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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감독 May 17. 2022

Crash

감독 폴 해기스


혹자는 영화 속에 등장 하는 헐리웃 톱스타들의 이름에 눈이 더 갔다고 하지만, 나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각본가 폴 해기스가 대본과 연출을 맡았다 해서 눈이 먼저 갔다. 그렇다고 이 화려한 스타들의 이름을 완전 무시한 것은 아니다. 단지 이름이 아니라 헐리웃 영화계에서 출연료로 치자면 이 영화 총제작비를 능가할 배우들이 돈이 아닌 대본에 반해 출연을 자청 했다는 일에 귀가 더 솔깃했다. 얼만큼 훌륭한 각본 이길래... 보고 난뒤, 역시 영화의 힘은 뭐니 뭐해도 훌륭한 각본에서 시작됨을 재 각인했다. 한 마디로, <크래쉬>는 감동과 긴장과 여운이 절묘히 맞물려 극박히 돌아가는 묵직한 영화 였다.

이 영화는 2006년 아카데미 작품상, 각본상, 편집상의 주요부분 상 3개를 석권했다. 그러니까 거의 20년 전 영화가 됐다. 특히 작품상은 이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에게 돌아 갈 것이라 암암리에 떠 돌았는데, 뜻밖에도 이 영화 <크래쉬>가 받아 감독 자신도 놀랐다고 한다.

<크래쉬>는 미국의 영원한 아킬레스건 이자 풀리지 않는 숙제인 인종 간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영화 속에 등장 하는 인종 간의 갈등은 단지 흑백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것은 아랍인과 히스패닉, 동양인 등의 유색 인종들 간의 갈등으로 더욱 확대, 심화되어 그려져 있었다. 인종들 간의 차별과 차이, 소외, 오만, 편견 등은 더이상 다인종 국가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더이상 순 혈통주의를 부르짖을 수 없는 한국에서도 주의깊게 살펴 봐야 할 사안이다.


△ 영화 속, 가장 가슴 뭉클했던 장면들...  


영화는 LA근방 외곽 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현장에서 시작된다. 사고 현장에 도착한 흑인 형사 그레이엄(돈 치들)은 현장에 나뒹구는 낡은 나이키 스니커즈 한짝을 보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일그러진 그레이엄의 얼굴로부터 36시간 전의 LA로 돌아간다. <크래쉬>에는 총 15명(8커플)의 이야기가 맞물려 돌아간다. 주인공은 따로 없다.   8커플(백인 부부 릭과 진, 흑인 부부 카메론과 크리스틴,백인 경찰 라이언과 핸슨, 이란인 파라드와 히스패닉 대니얼, 흑인형사 그레이엄, 흑인청년 피터와 앤써니, 한국인 조진구와 그의 아내)의 이야기가 우연과 필연으로 맞물리고 뒤엉커 돌아가며 서로 충돌한다.


영화는 말한다. 인종 간의 갈등에 있어서 어느 누구도 일방적인 가해자 이거나 피해자가 될 수 없다.서로가 서로에게 가해자이자 피해자들 이다. 악인도 선인도 없다. 선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씻을 수 없을 잘못을 저지르고 악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선한 일을 한다. 영화가 던지는 메세지는 인물들의 심리만큼 복잡하지도 모호 하지는 않다. 각각의 충돌을 통해 '용서와 화해'를 말한다. 그러나 영화가 말하는 그 용서와 화해를 통해 서로가 진정한 사랑할 수 있으려면 어쩌면 기적이 필요한 것일 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배경은 LA이다. 내가 알기로 LA는 최한월 평균이 영상 10도 안팎이다. 그러니까 눈이 내리지 않는 곳이다. 그런데 영화의 마지막 씬 에서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기적인 것이다.


영화는 다시 36시간 후의 LA교외 교통 사고 현장으로 돌아온다. 그레이엄은 낡은 운동화의 흔적을 따라 걷다 한 흑인 청년의 시체와 마주한다. 그 청년은 바로 그의 어머니가 그토록 찾던 자신의 동생이었다. 동생의 시체를 수습하고 다시 찾은 사고 현장, 그곳에서 동생이 분신처럼 지니고 다니던 여행자들의 수호성인 聖 크리스토퍼 성인의 성물을 발견한다. 그레이엄이 좀 더 이해하고 관심을 가졌더라면 어쩌면 그의 동생은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이것은 단지 그레이엄의 문제만은 아니다. 인종적 편견의 중심에 서있는 우리에게 던져진 후회 섞인 질문 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인종 간의 문제는 단지 다른 피부색에 대한 배타적이고 오만한 심리에서 기인 했다기 보다는 타인에 대한 몰이해와 소통의 단절,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 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나 일수도 있다 생각했다.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영화 속 백인 경찰 핸슨(라이언 필립)처럼...) 상대를 믿지도 믿으려고도 하지 않는다면 인종 간의 갈등은 인류의 영원한 난제로 남을 것이다. 분명 감독은 영화 속에서 희미하지만 희망적인 결론을 말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의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해기스 감독은 '영화 감독은 누군가에게 해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다. 좋은 영화 감독은 관객이 극장을 떠나면서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만든다.'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그는 좋은 감독 임에 틀림없다. 지금도 머리 지끈거리는 생각을 하게 만드니 말이다.



https://youtu.be/CATvcnpopWE


L.A.에서는 아무도 서로를 건드리지 않아. 모두 금속과 유리 안에 갇혀 있지. 서로에 대한 느낌이 너무 그리워서, 서로를 느끼기 위해서 그렇게 서로 충돌하게 되는 거야. ”

- 흑인 수사관, 그레이엄 워터스(돈 치들)의 대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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