 곳에 상가건물을 사서 다달이 월세수익을 얻어볼까. 아니 제대로 호강시켜 본 적 없는 엄마를 모시고 호화로운 세계일주를 해보는 건 어떨까. 친구가 지난주에 샀다는 루이뷔통 가방을 나도 하나 장만해보자. 아웃렛에서 얼마가 저렴한가 고민만 하다 돌아오는 일은 없겠지. 서울의 백화점 명품관으로 가서 신상을 사자. 지지리 궁상 타이틀은 이제 내 인생에서 안녕이다.


행복한 망상을 문득하다 우리 가족들의 추억이 담긴 그 앵두나무집을 갖고 싶어 졌다. 지금의 집주인이 얼마를 불러도 나에겐 천억이 있으니까 살 수 있다. 추억이 있는 우리 집에 다시 들어가서 아픈 기억은 없애고 다시 행복한 추억을 쌓고 싶다. 나는 그 집에서 처음으로 반에서 1등을 했고 원하는 대학에 가장 먼저 합격했던, 울고 웃던 모든 시간이 담겨 있다. 내게 생긴 천억으로 아빠가 계신 뒷 산도, 아빠가 마지막으로 계셨던 공장도 살 거다. 아니 내가 살았던 동네를 다 사버려야겠다. 앵두나무 집과 아빠의 공장, 뒷산은 모두 같은 동네에 있는데 가슴 한 구석이 아려서 아직도 잘 가지 못한다. 동네를 다 사서 예쁜 꽃과 나무를 심고 나만의 정원을 만드리라. 그곳에서 가족들을 다 초대해 거대한 파티를 해야겠다. 파티에 온 손님들에게 명품 가방을 하나씩 초대 선물로 드려야지. 생각만 해도 즐겁다.  


분명 친구가 나에게 '행복한 망상'을 하자고 얘기했는데 왜 상상을 하면서 슬퍼졌는지 모르겠다. 이건 새벽 감성 탓이겠지.



- 일확천금이 생기면 뭐할래? 즐거운 망상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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