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to Sunday in Berlin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된 무제움스인젤 Museumsinsel 은 베를린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 중의 하나로 베를리너 돔 Berliner Dom, 현재 복원 중인 궁전 그리고 5개의 박물관으로 이루어진 조그만 섬이다. 도시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이 곳이 섬이라 불리는 이유는 지도에서 보면 알겠지만 슈프레 강의 수로가 그 지역을 둘러쌓고 있기 때문인데 수로의 폭이 그다지 넓지 않고 많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서 섬이라 느껴지지는 않는다. 무제움스인젤 Museumsinsel에 자리하고 있는 구박물관 Altes Museum, 신박물관 Neues Museum, 구국립미술관 Alte National Gallerie, 보데 박물관 Bode Museum, 페르가몬 박물관 Pergamon Museum을 하루 만에 ‘보기’란 불가능하다. 물론 여기서 ‘보기’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단지 그들을 배경 삼아 기념사진만을 남기는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 약 50여 개의 박물관과 갤러리를 3일 동안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무제움스파스 Museumspass를 구입해서 여유롭게 즐기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한국 관광객들에게 3일은 최소 3개 도시를 둘러봐야 할 시간과 같으니... 적어도 짧은 기간 안에 가능한 많은 곳을 가봐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서 탈출한 여유로운 ‘여행가’가 아닌 이상은 무리겠다. 혹시라도 무제움스파스 Museumspass와 함께 3일을 보낼 수 있는 ‘여행가’ 있다면 화요일부터 목요일을 추천한다. 월요일은 대부분의 뮤지엄과 갤러리가 휴관이며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수많은 관광객들 사이에 파묻히기 좋은 날이니까.
“페르가몬무제움 Pergamonmuseum 은 아주 인상적이었어. 특히 페르가몬 제단 Pergamom Altar의 규모는 다른 유물들을 압도하더라고. 너도 알겠지만.”
“아니. 나 아직 페르가몬무제움 Pergamonmuseum 안 가봤어. 바로 옆에 있는 신박물관 Neues Museum 만 가봤지.”
“이집트 유물 전시된 곳 말이지?”
“응. 네페르티티 Nefertit 왕비의 흉상으로 유명한 곳. ”
“난 거긴 아직 안 가봤는데. 어때?”
“솔직히 난 전시된 유물보다는 박물관 자체의 건축물이 좋았어.”
“나도 특별히 고대 유물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페르가몬 제단 Pergamom Altar 은 정말 신비하더라고. 기원전 160년대의 거대한 건축물이 눈 앞에 있으니.”
“응. 그렇다는 얘기는 나도 많이 들어봤어.”
“베를린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곳이 페르가몬무제움 Pergamonmuseum 이래. 제일 유명한 전시물은 역시 페르가몬 제단 Pergamom Altar이고.
“그래서 난 아직 안 가봤어. 1년 내내 붐비는 곳이니까.”
“그러긴 해도 입장객 수를 제한하니까 관람하는데 문제는 없더라고.”
“티켓 사고 입장하려면 오랫동안 줄 서야 하잖아.”
“무제움스파스 Museumspass 있으면 전용 입구로 들어갈 수 있어.”
“그래? 몰랐네 그건.”
“우리 다음에 무제움스파스 Museumspass 사서 천천히 돌아보자.”
“응. 나도 그러고 싶었어. 무제움스인젤 Museumsinsel에 있는 박물관뿐만 아니라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신 국립미술관 Neue Nationalgalerie이나 사진박물관 Museum für Fotografie 같은 곳들도 다시 가보고 싶고.”
“다음 휴가 때는 어때? 이런 건 말 나왔을 때 정하는 거야.”
“그래. 다음 휴가는 여유롭게 박물관이랑 갤러리 다니면서 보내면 좋겠다.”
“그러자. 주변에 있는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것도 먹고.”
“응. 아주 천천히 여유롭게. 박물관이나 갤러리는 하루에 2 곳이면 충분할 거 같아. 그 이상은 피곤하고 나중엔 어디서 뭘 봤는지 헷갈리기도 하고.”
“맞아. 휴가잖아. 쉬면서 느긋하게 즐겨야지.”
“늦잠 실컷 자다가 나와서 브런치 먹고 움직이면 되겠다. 그렇지?”
“좋은 생각이네. 우리 가보고 싶었던 브런치 카페 많잖아. 그중에서 몇 곳 가보면 되겠다. 매일 다른 곳으로.”
“브런치 먹고 나서 산책 좀 하다가 박물관이나 갤러리로 가는 거지.”
“그 후에는 애프터눈 티 Afternoon Tea?”
“좋아. 아주 멋진 휴가 계획이네.”
무제움스인젤 Museumsinsel을 거닐며 갑작스레 만들어진 휴가 계획치고는 훌륭하다는 생각에 기대를 머금은 미소가 번졌다. 평소보다는 적었지만 여전히 많은 관광객이 루스트가르텐 Lustgarten을 메우고 있었고 우린 그들을 지나 도로와 지하철 공사로 엉망이 된 운터 덴 린덴 Unter Den Linden으로 들어섰다. 프리드리히 2세의 기마상 Reiterstandbild Friedrichs des Großen으로 시작되는 운터 덴 린덴 Unter Den Linden의 산책로 혹은 기다란 공원은 약 1km 길이로 브란덴부어그 토어 Brandenburg Tor까지 이어지며 차도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일종의 중앙선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음료와 스낵류 그리고 유치한 기념품 따위를 판매하는 작은 상점과 가로수 아래 띄엄띄엄 자리한 벤치가 있던 이 곳은 공사장 펜스로 둘러싸여 있어 그 흔적 조차 볼 수 없었다.
