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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샛별 Jul 16. 2020

14. 당신에게 '장애'란?

'못' 듣는 엄마가 아닌 더 '잘' 보는 엄마로 성장하기

어쩌면 이 질문을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난감한 이유가 뭘까?

어느 날 당신에게 물어오는 질문은 참 간단한데도 왜 고심해야 할까?      

“당신에게 ‘장애’는?”     


어느 오후의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사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았던 질문이었다.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다. 다만 “듣지 못해서 불편한 점이 뭐였을까요?” “청각장애로 인해 어려웠던 점은 뭐였을까요?”식의 질문은 수없이 받았지만 정작 ‘장애’가 나에게 무엇일까를 물어본 사람이 거의 없었다. 막상 그 질문을 받았을 때, 내가 수어로 대답한 답변은 이랬다.     

“이해하는 방법”     


사실, 본인의 삶이 어떤가, 본인이 어떤 사람인가를 스스로 알아야지만 타인에게 본인을 이야기해주는 데에 수월한 것처럼 내 ‘장애’가 어떤 정도인지, 장애를 통해 느꼈던 삶의 차이가 무엇인가, 그리고 장애가 없는 사람과 달리 내 장애로 인해 어떤 변화를 겪었는가 등의 다양함을 담았던 답변이었다. 물론 그 답변을 들었던 사람들은 아마 금방 이해하는 데에 어려웠을 것 같았다. 눈으로 봐도 금방 알아챌 수 있는 외면적 장애가 아니다 보니, 미처 소리를 듣지 못해 지나치는 나를 판단하여 오해해 버리는 타인과의 소통에서 사각지대를 느끼는 나에게 ‘장애’는 처음엔 참 어렵고 받아들이기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초등학교 때 친구의 부름에도 반응하지 않던 나에게 뛰어와 등을 찰싹 때리던 그 친구의 표정이 알려줬던 ‘장애’의 의미가 참 부끄럽고 어디 쥐구멍이 있다면 바로 숨고 싶었을 정도로 와 닿았다. 그렇게 몇십 년 동안 ‘장애’를 나의 삶에서 떼어낼 수 있다면 떼고 싶은 존재로 각인시키며 살았다.   

일반학교에서 음성언어를 사용하는 친구들과 다르게 나는 외로운 싸움을 했다.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하느냐가 중요하지 않았고, 그저 친구들이 듣는 수업내용의 반이라도 듣기 위해 부단히 애써왔다. 그런데도 그 노력의 결과는 늘 먹구름이었다. 그 먹구름 사이로 나는 축 쳐져 있었고, 학습의욕은 날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잊고 싶었던 시간은 언제였을까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망설임 없이 대답할 것 같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교육 현장에서도 제대로 된 ‘배려’를 배우지 못했다. 맨 앞자리에서 내 눈을 혹사시켜야 했다. 다른 친구들은 20살이 되어 안경을 벗어던지고 렌즈나 라식수술을 하면서 대학생 새내기가 됐다고 아주 외모를 꾸미기에 급급한 사이에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 맨 앞자리에 앉아 집중해야 하다 보니 시력이 시간이 흐른 만큼 많이 나빠져 20살 때부터 안경을 쓰게 됐다. 대학교 때부터 안경을 쓰다 보니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시력이 나빠 안경을 쓰는 건 익숙한데
청력이 나빠 보청기를 쓰는 건 왜 장애로 볼까?”


대학교에서 ‘수어’를 배우고 농인 친구들을 만났다. 농인은 청각장애인과 다른 점이 ‘수어’를 자신의 주 언어로 받아들이며 소통을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청각장애인은 잔존 청력을 보완하는 청각 보조기기(보청기나 인공 와우)를 통해 음성언어를 사용하거나 필담 등의 소통을 하며 살아간다. 나는 ‘수어’를 만나기 전까진 ‘청각장애’를 받아들이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도 ‘수어’를 받아들이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기껏해야 한 두 달? 비로소 내 언어를 찾은 기분에 휩싸였다. 그렇게 '수어'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순간부터 내 '장애'를 이해하게 됐다. 이해하면 할수록 타인에게 내 장애를 설명하는 데에 훨씬 마음의 무게가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문장 하나만 바꿨을 뿐인데 느끼는 마음은 전혀 다르다.

"저는 청각장애인입니다."
저는 수어로 소통하는 사람입니다.


타인에게 '장애 유무'를 밝혔을 때 비로소 내 장애가 드러나면서 타인도 내 장애를 이해하는 시간이 주어지게 된다는 것처럼 나에게도 스스로 이해하는 방법을 깨닫는 데에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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