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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물 Dec 24. 2019

1. 사소한 것에 대한 만족감

땡땡이 폰 케이스와 딥블루 드레스

어제 낮에 친구 생일 맞이 쇼핑에 나도 필요한 것들을 사러 동행했다.
옷가지를 몇벌 샀는데 저렴한 소품도 몇개 넣었다.


그중에 2불짜리 땡땡이 폰케이스.
누군가가 샀다가 반품한 것 같은데 아무튼 마음에 든다.
폰은 맨날 항시 쓰는 거니까 딱 갈아끼우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쓸 때마다 흡족해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고보니 아주 사소한 가까운 것에 변화가 기분전환을 하기에는 제격이구나.

집에 옷장에는 어깨가 나오는 디자인의 진한 파란색 원피스가 하나 있다. 좀 드레시한 옷이다.  

옷가게 세일 할 때 하나 사두었는데 ‘미국에 와서 한번쯤 이런 옷 입을 일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아이들을 저녁에 떼놓고 신랑과 둘이서 근사한 곳에 갈 일이 있지 않을까 바래보며. 그냥 언제인지 모를 기회를 위해 옷장에 준비해 두었다.

​소설 <대지>에 보면, ‘아란’은 진주 두 알을 주머니에 담아 목에 걸고 옷섶 안 가슴팍에 고이 간직한채 지낸다. 초라한 옷 안에 진주를 한번씩 들여다보며, 자신에게 장신구는 어울리지 않지만 그래도 작고 예쁜 진주를 옷 속에 품고 있는 걸로 위안과 만족을 삼으며 하루하루를 산다. 결국에 첩에게 온갖 마음을 빼앗긴 남편이 그마저 가져가 버리긴 하지만.

​아란이 그 진주로 목걸이를, 귀걸이를 만들어 달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머리핀이라도 만들어 달았으면.

그러니까 하고싶은 말은, 옷장안에 입지 않는 파란 드레스보다 2불짜리 폰 케이스가 나를 더 즐겁고 신나게 해준다는 것이다.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이룰 수는 없지만 상상해보는 꿈 하나도 좋지만 말이다.



나는 빨간머리 앤을 보면서는 앤처럼 중증은 아니지만 나도 그와 비슷한 부류라고 느꼈다.
사색과 공상과 상상 속에서 부유하다가 현실과의 괴리에 울적해 하는 부류.
이상과 꿈은 높지만 명확한 한계에 서글퍼지는 사람 말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블루 드레스보다는 폰케이스 처방이 필요하다.
우울감과 무기력에 늪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정신과 의사의 조언은 일단 “커튼을 바꾸세요”, “방청소를 해보세요”같은 것이라고 한다.
아주 가까이서 사소한 것이 자주 주는 만족감이 자신을 활력있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

요리해서 그릇에 담아 먹은 한끼, 깨끗하게 손질해서 입은 옷, 가방에 넣고 다니는 필기감이 마음에 드는 펜 같은 것들.

​어쩌다 찾아오는 좋은 경험은 좋은 영감을 불어넣어 좋지만.

매일매일 사소한 것으로부터 오는 만족감도 긍정적 태도를 위해, 하루의 활력을 위해 매우 필요한 것 같다.

​육아를 하며 일상을 돌아가게 만들며
(아, 엄마로서의 일상은 정말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 안에서 필수적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요소들을 등한시하기 쉽다. 어찌 ‘엄마’라는 직업뿐이랴. 모든 사람이 그렇겠지.

​해야할 일들 사이에서 ‘내가 나를 마음에 들어하는 일’은 그축에 끼지 못하고, 시간이 남으면 할 수 있는 일로 미뤄두고 저-쪽에 치워 놓고 매일 살다보면,
어느새 무기력하고 침체되어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러면 나는 책을 읽고, 일기를 써야 한다. 글을 쓰고 표현하고 아니면 커피를 내려서 향을 좀 맡거나, 잘 씻고 옷을 좀 챙겨입고 나가서 햇살을 좀 받으며 있어야 한다. 내가 마음에 드는 순간을, 내가 마음에 드는 내 모습을 내 안에 채워 넣으면 무기력은 저리저리로 밀려난다.

​폰 케이스 하나 갈아끼우고 이런저런 생각을.

무튼, 썩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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