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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n Oct 08. 2020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두 배로 돌려줘라.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 대어라.’라는 말이 있다. 성경의 한 구절인지 옛 어른들이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주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다. 특히 요즘 세상에, 더욱이 그 대상이 아이라면 더욱 그렇다. 아직 판단능력이 충분치 않으며 많은 것을 본능적으로 습득하는 아이들에게 그 구절은 항상 맞고 다니라는 뜻이며 폭력을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이도가 유치원에서 다른 아이에게 처음으로 물리적인 해를 입었을 때를 기억한다. 정말 속이 상하고 울화가 치밀었던 그때. 항상 잘 어울리던 여자 아이 하나가 이도의 등을 세게 깨물어서 그 년의 이 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한 군데도 아니고 세 군데나. 그 날밤 이도는 악몽에 시달렸고 그런 아이를 보며 마리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다음날 아침 Kita 키타 원장실을 찾아가 이 사실을 알리고 가해 아이의 아빠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연락을 취했다. 그 후 나를 더욱더 화나게 만든 것은 그 어느 누구도 이 사건? 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심지어는 사과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원장이나 담당교사나 가해자의 아빠 모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가해 아이에게 내 말이 사실인지를 물어본 후 사실이라면 주의를 준다는 말 뿐이었다... 전형적인 베를리너 혹은 독일인의 입장이라고 해야 하나? 이럴 때면 정말 이 곳이 싫다. 물론 좋은 것이 더 많으니 아직까지 살고 있지만. 

그 후로도 이도는 다른 아이들에게 물리적인 공격을 몇 차례 더 당했고 그럴 때마다 원장과 담당선생에게 이 사실을 알렸으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같은 일이 반복될 뿐이었다. 마리는 그럴 때마다 이도에게 누군가 때리면 곧바로 선생에게 알리라 하였지만 그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걸 이미 깨달은 난 다른 방식을 권했다. 아니, 주입에 가까웠다. 


“이도야, 누가 널 때리면 아프지?”

“응.”

“아픈 건 좋아 안 좋아?”

“안 좋아.”

“때리면 아프다는 것을, 아픈 건 안 좋다는 것을 널 때린 아이한테도 알려줘야지. 그래야 널 다시 아프게 하지 않지.”

“얘기했는데, 때리지 말라고.”

“말로만은 안돼.”

“그럼?”

“너도 똑같이 돌려줘. 아니 두배로 돌려줘. 그러면 그 친구도 그것이 얼마나 아픈 건지 알게 될 거야. 그러면 다시는 다른 아이들을 때리지 않을 거고. 하지만 절대로 네가 먼저 괴롭히거나 때리면 안 돼!”


이도는 뭔가 깨우쳤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허공에 대고 때리는 시늉을 하기 시작했다. 난 어디를 어떻게 때려야 위험하지 않고 따끔한 맛을 보여줄 수 있는지까지도 알려줬다. 그리곤 자신감을 심어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부모마다 육아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있어서도 의견이 갈리지만 독일에서는 대부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 그럴 때면 내가 치맛바람 날리며 유난 떠는 한국 학부형의 성질을 타고났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곤 하지만 항상 대답은 ‘아니다.’이다. 내가 느끼는 일반적인 독일 부모들이나 선생들은 문제를 만들기도 싫어하지만 문제에 대해 거론하는 것도 굉장히 불편해한다. 이 문제에 대해 이도의 제일 친한 친구 Santiago 산티아고의 아빠인 Bernhard 베안하트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성경구절에 이런 말이 있잖아. 오른뺨을 때리거든 왼뺨도 내어주라는.”

“그게 성경 구절이었구나.”

“대부분이 기독교 신자라서 그런 이유도 있고 일반적으로 문제 일으키기를 싫어해.”

“문제를 일으키는 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자는 거잖아.”

“무슨 말인 줄 알아. 산티아고가 다른 아이한테 맞고 집에 왔을 때 그리고 급식 메뉴에 대해 제안할 게 있어서 원장을 찾아갔는데 처음엔 수긍을 하며 듣는 척하더니 이젠 날 보면 도망가. 하하하. 동독 출신이라 그렇다고 하기엔 위험한 발언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원장처럼 나이가 든 사람은 그 영향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

“나도 가끔은 그런 걸 느껴. 공산주의, 사회주의의 관습이라고 해야 하나. 앞에 나서는 걸 극도로 꺼려하고 뭔가 부조리한 것이 있어도 무마하려는 듯한 느낌이랄까?”

“맞아, 그런 거야. 그냥 둥글둥글하게 지내고 싶은 거야. 더욱이 공무원이고 이제 곧 은퇴할 나이인데...”

“그렇구나. 근데 그게 원장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 대부분의 선생이나 학부형한테서도 비슷한 걸 느껴.”

“맞아. 나도 느껴. 그래서 그들과 더 이상 가까워지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 지난번에 네가 아이들 폭력 문제를 키타 홈페이지에 올렸을 때 얼마나 통쾌하던지. 그때는 우리가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였지만 내가 맥주라도 한 잔 사고 싶었다니까.”

“나도 그때까지만 해도 뭔가 바뀔 줄 알았는데 쉽지 않더라고. 몇몇 학부형은 개인적으로 나한테 연락까지 해서 응원한다더니 결국은 그냥 응원만 하더라고. 참여는 하지 않고.” 

“나도 같은 경험을 해봐서 알아.”

“하여간 다행인 건 이도는 이제 맞으면 돌려줘. 물론 그러기 시작하니까 때리는 애들도 없고.”

“대단해 이도.”

“산티아고는 어때?”

“덩치만 컸지 마음은 여려서 맞아도 때리기는 싫대.”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그래도 괜찮아?”

“당연히 안 괜찮지. 속상하고 분하지. 사람이라면 그게 정상 아니야?”

“내 말이! 근데 대부분 학부형은 안 그러잖아.”

“안 그런 척하는 거야. 나도 독일 사람이지만 그럴 땐 그 위선이 정말 짜증나. 물론 좋은 말로 포장하자면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사회성을 기르고 배운다는 건데.”

“그 말도 틀린 것 같진 않지만 아직 어리니까 방향 정도는 잡아줘야지.”

“맞아, 나도 같은 생각이야. 그래서 이도 태권도 등록하면 산티아고도 같이 보낼까 하는데 어때?”

“좋지!”


난 아직도 이도에게 한 번 맞으면 두 번을 때리거나 혹은 더 세게 때리라고 말한다. 아무도 널 해칠 권리는 없고 만약에 해를 끼친다면 그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 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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