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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n Nov 09. 2020

베를린, 수요일 01

Monday to Sunday in Berlin

“오빠, 오늘은 신 국립미술관 Neue Nationalgalerie 가자!”

“그럴까?”

“응. 가본 지도 오래됐고 오늘은 조용하게 보내고 싶어서.”

“그럼 거기 갔다가 티어가르텐 Tiergarten 가면 되겠다.”

“좋은 생각이야.”

“그런데 오늘 브런치는 어디서 먹지?”

“글쎄... 그 근처에 먹을 만한 곳이 있나?”

“내 기억엔 신 국립미술관 근처에는 먹을 만한 곳이 없는데.”

“맞아. 고급 호텔 식당 아니면 쇼핑몰에 있는 뻔한 프랜차이즈 식당밖에 없잖아.”

“지난겨울에 부모님 오셨을 때 신 국립 미술관 갔다가 배가 너무 고파서 근처 쇼핑몰 푸드 코드에 가서 이것저것 시켜먹었는데 맛도 없고 비싸고 거기에 붐비기까지 하니까 다시는 찾고 싶은 생각이 안 들더라고. 뜨내기 관광객들이나 근처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갈 만한 곳이 아니야.”

“베를린에 있는 대부분의 쇼핑몰 푸드코트가 다 비슷하잖아. 그럴듯하게 보이는 다양한 메뉴에 싼 듯한 가격. 근데 먹고 나면 항상 뭔가 속은 것 같은 느낌이야. 음식 퀄리티에 비해 결코 싸지도 않고 속은 더부룩하고.”

“그런 대형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좋은 재료를 쓸 리가 없잖아. 특히 볶음국수 같은 걸 파는 아시아 식당 같은 경우에는 거의 화학조미료 범벅이라고 보면 될 거야.”

“오늘 식당 정하기 쉽지 않네.”

“집에서 먹는 건 어때? 어제 먹다 남은 빵 하고 치즈도 있고.”

“그럴까?” 

“응. 그게 좋을 것 같아.”

“그럼 그러자. 내가 뭘 도와줄까?”

“그냥 침대에 누워서 게으름 피우고 있어. 그게 도와주는 거야. 준비되면 부를게.”


따뜻한 봄날 카페테라스에서 즐기는 브런치는 언제나 맛있고 여유로울 줄 알았는데 지난 이틀 동안 즐기다 보니 사실 벌써 질리는 느낌이다. 휴가에 어울리는 멋진 브런치 메뉴를 골라야 한다는 일종의 스트레스도 귀찮았고 대단하진 않아도 내 손으로 직접 준비한 음식이 그립기도 했고. 하여간 오늘은 집에서 브런치를 먹고 외출하기로 한다. 어제저녁 먹다 남은 빵과 치즈 그리고 냉장고를 뒤져 이것저것 차려내니 그럴듯한 브런치가 차려졌다. 집에서 먹는 음식의 가장 좋은 점은 좋은 재료로 내가 먹고 싶은 것만 차려내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요리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어서 주방에 항상 기본적인 식재료가 갖추어져 있어야 하지만. 


“마리, 준비됐어, 거실로 와!”

“알았어. 근데 벌써?”

“응. 간단하게 차렸어.”

“우와, 간단하지 않게 보이는데!”

“맛있게 먹어.”

“고마워. 오빠도 맛있게 먹어.”

“아, 맛있다, 맛있어. 역시 좋은 빵 하고 치즈만 있어도 고급 카페 브런치 부럽지 않아.”

“그럼, 라파예트 백화점 Galeries Lafayette 빵 하고 치즈는 베를린에서 최고 수준이지.”

“토마토 샐러드는 아침이라 마늘 안 넣고 만들었어.”

“마늘 맛이 나는데?”

“아, 마늘향이 나는  올리브 오일을 넣었나 보네! 서두르느라 정신이 없어서.”

“괜찮아, 맛있어. 그리고 어차피 휴가라서 마늘 냄새나도 상관없어.”

“그렇네.”

“이 오렌지 주스 직접 짠 거야?”

“응. 오렌지가 몇 개 있더라고.”

“우와, 그 짧은 시간에 이걸 다 한 거야?”

“내가 원래 빠르잖아.”

“이렇게 빠르니 카페 가면 브런치 나오는 걸 못 기다리지. 안 그래?”

“이해가 안가. 뭐가 그리 오래 걸리는지... 그냥 느림이 아니, 심하게 말하면 게으름이 몸에 배어있는 사람들 같아. 물론 그게 자신의 여가를 즐기는 거라면 내 상관 할바 아니지만 손님을 상대하는 일이잖아.”

“가끔 서비스가 느리다고 생각될 때도 있지만 보통 느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아마 오빠가 서울의 서비스에 익숙해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해. 내가 너무 빠른 것에만 익숙해져 있으니까. 성격이 워낙 급하기도 하고.” 


