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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n Oct 14. 2020

베를린, 월요일 02

Monday to Sunday in Berlin

우리의 게으른 브런치 메뉴는 게으르지 않게 테이블로 서빙되었다. 마리는 아삭아삭한 슈파겔살라트 Spargelsalat를 천천히 씹으며 태양을 향해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곤 미소를 지어 보이며 베를린의 봄기운을 맘껏 누리는 듯했다. 나도 모르게 잠시 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또다시 밀려온 허기에 급하게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너무 배가 고프면 음식을 즐기기보다는 허기진 배를 채우는데 급급하기 마련이어서 음식이 입 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짧아진다. 맛을 충분히 느끼기 전에 음식을 서둘러 목구멍으로 넘겨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바보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맛있는 음식에 대한 예의는 지켜져야 하니까. 예상했던 맛의 음식을 즐기다가 잊고 있던 젝트 Sekt로 목을 축인다. 린트너 Lindner 자체 브랜드로 생산한 부담 없는 가격의 젝트 Sekt는 평소 드라이한 와인을 즐기는 내게는 조금 달콤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풍부한 과일향이 끊임없이 기포를 타고 올라와 후각을 자극했고 봄날의 브런치를 더욱 그럴싸하게 만들어 주었다. 


“슈파겔살라트 Spargelsalat를 먹으니 봄이 느껴지네.”

“독일 사람 다 됐네. 봄에는 역시 슈파겔 Spargel이지!”

“내가 베를린에 처음 왔을 때가 5월이었는데 식당에 가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슈파겔 Spargel 이 들어간 요리를 먹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지. 그래서 나도 슈파겔 Spargel을 이용한 요리를 주문했어. 제일 단순한 걸로.”

“삶은 슈파겔 Spargel에 홀란다이즈 소스 Hollandaise Sauce 그리고 삶은 감자?”

“응. 그걸 제일 많이 먹더라고.”

“어땠어?”

“내 생애 첫 슈파겔 Spargel 요리, 어느 정도 기대를 했는데... 그냥 심심한 맛에 미지근하고 물컹거리는 슈파겔 Spargel의 식감 거기에 뭔가 인위적인 맛이 나는 느끼한 소스가 별로 더라고.. 삶은 감자는 그냥 배 채우라고 준 것 같고. 하여간 대실망이었지.”

“지금은 좋아하잖아. 슈파겔 Spargel 요리.”

“응.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식당이 별로였던 것 같아. 중심가에 위치한 관광객을 상대하는 식당이었거든. 특히 삶은 삶은 슈파겔 Spargel처럼 단순한 요리일수록 신선한 재료와 정확한 요리법이 맛을 좌우하는데 저렴한 가격에 많은 손님을 상대하다 보니 슈파겔은 Spargel 대량으로 미리 삶아 놓았고 소스는 슈퍼마켓에서 파는 싸구려 홀란다이즈를 사용했으니 맛있을 수가 있나?”

“많은 관광객들이 그 식당에서 슈파겔 Spargel을 맛보고 그 맛이 독일의 대표적인 봄철 요리라고 생각한다면...”

“음식, 특히 지역색이 묻어나는 전통음식이나 계절메뉴 같은 경우에는 단순히 음식을 파는 게 아니라 문화를 알린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제대로 해야 하는데. 하여간 그 뒤로 몇 년 동안 슈파겔 Spargel 은 먹지 않다가 우연히 루터 운트 베그너 Lutter & Wegner에서 삶은 슈파겔 Spargel 하고 비너 슈니첼 Wiener Schnitzel 이 함께 서빙되는 봄철 메뉴를 먹어보고 생각이 바뀌었지. 알맞게 삶아져서 아직 씹히는 맛이 살아있는 따뜻한 슈파겔 Spagel과 주방장이 직접 만든 깔끔한 홀란다이즈 소스. ‘아, 이게 제대로 된 슈파겔 Spargel 맛이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고.”

“오빠(실제로 마리는 나를 한국말로 ‘오빠’라고 부른다.)는 루터 운트 베그너 Lutter & Wegner 요리라면 다 좋아하잖아.”

“아냐. 굴라쉬 Gulasch (파프리카와 여러 향신료, 채소를 넣어 만든 고기 스튜요리로 헝가리의 대표적인 국민 음식) 나 농어요리는 별로야.”

“하여간 오빠가 지금은 슈파겔 Spargel을 좋아해서 다행이야. 난 슈파겔 Spargel 없는 봄을 상상해 본 적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어. 독일 사람들에게 슈파겔 Spargel 은 긴 겨울 끝에 찾아온 봄의 맛이니까!”

“같은 음식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것도 정말 행복한 일이지.”

“맞아. 함께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하여간 잘 먹었다. 양도 적당했고.”

“응. 나도 맛있게 먹었어. 햇살도 따뜻하고. 이제 정말 봄인가 봐.” 

“봄의 맛을 즐겼으니 이제 좀 걸어볼까?”

“좋지!”


따사로운  봄 햇살 아래 즐긴 브런치는 우리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었다. 쿠담 Ku'damm 지역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인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 Kaiser Wilhelm Gedächtniskirche 뒤편에 얼마 전에 오픈한 복합 쇼핑몰, 비키니 베를린 Bikini Berlin으로 향한다.


“2010년 5월에 내가 베를린에 처음 왔을 때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 Kaiser Wilhelm Gedächtniskirche을 보고 충격을 받았지.” 

“왜?”

“베를린에서 가장 유명한 교회의 첨탑이 부서져 있었으니까.”

