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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순 Dec 12. 2019

엄마도 미안했어(2019.9.6 )

고마워서

예년보다 급하게 다가오는 명절이 익숙하지 않은지 방송에서 자주 나오는 경제뉴스 때문인지 넓은 시장 안은 한산 하다. 예전 같으면 미리, 대목장을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번 추석명절은 왠지 썰렁한 느낌이다. 바쁘게 찾아오는 한가위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한 가을은 모든 과일들의 얼굴에서 쓸쓸한 풋 냄새가 나도록 그냥 내버려 둔다. 빠르게 서두르면 큰 결실을 이루지 못한다는 교훈을 주는 듯, 때가 될 때까지 여유 있게 기다리라는 것 같다. 좌판에 진열되어 있는 파란빛의 대추알, 상자 속의 설익은 사과 얼굴은 마치 사회 초년생이 어설프게 입술에 바른 자신감 없는 립스틱 색깔이다. 촌스럽다. 설익은 붉은빛은 한가위를 맞이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말한다.

     

인생에서 최대의 선물이 찾아올 때가 다가온다. 충분히 열 달을 기다리면서 하루하루를 조심하면서 보낸다. 자꾸만 걱정이 된다. 내가 우리 아이들을 잉태했을 때 보다 걱정은 더 많아진다. 산고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미의 자리에 도전했다. 용감하게도 세상의 모든 여자라면 다 아이를 낳는 거니까 나도 못 낳을 거 같지 않았다. 출산의 고통을 겪어보니 세상의 어떤 아픔보다도 클 것이다. 내가 산통을 심하게 아파봤기에 안타까운 마음은 더 짙어진다.

     

자식의 혼인날, 내가 살아보았기에 나의 결혼 생활보다 아들을 향한 마음은 더 간절했다. 아이들을 양육해보았기에, 그것이 어떤 맛인지를 난, 너무도 간절하게 알고 있다. 세상 밖으로 나올 아기를 생각하니 신께 바라고 원하는 기도문은 어제보다 오늘, 더 길어진다. 

     

어느 날은 하루에도 몇 번씩 며늘아기와 태어날 아기를 위한 기원을 되뇐다. 예정일이 다가올 때쯤은 마치 국어책을 읽는 거 같다. 기도문은 입안에서 웅얼거림도 없이 재빠르게 소리를 낸다. 그중 가장 바라고 원하는 마음은 순산을 기원했고, 태어나는 예쁜 아가의 건강을 소원했고, 우리 아가가 성장하면서 ‘내 아들, 내 며느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기를 바라고 원했다. 그렇게 될 것이라고 완벽하게 믿었다. 간절한 바람은 이루어졌다. 첫 아이인데도 짧은 산통만 지나간 채 건강한 아들을 낳았다. 고맙게도 순산을 했다. 할미의 마음을 알았는지, 산통을 겪는 아내를 바라보는 ‘제 아비’의 다급한 마음을 헤아렸는지 엄마를 힘들게 하는 산고의 고통을 덜어주며 태어났다. 감사하다.

     

요즈음은 산모도 아이도 정해진 시간에만 볼 수 있다면서 휴대전화 속으로 아들은, 새 생명의 사진과 함께 “벅차오른다는 말의 의미를 처음으로 실감했다.” 는 감동을 덧붙인 채 만날 수 있는 시간을 안내한다.

 

초보 할아버지, 초보 할머니는 들뜬 마음에 첫 만남을 위해 병원으로 향한다. 드라마 속에서만 보던 깔끔한 유리창 안으로 아기를 보여준다. 반짝반짝 빛나는 새 생명이다. 예쁘다. 바라보는 눈빛은 머무른 채 움직이질 못한다. 시절이 좋아서인지 어미 뱃속에서부터 좋은 환경이었는지 새벽에 태어난 아기는 뽀얗고 야무져 보인다. 인사를 하려는 듯, 살짝 눈을 뜬다. 쌍꺼풀이 지어진다. 쌍꺼풀 없이 밋밋한 얼굴을 가진 나는 너무 신기하다. 남편도 잘 생겼다면서 대견하다고 한다. 나처럼 아기 만나기를 기대하며 옆에 서있는 아주머니가 말한다. 