그렇게 빨리 차려낸 브런치를 우린 천천히 즐겼다. 주문한 음식과 음료를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고 간혹 우리의 브런치를 방해하는 너무 크게 떠드는 옆 테이블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베를린의 카페나 레스토랑은 그리 붐비지 않아도 모든 서비스가 서울에 비해 많이 느린 편인데 이름이 알려져 붐비는 곳에서 식사를 할라치면 인내심 없이는 불가능하다. 특히 자기가 할 일이 뭔지 모르거나 알아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거기에 유쾌하지 않은 표정까지 달고 다니는 서버들을 볼 때면 얼굴에 얼음물이라도 부어버리고 싶다. 정신 차리라고! 그런 형편없는 서비스에 팁까지 줘야 한다는 것이(관례적으로 계산서 금액의 5-10%를 준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지만 아시안은 팁을 주지 않는다는 선입견을 깨버리고 싶어서 항상 남들보다 몇 푼 더 던 저주고 온다. 처음에는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을 하곤 했다.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아시아에는 팁 문화가 없거나 정착하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팁을 안 주는 것이지 결코 그들이 인색해서 그런 게 아니라고. 나처럼 팁 문화를 접하거나 아는 사람들은 오히려 더 많이 준다고. 한국 사람이 통이 얼마나 큰데... 그런데 이젠 귀찮다.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자기들 문제지 내 문제는 아니니까. 하여간 팁을 바라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팁 Tip 이 무슨 뜻인지는 아니? 내가 받은 서비스에 대해 만족하고 기분이 좋아서 그에 대한 대가로, 성의로 추가로 지불하는 돈인데, 너희들처럼 똥 씹은 얼굴을 하고 자기 일도 제대로 못하는 애들한테 내가 팁을 주고 싶을까? 음식값 내기도 아깝다.’ 하여간 아직도 베를린에서 참기 힘든 것 중 하나가 카페나 식당에서 손님과 직원이 바뀐 것 같은 상황이다. 물론 다 그렇진 않지만... 


“먹음직스럽게 구운 치아바타 Ciabatta에 너무 진하지 않은 벌꿀을 살짝 바르고 18개월 정도 숙성된 콩테치즈 Comté 를 얹어 먹으면...”

“오빠가 제일 좋아하는 콤비네이션이잖아. 난 치아바타보다는 버터를 바른 바게트 Baguette에 콩테치즈만 얹어 먹는 게 좋아.”

“그것도 좋지만 꿀이나 마멀레이드 Marmalade를 살짝 발라 먹으면 맛이 더 풍부해져. 특히 마멀레이드의 시트러스 향과 맛은 깔끔하고 상쾌한 뒷맛을 선사하지. 갑자기 먹고 싶네.”

“듣고 보니 그럴싸 한 걸. 마멀레이드 없어?”

“보통 한 두 가지는 항상 있는데 찾아보니 없더라고.”

“난 거의 안 먹는데 그게 다 어디로 갔지?”

“내가 요리할 때 쓰잖아.”

“아, 맞다. 내가 좋아하는 달콤한 간장 소스 만들 때도 마멀레이드가 들어간다고 했지?”

“응, 간장 소스를 만들 때 설탕 대신 넣으면 농도 맞추기도 쉽고 깔끔하고 상쾌한 맛이 더해지지. 특히 닭고기나 오리요리에 잘 어울리고 거기에 생강이 조금 더해지면 맛은 더욱 풍부해지고.”

“그런 걸 어떻게 다 알아?”

“우선 많이 먹어봐야지. 좋아하는 요리는 레시피 찾아서 요리해 보고 나름 변형도 해보다 보면 나만의 요리 공식이 만들어진다고나 할까?”

“오빠는 먹고 마시는 얘기 나오면 정말 집중하는 거 알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다른 음식 이야기를 하거나 점심 먹으면서 저녁 메뉴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처음 봤어. 특히 오빠 친구들하고 만나면 늘 먹고 마시는 이야기만 하잖아.”

“그런가? 재밌잖아. 중요하기도 하고.”

“요리사나 음식 평론가가 되어보지 그래?”

“직업으로써 요리를 한다면 무엇보다 매일 즐기면서 요리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고 금전적인 문제나 그 밖의 여러 가지 문제를 신경 써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요리하기 전에 이미 지쳐버릴 것 같아. 개인적으로 평론가는 싫어. 그럴듯한 말로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대는 게 맘에 안 들어. 막상 자기들 보려 해보라면 아무것도 못하면서 어쭙잖은 특권의식만 있어가지고.”

“그렇게 생각해? 그 분야의 전문가가 평론가가 되는 거 아닌가?”

“그게 정석이겠지만 안 그런 사람도 많아. 음식평론가 또는 음식칼럼니스트란 명칭을 달고 잡설이나 늘어놓으며 이름 팔고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자기의 정치색까지 보이는 사람도 있다니까. 물론 표현의 자유겠지만.” 

“오빠는 요리도 하고 음식 얘기도 좋아하니까 음식 평론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하여간 평론가라는 말 자체가 싫어. 그냥 먹고 싶은 것, 맛있는 것 요리해서 좋은 사람들이랑 즐기는 게 최고지.”

“맞아. 나도 전에는 먹고 마시는 거에 그다지 신경을 쓰는 편이 아니었는데 이젠 나름대로 찾아 먹게 되고 먹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더라고. 오빠 덕분에 까다로워졌다고나 할까?”

“그래서 좋다는 거지?”

“나야 고맙지. 덕분에 맛있는 것 많이 먹으니까!”


마리의 말대로 난 오늘도 여지없이 브런치 타임을 음식 얘기로 채워나갔다. 가끔씩은 이런 음식에 대한 나의 지나친 관심이 오히려 음식을 즐기는데 방해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먹고 있는 음식 자체에 집중을 해야 하는데 다른 음식에 대한 대화를 하다 보니 아무래도... 좋은 음식에 대한 예의도 아닌 것 같고. 욕심이 많은 건가? 뭐, 어쨌든 맛있는 걸 먹고 마시며 맛있는 음식 이야기하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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