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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파 May 03. 2024

아버지, 밥 차려 주세요.

애매한 아빠의 마음. 작고 소박한 바람.

 복직이 얼마 남지 않았다. 두 달이 채 안되게 남았다. 아이가 잘 먹어준 동그랑땡을 만드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려나? 아내의 부탁 또는 아이의 요청으로 다시 만들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사실 주기적으로 만들어 줄 수도 있겠지만 막상 직장에 복귀하면 그럴만한 심적 여유를 가지기 어렵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회사에 적응하는 시간이 조금 필요하지 않을까 미안스레 짐작한다.                


이렇게 새로 한 동그랑땡을 아이가 먹다가 조금씩 뱉어낸다. 아이가 잘 먹는 메뉴라 굳이 했는데 왜 그럴까? 배가 덜 고픈가? 간이 약한가(건강을 위해 소금을 이전보다 덜 넣긴 했다)? 손수 만든 음식을 이렇듯 뱉어내는 건 참으로 견디기 힘들다. 조금 과장하자면 심적인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아마 이것은 이유식 시기부터 이어진 스트레스임에 틀림없다.      


나는 아이가 9개월이 되었을 무렵에 아내와 교대하여 휴직했다. 그러다 보니 후기 이유식과 유아식의 과정을 맡게 되었다. 그 과정이 쉽지 않았다. 이유는 요리 재료를 고르는 것도 아니다. 조리법을 알아보는 것도 아니다. 요리 중에 안아달라고 우는 아이도 견딜만하다. 이유식의 힘든 점은 다름 아니라 바로 아이에게 ‘먹이기’다. 다른 말로 성숙한 어른으로서의 지속적인 제안이랄까? 여러 과정들을 인내하며 만들어 놓은 결과물을 아이가 뱉고, 던지고, 안 먹고 등의 행동들로 부모님들을 힘들게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로, 주변의 아는 엄마들이 없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궁금하긴 하다.                


아. 생각만 해도 쉽지 않았고 지금도 쉽지 않다. 만든 음식을 안 먹으면 치우면 그만인 것을. 마음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안 먹겠다는 아이의 밥을 치우고 바로 식사와 놀이를 별개로 내 마음을 운용해야 서로 편하다는 것을 나도 안다. 하지만 나는 부족한 아빠라서 그런지 쉽사리 각개 운용이 자주 어렵다. 가끔 잘될 때면 힘차게 돌아가는 엔진처럼 육아도 활력이 돈다. 사람 마음이 신기하고 또 참으로 간사하다. 종이 한 장보다도 얇고, 그 어느 장벽보다도 높다.               


동그랑땡은 내가 해준 요리 중에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아이 요리다. 보통은 소시지처럼 랩으로 말아서 7~8 롤을 만들어 두었다가 썰어서 구워준다. 만드는 건 쉽지만 묘하게 손이 많이 가고 뒷정리도 너저분하다. 그 와중에 화룡점정은 재료 손질 동안 보채는 아이다. 그래도 소박한 바람이 하나 있다. 아이가 사 먹는 것보다 내가 해주는 것을 더 좋아하고 또 먼저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 정도만 되어도 이 시절을 많이 보상받는다고 느낄 듯하다. 이런 게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격언의 연장선일까?               


 내가 썼던 독립출판물의 시 하나에 어머니께 바라는 마음을 고백한 적이 있다. 아마 처음이지 않을까? 무뚝뚝한 아들은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먹고 싶은 요리를 요구하는 게 미안해서 원하는 걸 명확하게 표시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도 그 글을 쓸 때 별것도 아닌 주제와 내용임에도 부끄러웠다. 아니 쑥스러움이 더 많이 차지하는 듯하다.               


그런 나의 고백은 별거 아닌 내용이다. 그저 간장 불고기보다 제육볶음을 더 좋아한다는 것. 하지만 좋은 일, 좋은 날이면 고기를 해주시던 어머니에게 차마 간장 불고기 말고 제육볶음을 해달라고 하지 못했다. 군대 면회를 오셨을 때, 생일 때 그리고 명절 때도 주로 간장 불고기를 아주 맛있게 해 주셨다. 하지만 나는 제육을 좋아하는 쑥스럼쟁이 아들이었다.      


어머니는 분명 내가 독립출판을 한 것을 읽어보셨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 그 글도 읽으셨으리라 생각한다. 이 주제에 대해서 나도 묻지 않았고 어머니도 물어보시지 않으실 것이다. 그럼에도 읽으셨을 거라 확신에 가깝게 추측할 수 있는 이유가 하나 있다. 부모님께 방문할 때면 바로 밥상에 제육이 종종 올라온다는 것. 해주는 것에 감사하지 못할망정 무언가를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죄송스럽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왕 고백하게 된 마당에 맛있고 잔뜩 먹고 돌아오곤 한다.               


나는 아버지에겐 어떤 요리를 요구할 수 있을까? 종종 아버지가 젊은 시절에 감자채 볶음을 해 드셨다고 말하신 적 있다. 아마 그 요리 정도를 추억 삼아서 말씀드려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에게 아버지는 집안 요리를 돕는 아빠의 모습보다는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에 가깝다. 그래서 요리를 진지하게 요구하는 것 자체가 어울리지도 않긴 하다.               


향후 나는 어떤 아빠이자 아버지일까? 아들과 거리감이 생겨 좁히질 못하고 또 무섭고 매정한 아버지가 되진 않을까 종종 걱정하기도 한다. 주변으로부터 종종 아이를 엄청 사랑한다는 소리를 듣지만, 정작 나는 그 정도가 아님을 오히려 걱정한다. 내 안에 있는 '엄한' 모습이 아이를 망칠까 봐 걱정된다. 아니 우리의 '관계를 망칠까'가 적절한 듯하다.               


 우리 부부는 곧 다가올 나의 복직에 맞춰 아내가 퇴사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주양육자가 다시 바뀔 예정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아이가 밥 달라고 찾는 사람이 내가 아니고 아내로 바뀌게 될 터이다. 밥 달라고, 배고프다고 찾는 사람이 '나'인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 그런데 바뀐다니 조금 아쉽긴 하다. 하지만 이것은 기우일지도 모른다. 시커멓게 다 큰 아들이 이렇게 외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아빠 밥 차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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