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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무 Feb 21. 2024

면접 에피소드 1



  기나긴 은둔의 마침표를 찍을 때가 드디어 왔다. 퇴사하고 거의 1년. 적극적인 구직 활동을 시작조차 하지 않았던 이유는 결국 사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걸 인정하면서 또 힘들었고, 많이 울었지만 마음은 가벼워졌다. 이력서를 고치고, 자기소개서를 쓰기 시작했다. 전 직장에서 했던 일과 다른 일을 해보고 싶어 신입 딱지를 다시 달았다. 공고를 띄운 회사들을 살펴보며 지원했다. 그동안의 불안은 내 삶 자체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었는데 구직 활동을 시작하면서 불안은 현실적인 실체를 가지게 되었다. 이력서를 열람했는데 왜 연락이 안 오지? 자기소개서가 별로인가? 희망 연봉이 너무 높나? 하루에도 수십 번 불안과 싸우는 시간이었다. 


  한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회사 번호가 아닌 개인 휴대폰 번호였다. 전화 속 남자의 목소리는 친절했고, 당장 다음날 면접이 괜찮겠냐고 물었다. 구직 활동 시작 후 첫 면접 제의였기 때문에 당연히 괜찮았다. 짧은 시간 동안 면접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이전의 면접들을 떠올려봤지만 거의 전생처럼 느껴져 별 도움도 되지 않았다. 기억나는 건 긴장했던 분위기뿐이었다. 회사는 집에서 걸어가면 약 30분 거리에 있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기엔 조금 애매해서 일찍 준비하고 겨울바람을 잔뜩 맞으며 걸어갔다. 면접 시간보다 너무 빨리 도착하는 바람에 화장실에서 시간을 죽였다. 


  들어서자마자 아늑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 놀랐다.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는데 캐럴이 흐르고 있었다. 이전의 회사 사무실은 삭막하거나 험악했는데 캐럴이 배경 음악으로 깔리는 사무실이라니. 마치 카페 같은 분위기에 긴장됐던 마음도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회사는 아담했고, 직원 수는 스무 명 남짓 되어 보였다. 인상이 서글서글한 인사 담당자와 마주 앉았고, 그가 빠르게 나의 이력서를 훑어보는 동안 감각이 살아났다. 난생처음 보는 사람에게 나를 예쁘게 포장하고, 과장도 섞어가며 판매하려 애쓰는 감각. 그래, 이게 면접이었지. 긴장하는 감정 보다 그런 일들이 더 버겁고 불유쾌했다. 인사 담당자는 차분하고 신중하게 회사를 소개하고, 질문을 던졌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없었고 분위기는 편안했다. 마치 입사가 결정되고 미팅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회사에 호감이 몽글몽글 피어나던 때에 연봉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회사가 제시한 연봉은 딱 최저시급의 선을 살짝 넘은 수준이었다. 이전 직무의 경력을 뒤로하고, 새롭게 시작한다고는 했지만 순간 당황했다. 관리를 한다고는 했지만 표정이 어떻게 보였을지 모르겠다. 최소로 생각했던 연봉보다 500만 원이 적었고, 전 직장의 연봉보다 1천만 원 이상이 적었다. 5년 전 첫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받았던 연봉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는 희망연봉을 알려주면 최대한 조정해 보겠다고 했다. 또 뵐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그와 또 만날 수는 없겠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회의실에서 나오면서 직원들을 보니 대개 이십 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그들은 이미 그 연봉을 받고 일하고 있는데, 나에게 굳이 돈을 더 줘가며 일을 시킬 이유가 전혀 없어 보였다.      

  돌아오는 길은 몸도 마음도 지쳤다. 늦게나마 해보고 싶어 고른 업계가 박봉이라는 건 이미 각오한 일이었지만 실질절인 액수를 마주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1인 가구로서 내 가구를 책임지며 살아온 지 3년이었다. 연봉을 듣자마자 세금을 제하고 실 수령액을 대충 계산하니 사실상 생활비가 빠듯했다. 물론 그동안 벌어둔 돈을 까먹으며 생활하고 있었으니 어떠한 수입이라도 생기면 감사해야 하는 게 맞다. 근데 내 하루 대부분의 시간과 노동력에 대한 가치의 환산이라고 여기면 김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노동력에 값이 매겨지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뼈저리면서 젊은 노동력을 너무 홀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발도 일었다. 누군가는 내가 아직 배부르다 여길 수 있겠고, 실제로 그럴지도 모른다. 연봉을 높이고 싶다면 나의 경력이나 가치를 높여야 하는 것도 맞다. 그러나 넌 신입이니까 박봉을 받으면서도 열정적으로 일하라는 게 과연 괜찮은 사회일까? 5년 간 물가는 미친 듯이 치솟았는데 어째서 신입 연봉은 같은 수준에 머물러있을까? 여전히 열정 페이가 존재한다는 현실을 알고 나니 맥이 빠졌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문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젊은이들의 고생을 당연시하고 은근하게 강요까지 하는 말 같아서. 사서도 하는 고생은 오로지 그가 원해서 하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집에 돌아오니 무척 허기가 졌고, 밥을 배불리 먹고 나니 마음은 조금 나아졌다. 어쨌거나 구직 활동의 문을 연 스스로를 칭찬하며 자축했다. 나는 그 회사의 연봉을 바꿀 수 없고, 내가 바꿀 수 없는 일로 마음 쓸 필요는 없었다. 새로운 회사를 찾고, 다시 자기소개서를 고쳐 쓰며 지원하기 버튼을 눌렀다. 끝까지 친절하고 다정했던 인사 담당자는 불합격 소식조차 알려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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