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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근 Content Writer Aug 31. 2021

자연과 인간, 환경을 키워드로 희망 선사할 동시대적 춤

손인영과 국립무용단의 신작,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초연


한국 컨템포러리댄스의 대표적 안무가로 국립무용단을 이끄는 손인영 예술감독이 작금의 코로나 상황에 위로의 선물이 될 동시대적 춤으로 첫 안무작을 선보인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립극장 전속단체 국립무용단은 신작 ‘다섯 오’를 오는 9월 2일부터 5일까지 달오름극장에서 초연한다.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손인영의 첫 안무작으로, 현재의 환경문제를 바라보는 안무가의 시선을 동양의 음양오행(陰陽五行)과 접목해 풀어낸다. 지난해 공연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순연된 바 있다.


창작무용 '다섯 오'의 무대 이미지. 2막 중 한 장면 (사진=국립극장, 정민선)


국립무용단 신작 ‘다섯 오’ 안무를 맡은 손인영 예술감독은 한국무용과 현대무용을 두루 섭렵한 무용가다. 이번 작품에서 한국무용의 순환적인 호흡과 낮은 무게중심의 원리를 뿌리에 두고 현대적인 움직임을 결합해 ‘현대적 한국무용’을 선보인다.     


손인영 감독은 “지금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친 것은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인간의 삶이 초래한 결과라고 생각해 이 같은 상황을 춤으로 풀어냈다”라며 “전통을 기반으로 동시대 관객과 소통하는 국립무용단이 지금의 사회 문제를 작품에 담아 화두를 던지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작품 의도를 설명했다.      


총 3막으로 구성된 ‘다섯 오’는 동양의 전통사상인 음양오행을 바탕으로 만물에 내재한 질서와 순환하는 삶의 진리를 이야기한다. 작품은 ‘환경이 파괴된 현재–음양오행의 에너지-공존에 대한 깨달음’의 흐름으로 전개된다.     


1막에서는 만물의 순환과 조화가 깨져버린 상황에서 불안해하는 사람들 앞에 동양적 자연관을 상징하는 다섯 처용이 등장한다. 신라 시대 처용이라는 인물이 아내를 범하려던 역신 앞에서 자신이 지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춰서 물리쳤다는 설화를 바탕으로 하는 처용무는 악운을 쫓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처용무는 궁중무용 중에서 유일하게 사람 형상의 가면을 쓰고 추는 춤이다. 처용 탈을 쓴 다섯 사람이 다섯 가지 빛의 오방색 옷을 입고 춤을 추는데, 이는 음양오행의 정신을 반영한다. 우리 선조들은 오방처용무를 추면 사악한 기운이 물러가고 기쁘고 경사스러운 일이 생긴다고 믿어 왔다. 다섯 처용이 등장해 오방처용무를 선보이며 대안적 생활방식과 가치관으로 오행론을 제시한다.      


2막은 오방처용무를 길잡이 삼아 음양오행의 에너지를 만나는 무대다. 새로운 생명과 성장을 상징하는 목(木)은 현대적인 춤사위로 풀어내며, 화(火)는 승무에서 영감을 얻어 사방으로 발산하는 에너지를 표현한다. 죽음을 나타내는 수(水)는 씻김굿에서 차용한 움직임으로, 균형을 의미하는 토(土)는 전통 무술인 택견에서 영감을 받은 안무로, 원시적인 힘과 생명력을 드러내는 금(金)은 남성 무용수의 에너지 넘치는 군무로 풀어낸다. 음양의 조화는 남녀 듀엣과 군무로 구성해 오행의 순환을 완성한다.      


음양오행 세계에 대해 이해를 하고 현대로 돌아온 3막에 이르러서는 창백한 푸른 점인 지구와 우주의 연결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인류에게 자연과 공존하는 지혜만 있다면, 건강한 일상으로 회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후 무대 위에 홀로 남은 무용수의 몸짓은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후세에 어떤 세상을 전해 줘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또한, 자연의 순리를 성찰하는 음양오행을 통해 춤이 몸의 움직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관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국립무용단 신작 '다섯 오' 무용수 콘셉트 (사진=국립극장, 양동민)


이번 신작의 무대·의상·영상디자인은 빼어난 무대 미학을 구현하는 정민선이 맡았다. 반사가 잘 되는 댄스플로어를 활용해 이면의 세상을 보여주는 듯한 신비로운 공간을 연출하며, 끝없이 반복하는 구조물을 사용해 오행의 흐름을 극대화한다.     


음악감독은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하며 주목받은 라예송이 참여해 음양오행의 상징성을 담은 음악을 새롭게 작곡해 작품에 생동감을 더한다.     


국립무용단 ‘다섯 오’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면 인간에게 어떠한 결과가 돌아오는지 일깨운다는 점에서 동시대 관객의 일상과도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전 세계적인 기후변화와 코로나19라는 감염병까지 예측 불가능한 위기를 겪고 있는 지금, 이번 작품을 통해 환경 파괴와 인간의 삶의 방식 등 다양한 지점에서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손인영 예술감독은 “공연을 한번 봤다고 환경에 대한 인식이 갑자기 변하지 않겠지만, ‘다섯 오’를 통해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돌아보고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라며 “이러한 고민과 성찰이 쌓여 변화로 이어진다고 믿기에 환경문제를 고민하는 하나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국립무용단의 작업이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연습실에서 무용수를 지도하는 손인영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사진=국립극장, 작품 메이키이필름 화면)


국립무용단과 함께 선보일 현대적 한국무용 ‘다섯 오’는 2019년 11월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손인영의 첫 안무작이다. 손인영 예술감독은 1985년부터 7년간 국립무용단 단원으로 활동한 후,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무용교육학을 유학하고 현대무용을 수용하여 동시대적 춤으로 나우무용단 예술감독, 서울예술단 무용감독, 인천시립무용단 예술감독, 제주도립무용단 상임안무자를 지내며 춤의 영역을 확장하고 컨템포러리댄스의 지평을 연 인물로 평가받는다.     


한국무용과 현대무용을 두루 섭렵하며 ‘한국적인 것’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온 그는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에서 예술철학을 공부해 전통춤에 나타난 동양철학 원리를 깊이 있게 연구하기도 했다. 이론과 실제에서 전통과 동시대적 감각을 체화한 손 감독의 이러한 토대는 그가 직접 안무를 맡은 이번 신작에 고스란히 담겼다.


손인영 예술감독은 “국립무용단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첫 안무작인 만큼 그 어느 때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라며 “이번 작품이 끊임없는 실험과 시도로 한국무용의 발전을 이끌어 온 국립무용단과 함께 한국 창작무용의 또 다른 전통을 써나가는 시작이 되리라 생각한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끊임없는 실험과 시도로 한국무용의 발전을 이끌어 온 국립무용단과 자신을 전통무용과 현대무용을 넘나드는 경계인이라 부르는 손인영이 만들어낼 신작 ‘다섯 오’는 한국 창작무용의 가능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동시대적 춤을 통해 지난 30여 년간 예술의 존재 가치와 사회적 역할을 탐색하며 우리에게 깊은 울림, 때로는 사유와 성찰을 전했던 손인영 안무가의 새로운 작품이다. 프리뷰를 통해 느낀 내러티브는 무엇보다 자연과 인간, 환경을 키워드로 우리 마음속 억업된 감정의 응어리에 카타르시스가 되는 희망백신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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