“쌍꺼풀이 지네요. 아기 참 예쁘네요.” 

신바람이 난 초보 할머니는 “이쁘죠. 너무 잘 생겼죠.” 

내 기쁨의 말에 빨리 대답을 하란 듯이 신이 나서 재촉한다. 

“네, 너무 예쁘네요. 진짜 잘 생겼네요.”

     

오늘 새벽에 할머니가 되었는데 벌써 중증장애가 시작된다. 온몸으로 빠르게 번져나가는 푼수 세포는 때와 장소를 구별하지 못할 거 같은 예감이 든다. 

‘주책에는 약도 없다는데’

휴대전화 속에 있던 아이는 몇 시간 만에 더 예뻐져 있다. 신비롭다. ‘순간, 신비라고 이름을 짓자고 할까.’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과 나, 누가 들으면 주책바가지들이라고 할 것이 분명하다. 

“예쁘다고, 또 이쁘다고. 인물이 훤하다고.”

서로가 손뼉까지 쳐가면서 한참을 얘기한다. 남편과 나. 부부가 된 이래, 처음으로 백 퍼센트 만장일치, 일심동체가 이루어진다.

     

손자 낳으면 예쁘다고, 정말 이쁘다는 말들을 많이 들었다. 

‘설마, 목숨 걸고 낳은 내 자식이 예쁘지, 손자가 더 예쁠까’ 이해가 가질 않았다. 천성이 따듯하지 못한 마음을 가진 나는 부정을 한 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근데, 오늘 너무 신기하고 예뻐서 부정은 사랑을 품은 긍정으로 빠르게 바뀌어 가고 있음을 느낀다. 새로운 세계에 도착한 초보 할머니의 ‘은밀하게, 눈에 띄게’ 행동하는 푼수 짓을 보고 사람들은 “맞지. 예쁘다는 거 진짜 맞지?” 하고 물을 것이다.

‘그러게요, 너무 예뻐요. 진짜 예뻐요. 손자가 예쁘다는 거 진짜 맞는 말이었어요.’

     

손자를 처음 만나고 와서 써 놓은 글이다. MBC 라디오 여성시대 홈페이지를 찾는다. 사연을 보낸 지 4일째 되는 날 익숙하지 않은 전화번호가 빨리 받아 달라고 보챈다.

“여보세요.”

“이 영순 선생님이신가요?”

“네. 맞는데요.” 

“여성시대입니다. 보내주신 손자 얘기가 그림처럼 그려지네요. 손자 보신 느낌을 목소리로 청취자들께 전달하고 싶은데요. 

     

방송이 연결된다. 텔레비전 속에서만 보았던 익숙한 얼굴, 라디오로만 듣던 다정한 목소리가 말을 걸어온다. 손자가 태어난 후 변화된 일상을 얘기해 달란다.

“손자가 태어나서 행복하고 새 생명에 대한 기쁨도 크지만요. 그보다는 아들이 결혼하고 아내를 예쁘게 바라보는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저는 더 흐뭇합니다. 제 아이를 낳고 예뻐하는 모습이 더 행복합니다.

     

“손자를 한마디로 어떻게 표현하고 싶으신가요?”

“꽃향기 보다 더한 냄새인 거 같아요.”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아들, 색시를 예쁘게 바라보는 네 모습이 엄마는 흐뭇하다. 아들아. 미안했어. 왜 지난날 어린 너희들의 마음을 읽지 못했는지 부족했던 엄마는 손자를 보고 나서 이제야 철이 드는 거 같아. 승현이를 처음 볼 때 너를 낳던 날, 네 모습이 보이면서 젊은 날의 내가 보이더라.

야속하게도 너희들을 양육하면서 못 해줬던 아쉬움만 기억이 나는 거야. 순간, ‘아들에게 못다 한 마음을 손자를 통해서 대신 갚아야겠다.’고 다짐했어. 승현이가 커갈 때마다 너희들의 어릴 적 모습과 겹쳐지면서 엄마는 미안해할 거 같네. 승현이를 보면서 두 아들들의 어린 시절을 많이 그리워할 거 같아. 지난날 푸근하지 못했던 미안한 어미였다는 걸, 손자를 보고 이제야 깨달은 엄마가 많이 미안해. 아들, 우리 더 잘살아 볼까.”

