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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물 Jan 06. 2020

2. 얻어 쓰기의 즐거움

새롭게 발견하는 나의 취향


얼마 전 이 곳에서 가까이 지내던 이웃 한국인 가정이 다시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면서 몇 가지 짐을 얻어왔다.

그분들이 이사 갈 짐을 꾸리며, 나에게 쓸만한 것이 있으면 가져가서 쓰라고 하였다.

그러고는 미리 내가 가져가면 좋을 멀쩡한 것들, 따로 추려놓은 예쁜 물건들을 정리해서 나에게 보여주셨다.

그중에는 아이들 책이나 테이블 등 필요한 것도 있었고, 내 취향의 가지고 싶었던 물건들도 있었다.


그리고, 화분을 잔뜩 얻어왔다.

가드닝의 고수들에게는 코웃음 나올만한 양이지만, 집에 살아 있는 식물이 하나도 없었던 나에게는 아주 ‘잔뜩’이었다.


높은 곳에 걸어 놓을 아이비 화분, 재작년 크리스마스부터 키워왔다는 포인세티아, 다육이, 상추까지.

오동통 탐스럽다


나무도 꽃도 바위도 참 좋아하지만, 집에 들여놓고 돌보는 것에는 영 자신이 없었다.

대학생 때 교수님 연구실에서 알바를 하며 교수님이 돌보길 부탁하신 난초들 수십 개를(....) 시들어 죽게 했으며

신혼집을 꾸리며 선물 받은 나무 두 그루 또한 나와 오래 함께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었다.


그 이후로 나는 살아 있는 식물은 욕심내지 않기로 했었다. 초록이들은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그저 밖에서나 마주치면 반갑고 좋을 뿐, 집에는 들여놓지 않았다. 그것이 서로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러고 세월이 흘러 흘러 이렇게 우리 집에 다시 그들이 들어온 것이다.


그동안 살아 있는 화분을 들이지 않으면서, 대신에 잘 만들어진 조화들을 이용해왔다. 그런대로 나름 만족하면서.

그런데 이번에 화분들을 얻어와서 집에 놓아두니, 어찌나 싱그럽고 집안이 신선해지는 기분인지!

인조 초록이들로는 얻지 못했던 생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는 싱글 생글 아침에 일어나서 구경하고, 아니 아침뿐만이 아니다. 하루에 몇 번씩 화분들을 바라본다. 볕이 좋으면 테라스에 내놓기도 하고, 그늘지고 추워진 것 같으면 얼른 들여놓는다. 신랑은 화분 별로 물은 어떻게 주는지, 햇볕은 얼마나 필요한지, 온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열심히 공부하더니만 빈 화분에 허브를 더 심겠다며 바질, 로즈마리 등등을 사 왔다.


거실 한쪽에 올리브 나무와 포인세티아



얻어 쓰기의 즐거움


그냥 내가 살던 대로였다면 식물을 우리 집에 들여놓을 일이 있을런지. 지금처럼 누가 들려주지 않았다면, 누군가에게 얻어오지 않았다면 내가 직접 화원에 가서 구입해 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새삼 생각해보면, 누군가가 쓰던 것을 얻어와서 쓰면 오히려 내가 직접 새 물건을 사 오는 것보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쇼핑, 참 좋아하는데, 가끔 쇼핑을 한 뒤에 집에 돌아와서 사 온 물건들을 꺼내보면 참 나 다운 것들이 가득해서 지루할 때가 있다.

나 다운 것은 좋은 말이지만, ‘나 답 기만’ 한 것은 글쎄다.

때로는 나답지 않은 것에도 ‘나’가 들어 있기 때문에, 내가 늘 생각하고 선호하는 방식대로만 살아가는 것은 오히려 더 나를 좁은 곳에 가두는 꼴이 되고 만다.


그래서 간혹 물건을 얻어 쓰면 이렇게 새로이 나의 취향을 발견하게 되기도 하고, 새로운 관심사가 생기기도 한다.

내가 스스로 무언갈 구입하러 나가서는 사 오지 못했을 것들. 그러나 내가 좋아하게 되고 즐기게 될 것들.


다른 사람이 사용하던 물건을 얻어서 쓰면, 그 사람의 삶을 엿보게 된다. 그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어떻게 이것을 다루어 왔는지. 그런 엿보기를 통해 나 또한 나 혼자서만은 알 수 없었던 것들을 알게 되고, 해보지 않았을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얼마 전, 가까운 친구에게 가지고 있던 펜을 선물했다. 비싼 것은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던 것이었다.

내가 그랬듯이 그 물건도 그 친구에게 가서 그런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줄 수 있으려나. 그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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