“마리, 생각나? 운터 덴 린덴 Unter Den Linden 공사하기 전에 우리 여기서 한가하게 주말 보내던 날. 2011년 봄 즈음이었지?”
“기억나지. 시원한 음료랑 간식거리 사 가지고 벤치에 앉아서 먹었잖아. 지나가는 관광객들 구경하면서”
“그날, 햇살이 정말 좋았어. 저 멀리 TV 타워가 거대한 미러 볼 Mirror Ball처럼 햇빛을 반사하고 있었고 난 웬만해서는 마시지 않는 베를리너 필스너 Berliner Pilsner를 마셨지.”
“하하하. 맞아. 시원한 맥주가 그것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나는 레모네이드 마셨고.”
“그때 정말 좋았었는데. 벌써 3년 전이네.”
“응. 시간 빠르다. 공사는 이렇게나 느린데.”
“언제 다시 그 벤치에 앉아서 차가운 맥주를 마실 수 있으려나.”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
“그 ‘조금’이란 시간이 너무 길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느덧 오늘의 ‘구체적인 목적지’인 두스만 Dussmann에 도착했다. 프리드리히슈트라쎄 Friedrichstrasse 에 위치한 두스만 Dussmann 은 전형적인 대형 서점으로 주제별로 나뉜 서적을 중심으로 음반과 DVD, 문구류를 취급하며 카페와 레스토랑이 입점해 있다.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LP 전용 코너는 1층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여기구나!”
“응. 여기 있었네.”
“생각보다 음반이 꽤 많은데?”
"어떤 음반들이 있는지 둘러볼까?”
우린 한동안 재즈 음반이 몰려 있는 곳에서 손가락으로 음반을 튕기며 눈동자를 바삐 움직였다. 관심 있는 음반을 한쪽으로 모아놓고 자세히 살펴보던 중 마리가 한 여자의 얼굴이 프린트된 음반 한 장을 내밀며 물었다.
“이 음반 알아?”
“아니. 몰라. 누구야, 이 여자는?”
“들으면 알걸? 우리가 집에서 자주 듣는 음반에도 이 여자가 부르는 노래가 있는데.”
“정말? 어떤 음반에 어떤 노래?”
“Getz/Gilberto 앨범 중에 The Girl from Ipanema”
“정말? 이 여자가 Astrud Gilberto라고?”
“응. 젊었을 때 사진이잖아.”
“그렇구나. 난 이 여자 얼굴을 본 적이 없어. Getz/Gilberto 앨범에 있는 노래만 들어봤지. Astrud Gilberto 앨범이 따로 있는 줄도 몰랐네.”
“당연히 있지. 가장 유명한 보사노바 가수 중의 한 명인데.”
“하긴. 듣고 보니 당연하네.”
“그거 알아? Getz/Gilberto 앨범에 수록된 The Girl from Ipanema 가 공식적으로 그녀의 첫 녹음이고 그 전에는 가수로써 노래해 본 적도 없다는 것.”
“그래? 대단하네. 노래 들어보면 참 쉽고 편하게 부르잖아. 무심하게 내뱉는 듯한 창법으로. 난 이 곡 발표할 때 이미 그녀가 보사노바의 대가인 줄 알았는데.”
“타고난 거지. 그래도 그녀가 처음으로 녹음한 노래가 담긴 음반이 지금까지 재즈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음반 중의 하나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거야.”
“운도 좋았지 뭐. 첫 음반을 Stan Getz, Joao Gilberto, Antonio Carlos Jobim 같은 대가들이랑 작업을 했으니.”
“Joao Gilberto 가 그녀의 남편이잖아.”
“정말? 마리, Astrud Gilberto에 대해 어떻게 그리 잘 알아?”
“나도 The Girl from Ipanema 처음 듣고 반해서 한 동안 Astrud Gilberto 노래만 찾아들었거든. 인터넷에서 자료도 찾아보고. 아, 그리고 그녀 아빠가 독일 사람이야.”
“흥미로운 배경이 많네. 이 앨범도 점점 끌리는 걸~”
“내가 알기론 이 앨범이 그녀의 첫 솔로 앨범일 거야.”
“언제 발매한 거지?”
“음... 여기 있네. 1965년판..”
“Getz/Gilberto 앨범 내고 바로 다음 해에 나온 거구나. 트랙리스트 좀 보여줘 봐.”
“응. 여기 있어.”
“어디 보자. How Insensitive 빼고는 다 모르는 곡들이네. 하여간 이 음반 사야겠다. “
“난 이거 사려고.”
“누구?”
“Francoise Hardy라는 샹송 가수야.”
“굉장히 분위기 있게 생겼는데?”
“배우이기도 하고 패션 아이콘으로 유명했지.”
“빨리 들어보고 싶은데. 둘 다.”
“오늘 집에서 저녁 먹으면서 듣자.”
“여기 온 보람이 있네.”
“응. 와보길 잘했어.”
“배고프다. 밥 먹으러 가자.”
“나도. 어디로 갈까?”
“오랜만에 루터 운트 베그너 Lutter & Wegner 어때?”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