     

듣고 있던 진행자(서 경석)는 울컥한다면서 

“아드님이 이 방송을 들으시면 우시겠네요.” 

사연을 읽었던 여성 사회자(서 영은)도 같은 느낌이었는지 촉촉한 목소리로 울컥이란 표현을 또 한 번 한다. 

     

남편의 생일이다. 태어난 지 75일 밖에 되지 않는 손자를 안고, 외식은 힘들 거 같다. 이맘때 즈음 최고의 맛을 내는 방어회를 아들은 손 크게 사 온다. 커다란 상을 펴놓고 탱탱한 생선살이 가득 담긴 접시를 가운데 놓은 채 풍성하게 저녁 밥상을 차린다. 

할아버지 생신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축하한다는 듯이 힘껏 발장구를 쳐대며 두 손을 휘젓는 모양은 카메라 속에 담아 놓고 싶은 아름다운 춤이요, 옹알이를 하는 목소리는 언제까지라도 끝없이 듣고 싶은 싫증 나지 않는 노래 가락이다. 흥이 넘쳐나는 우리 가족 모두는 손자의 춤과 노랫소리에 추임새를 맞춰가며 기쁜 술잔이 바쁘게 오고 간다.

아들은 아비가 되던 순간의 마음을 얘기하고 남편은 35년 전, 태어났던 아들을 앞에 두고는 뒤늦은 미안함을 말한다. 사내는 아이를 낳는 병원에 있으면 안 된다면서 집에 돌아가 있으면 소식을 전해준다는 말에 다소곳이 바로 실행에 옮기는 남자가 보인다. 하얀 얼굴빛을 띠고 있는 말 잘 듣는 소년처럼 돌아서는 뒷모습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서운함을 지금까지 나만이 간직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남편도 아마 ‘미안했던 지난날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만감이 교차하는 기쁨 속에 서글프기도 했어요.”

“왜 슬퍼”

“우리 승현이 낳고 부모님 생각을 많이 했어요. 어느새 제 아이가 이렇게 태어나고 보니 부모님이 늙어졌다는 생각에 슬퍼지더라고요.”

아들의 허벅지를 두드리며 

“맞아. 그런 속 깊은 마음이 들을 수도 있지. 기특하네. 엄마가 늙어져야 이쁜 손자가 태어나고 성장하는 거지. 자식은 부모의 젊음과 맞바꾸는 거야. 마땅히 늙어야 하고 당연히 새싹은 파랗게 돋아나는 것이지. 부모는 자식의 마음속에 기억으로만 있어도 행복한 거야. 부모 때문에 마음 아파하지 말어라.”

예쁜 아가도 할머니의 마음을 듣고 있는지 옹알이를 멈춘다. 

“부모 자식 지간은 가슴으로만 볼 수 있는 손등의 흉터인 거 같아. 상처와 흉터는 다르잖아. 상처는 진물이 질질 흐르면서 아픈 거지만 흉터는 함께한 시간 동안 서로가 ‘세월 연고’를 수없이 발라줘서 이미 치료가 되었지. 이해라는 굳은살이 덮인 채 안타까움만 더해지더라. 내 손에 있는 흉터이기에 보지 않을 수 없듯이 잊을 수도 없는 거지. 가슴속에서 흉터처럼 기억되는 부모도 자식도 성공한 행복이야. 서로가 고마운 거지. 상처는 계속 치료해야 하는 부담감이 따르지만 굳어버린 흉터는 바라만 봐도 애잔함이 있는 거야.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부담스러운 마음이 앞선다면 애틋함은 멀어져 가는 거더라.”

     

빈 술잔을 채운다. 손자를 한 번 쳐다보고 눈빛은 아들을 향한다.

“늙어 가는 부모를 보고 ‘그냥 세월이려니’ 하면서 바라보면 된다. 가정을 이뤘으면 아내, 남편, 자식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아비가 되고 어미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가장 큰 효도라는 거 잊지 말어. 엄마는 너희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늙어가고 싶다.”

     

주방까지 빈 그릇을 날라다 주는 아들.

“엄마, 건강해야 돼. 철없던 지난날 미안한 게 너무 많아서 울 엄마 오래 살아야지. 미안해 엄마.”

“엄마도 미안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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