“2차 대전 때 폭격으로 부서진 첨탑을 일부러 보존한 거잖아. 전쟁의 아픔을 잊지 말고 반성하자는 뜻에서.”

“알아. 그 부분이 더 충격적이었어. 대부분 들추기 싫은 역사는 숨기거나 지우려 하는데 반대로 그 부분을 떳떳하게 보이며 반성한다는 게.” 

“당시 교회의 재건축을 맡은 사람이 에곤 아이어만 Egon Eiermann인데 초기 디자인은 원래 파괴된 첨탑 부분을 부수고 새로 짓는 거였대. 하지만 시민들의 반대로 옛 교회의 디자인을 살려 보존하고 그 주변에 새로운 부속 건물을 짓는 방향으로 디자인이 바뀐 거지. 알아?”

“응.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 Kaiser Wilhelm Gedächtniskirche를 처음 보고 관심이 생겨서 관련 글을 찾아 읽어 봤거든. 부서진 첨탑의 별명이 ‘썩은 이빨’ 이란 재밌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뭔가 알고 보니까 새로운 게 보이더라고. 더 멋지게 보이기도 하고.”

“아는 만큼 보인단 말도 있잖아.”

“맞아.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관심 같아.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면 알고 싶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렇지. 관심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 집엔 에곤 아이어만 Egon Eiermann의 접이식 의자가 없었겠지.”

“아, 그 의자는 정말 명작이지! 괜히 모마 MOMA 영구 소장품이 아니야.”

“글쎄. 실용적이고 단순하긴 하지만 난 솔직히 그리 멋지단 생각은 안 드는데.”

“나도 처음엔 그랬는데 보면 볼수록 투박한 매력이 있어.”

“그러니 같은 의자를 8개나 사 모았겠지.”

“그 의자는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에곤 아이어만 Egon Eiermann의 디자인 철학이 담긴 작품이야. 우린 그 작품과 함께 생활하는 거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문제는 우리 생활공간이 점점 좁아진다는 거지.”

“알아. 그래서 요즘 자제하고 있잖아. 가구점 근처도 안 가고.”

“그나저나 교회 보수 공사는 언제나 끝나려나?”

“그러게 말이야. 내 기억으론 2010년 후반 즈음에 교회 전체를 공사용 천막으로 감싸기 시작하더니 아직도...”

“첨탑 부분은 끝났나 보네.”

“응. 교회 아래 부분을 제외하고는 천막을 걷은 걸 보니 이제 곧 끝나겠지.”

“그랬으면 좋겠다. 볼 때마다 안타까워.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어야 하는데 흉한 천막에 가려져 있으니.”

“그러게, 천막이라도 멋진 걸 씌워 놓던가.”


베를린 시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공사 현장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더욱이 투박한 가림막으로 둘러싸인 채 몇 년이고 기약 없이 공사 중인 곳을 지나칠 때면. 불평도 지쳐서 이제는 ‘언젠가는 끝나겠지!’ 하고 만다.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 Kaiser Wilhelm Gedächtniskirche 가 보수작업을 시작한 2010년 전부터 시작한 비키니 베를린 Bikini Berlin의 공사가 끝나고 드디어, 마침내 2014년 봄 문을 열었다. 다른 대도시에서는 흔하지만 베를린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형태의 복합 쇼핑몰로 호텔, 식당 및 카페, 브랜드 샵 등이 입점해 있다.


“비키니 베를린 Bikini Berlin 어때?”

“쾌적하네. 공간도 재미있고.”

“그렇지? 멋진 샵들도 많이 입점해 있어.”

“다 둘러보려면 시간 좀 걸리겠는데?”

“천천히 둘러보면 되지 뭐. 시간도 많은데. 나도 지난번에 왔을 때 다 못 봤어.”

“재미있을 거 같기는 한데 오늘처럼 날씨 좋은 날 실내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건...”

“하긴. 실내에서 시간을 보내기엔 날씨가 너무 아깝다. 오늘은 그냥 훑어보고 다음에 다시 오는 게 좋겠다.”

“응. 딱 한 곳만 가보자 오늘은.”

“그렇다면... 게슈탈텐 Gestalten 알지?”

“알지. 주로 디자인 서적 출판하는 독일 출판사잖아.”

“맞아. 방대한 디자인 서적과 아트북으로 유명한 타쉔 Taschen 보다는 규모가 많이 작지만 게슈탈텐 Gestalten 역시 질 좋은 디자인 서적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지. 2층에 (한국의 3층에 해당 : 유럽에서는 Ground Floor, 1층, 2층... 순으로 층을 세기 때문에 한국의 ‘층’ 개념에 1을 더하면 된다.) 게슈탈텐 파빌리온 스토어 앤 카페 Gestalten Pavilion Store & Cafe라는 곳이 있는데 게슈탈텐 Gestalten에서 출판한 책들은 물론 헤이 HAY를 비롯한 여러 디자인 소품 브랜드들의 제품을 전시, 판매하고 있어. 특히 함께 운영하

는 카페가 재밌지.”

“카페에 뭔가 특별한 거라도 있어?”

“야외 테이블에 앉으면 뒤편에 있는 동물원이 내려다 보이는데 원숭이들이 노니는 걸 구경할 수 있거든.”

“맞다. 비키니 베를린 Bikini Berlin 바로 뒤가 동물원이지!”

“응. 지난번에 혼자 왔을 때 시원한 맥주 한 잔 하면서 원숭이들 구경하는데 의외로 재밌더라고.”

“빨리 가보자!”

“그래. 오늘은 원숭이들이 뭐하고 노는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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