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참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인 내가, 누구보다 친절하고 잘해야 하며 다른 직원들을 이끌어가는 리더십까지 발휘해야 한다.
관계에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환자라는 집단은 특히 그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나는 보조배터리 같다.
고속 충전도 안되고 유선 충전만 되는 불량인 충전기로 밤새 어떻게든 채워놓았는데 직장에 들어서는 순간 매우 빨리 닳기 시작한다. 그래서 최대한 비축하고자 한다. 다른 관계는 거추장스럽기에 직원들과의 대화는 필요 이상으로 하진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내게는 해야 할 많은 말들이 있다.
언제 닳았는지도 모르게 닳아서는 6평 남짓한 자취방에 들어선다.
오늘의 일을 누군가 물어봐줬으면 좋겠다. 누군가 내 일상을 궁금해해 준다는 것. 기적 같은 일, 애정 어린 눈길이 떠오른다. 단조로운 내 삶 속에서 조금씩 다른 부분들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 그게 가능해지는 순간 특별한 관계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엄마가 떠오른다. 뭐하니? 일 끝났니? 밥 먹었니? 늘 이런 물음으로 통화를 시작한다. 인턴도 아니니 퇴근은 시간 되면 하는 거고, 밥은 원래 안 굶고 잘 챙겨 먹는 건데도 물어봐준다.
가구랄 것은 침대 하나뿐인 방안에 누워있다. 물건들이 엉덩이를 비집고 제 자리를 주장하다가 튀어나온 부분들이 고개를 내민다. 6평 남짓 부엌과 방이 구분되지 않는 방 하나. 이 공간 속에서조차 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