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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밀 Oct 01. 2022

에코백 어디까지 써봤니

취향을 고르는 일


 에코백이 자주 눈에 띄는 인생의 한 구간을 지나고 있다. 등하교하는 학생들의 손에 무심히 들린 보조가방으로, 엄마들의 장바구니로, 읽고 공부하는 도서관족의 간편한 수단으로 존재하는 에코백이 곳곳에서 존재감을 발휘한다.

 실속 있고, 가벼운 데에다 디자인도 다양해지다 보니 나를 포함한 에코백 족이 늘며 직장인 구역을 제외하고는 언제 어디서나 웨어러블한 아이템이 되었다. 덕분에 거울 앞에서 에코백을 고르는 시간을 끝으로 외출 준비를 마치는 나만의 리추얼도 생겼다.


 외출의 성격에 따라 에코백의 모양이나 규격, 패턴을 취사선택하는 재미를 추구하는 내게는 그들을 고르는 몇 가지 기준이 있다.


1. 도서관 갈 때

 아이가 학교나 기관에 다닌다면, 필수 교양 과목처럼 등장하는 수업이 있다. 바로 '에코백 만들기'.

무지 캔버스 백에 너만의 그림을 그려 넣은 에코백은 그림의 퀄리티와 무관하게, 다가올 모든 외출에서 간택받기를 기다린다. 그럼에도 주로 아이와 도서관에 갈 때만 집어 드는, 사연 있는 가방으로 기능하는 현실은 냉혹하다. (동시에 아이의 그림 스킬에 따라 메인 가방이 될 무한 잠재력을 지님)

 규격을 벗어난 그림과 거침없는 수성펜의 흔적이 역력할수록, 개방적이고 허용적인 아이친화형 엄마로 추앙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2. 아이 등하원 때

 하원 후 곧장 집으로 향할 리 없는 아이에게 필요한 소지품 몇 가지를 담을 크기면 충분하다. 비타민, 모기 기피제, 멸균우유, 물티슈를 즉시 꺼내어 쓸 수 있도록 내부 포켓이 몇 군데 있다면 금상첨화. 아이가 울고 보채 초를 다툴 때 가방 안에서 손을 휘젓느라 시간을 지체하는 불상사는 없어야 한다. 아이를 둘러업고 전속력으로 뛸 때를 대비하여 크로스 끈이 부착된 것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미리 소지품을 담은 에코백을 현관에 두었다가 하원 때마다 들고나가는데 참으로 요긴한 물건이다.

TPO에 맞는 에코백만큼 절실히 간절한 것이 내게 더 있을까 싶을 만큼.



3. 친구, 지인과의 약속

 명품백 하나쯤은 데일리로 애용해도 위화감 없을 나이를 관통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단정하고 간결한 에코백의 품위에 더 압도당하는 쪽이다.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호환 가능한 심플의 미학을 지녀서 좋다. 틀에 박히지 않아 어느 착장에도 자연스러운 조화를 주며 겸손한 자태 덕에 좀처럼 나를 과시하는 법이 없다.

 기꺼운 이들을 만날 때면, 좋아하는 패턴이나 계절에 어울리는 소재로 한 번씩 환기를 주는 에코백을 들고 걸음하는 색다른 설렘이 있다.



4. 마트 갈 때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 제한으로 장바구니 입지가 공고해졌다. 이케아의 타포린 백처럼 도톰한 것이든, 접이식 장바구니처럼 간편한 것이든 미리 준비하면 수월하지만, 나의 장보기는 예고없이 오는 편이라서 외출에 동행한 에코백이 장바구니를 대신하는 날이 많다.

 계산을 위해 늘어선 줄 틈에서 앞사람의 형형색색 장바구니에 물건이 담기는 과정을 무심코 바라본다. 반복적인 꽃무늬 패턴은 물건에 어떤 생동감마저 부여한다. 손잡이로 눈이 간다. 손에 들거나 어깨에 멜 때 무게를 견딜 수 있는 디테일에 신경 쓴 것이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에코백은 쇼퍼백으로의 기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마침 넉넉한 사이즈를 들고 나왔다면, 20리터 쓰레기봉투보다 적재나 안정성 면에서도 유리하다.



5. 가끔 격식 있는 자리에서

 아무리 에코백 찬양자라 하더라도 격식 있는 자리에서 환영받을 아이템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탄탄한 코튼 소재의 에코백이라면 무너짐 없이 모양을 유지해주어 단정한 느낌을 줄 수 있다. 가방 하단의 받침이 견고한 것도 도움이 된다.

 가끔 포멀한 룩에 무심하게 매치한 에코백은 뜻밖의 반전 매력을 부르기도 하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필자 개인의 기준이다) 매너를 갖춘 애티튜드에 약간의 재치를 가미한 느낌이다. 유연하고 자연스러운 태도는 결국 나를 둘러싼 것에서 비롯되기도 하니까.



 에코백은 마냥 소년기에 머무르고 싶은 어리숙한 마음부터 온갖 근력이 쇠락하고 있는 중년의 마음을 질서 없이 담아도 흐트러짐이 없어 좋다. 그때그때의 기분에 따라 골라 담는 반찬 같으면서도 매일 짓는 밥만큼 일정하고 한결같이 수수하다.

 나의 항상성을 유지해주는 것들은 나를 휘둘리지 않게 한다. 취향을 살피는 일은 자기 언어를 가지는 일과도 같다.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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