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소설이 하찮아 보였다. 다 아는 얘기 같고 뻔한 결말 같고. 소설을 많이 읽어본 것도 아닌데 웬 오만방자 인가. 소설에 대해 쥐뿔도 모르면서. 잘 알고나 떠들면 모르지만.
그런데 요즘 들어 부쩍 소설이 댕긴다. 무슨 조화지. 소설 속에 나오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그냥 느낌이 온다. 반추도 해보고. 참 희한한 일이다. 감정은 수도 없이 변한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다. 돌고 돌아 내가 결국 끌리는 것은 소설이던가. 무료한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나만의 유희.
브런치에서 관심작가가 올린 서평을 읽다가 지하철을 두 정거장이나 지나갔다.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화들짝 놀라 지하철 밖을 보니 낯선 풍경이다. 거꾸로 지하철을 타고 오며 생각했다. 그 소설 이야기가 내 이야기 같아서 내가 혼이 빠졌나 보다고.
출근하자마자 그 책을 주문했다. 당일 배송이고 오후면 도착한다. 우리 세대 이야기지만 한 세대 젊은이가 바라보는 관점이다. 도대체 그들은 우리를 어찌 바라볼까. 검증받는 느낌이 들 것 같다. 우리는 그냥 보낸 세월이지만,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말로 또는 어디선가 구한 정보로 아는 세계는 무엇일까.
서로 너무나 뜬금없는 서사는 아니겠지. 어찌 다른 세대를 감히 이해나 할 수 있으랴. 관심 가져 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지. 무엇인가 성찰하는 것 같아 차분하면서도 기분이 풍성해진다. 한편으로는 약간 걱정도 된다. 소설과 친해지면 다른 사람과 만남이 시들해질까봐. 사실 누구를 만나 노닥거리느니, 소설 몇 장을 읽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최소한 소설은 내가 읽고 싶으면 읽고, 아니면 말면 된다. 내 멋대로 재단한들 무엇이 문제인가. 읽기 싫으면 얼굴 위에 소설책을 덮고, 눈을 지그시 감으면 된다.
꼭 아는 사람을 주기적으로 만나고, 웃음 지어야 하나. 댕기는 사람은 그래도 아깝지 않지만,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되나. 왜 만나는지도 모르고 만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차라리 그 시간에 잠자는 게 더 낫다. 아니면 소설이 더 영감과 느낌을 줄 수 있다. 의례적인 만남은, 게임으로 말하면 스테이지 원처럼 싱겁게 끝난다. 아무 여운도 없고, 받아 든 명함은 서랍 구석에 있다가 언젠가 휴지통행이다.
시답지 않았던 소설이 끌릴 때는, 아무래도 나와의 대화가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방만했던 삶의 고삐를 다시 쥐고, 흐트러진 감상을 찬장 정리하듯이 가지런히 할 때인가 보다. 책장에 밀레니엄 세대들의 소설이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나는 밀레니얼 세대들의 이야기가 좋다. 힘도 있고 고민도 있고 꿈도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