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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gette J Oct 04. 2022

윤서와 함께했던 9년

2014년 4월 29일 세월호 사건으로 국민 모두가 어두움과 슬픔으로 가득 찼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 위로라도 하듯 14시간의 진통 끝에 2.5kg의 작은 공주가 저희 부부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제일 처음 작은 손으로 아빠의 검지를 감싸 쥐여줬습니다 아직까지 그 작은 손의 감각이 왼손 검지에 생생하게 입력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행복할 줄만 알았던 세 식구의 삶은 1년 뒤 세상에 치료법과 치료 약이 없는 뮤코 지방증 2형이라는 병을 진단받고 언제 어디가 아프고 경과를 알 수 없는 병마와 싸우게 되었습니다


2022년 4월 25일 일상적인 병원 입원에서 산소호흡기를 잠깐 벗는 순간 제 심장 윤서가 가슴을 번쩍 들어 올리며 눈의 초점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호흡도 불안정하고 의식도 명료하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선생님들이 달려와서 윤서의 맑은 눈을 볼 수 있도록 땀을 뻘뻘 흘리며 노력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1시간 뒤 갑자기 윤서는 하늘의 별이 되었습니다 9살 생일을 4일 앞둔 어느 날 윤서는 그렇게 아빠 엄마 품을 떠나갔습니다


만 8년 11개월 25일 윤서와 함께했던 시간은 항상 살얼음판 위에 외줄을 타는 기분이었습니다 물론 윤서에게는 절대 티 내지 않았지만 저희 부부는 그 현실의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당장 내일이라도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담아내기조차 어려운 그 순간들이 우리 가족에게 오지 않기를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현실이 다가와도 더 아프지 않기 위해 조금씩 마음을 단련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그 누구보다 하루를 지독하게 행복하게 보낼 수 있도록 치열하게 살아왔습니다


이렇게 늘.. 준비를 해왔지만 이번에 벌어진 이별은 아니었습니다 불과 몇 분 전에도 성대하고 행복한 생일파티를 위해 졸린 눈 비비며 입원해서 비 삼촌의 노래를 들으며 웃고 있던 윤서는 처음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겨울날처럼 아빠의 발을 동동거리게 만들었습니다 엄마의 서프라이즈 때문에 아내에게 무슨 일이 있는 줄 알고 그렇게 만들었던 것이었죠 강낭콩보다 작았던 생명체가 그렇게 익살스럽게 찾아왔던 것처럼 떠나는 그 순간도 아빠는 발을 동동 거리며 초조함에 구르고 굴렀습니다 그리고 1시간 동안 수십 명의 선생님들의 발도 구르게 만들었습니다 간절함에 저도 모르게 발은 더 힘차게 굴러졌지만 아빠에게 갑자기 찾아온 그 순간처럼 그녀는 갑자기 떠나버렸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힘겹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또 며칠 뒤 윤서가 잠들면 몰래 방문을 열고 컴퓨터를 켜고 치열하게 살았던 감정을 잊지 않기 위해 키보드를 두드렸던 방에 들어왔습니다 또각또각 무감각하게 키보드를 누르며 고개를 살짝 돌려 봅니다 온통 정리되지 않은 윤서의 채취와 유치원 학교에서 만들었던 소소한 걸작들을 들고 아빠를 찾아와 당장 자랑할 것만 같은 기분입니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 윤서가 떠나버려서 힘든 것뿐이지 많은 분들이 생각하시는 거와 달리 저희 가족은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하루하루 즐거웠고 감사했고 서로의 얼굴을 보기만 해도 웃음이 떠나가질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성격이 사실 굉장히 좋지 못합니다 어릴 적 아픔도 상처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객관적으로 무엇을 바라보고 판단하기 힘들었던 쉽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꼬이고 꼬여 풀기 힘든 실타래처럼 말이죠


윤서를 세상에 내놓고 사람들과 소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것들을 스스로 배우고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편견을 깨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몇 글자의 단어에서 사람들의 온기와 감정을 흡수하며 위안을 많이 얻었습니다 윤서가 세상에 있었기 때문에 절대로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많은 경험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훌륭하신 분들과의 만남 저희 가족보다 많은 슬픔과 아픔을 먼저 경험하시고 내어주신 감사한 분들과의 소통 덕분에 많이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소소한 저희 가족의 일상을 공개하고 많은 것들을 다시 정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장애는 조금 다르고 불편한 것뿐이지 행복의 척도와는 전혀 관계가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누구보다 평범하고

행복하게 일상을 보낼 수 있음을요 우리도 평범한 누군가의 이웃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윤서를 통해 자신의 실리를 취하고 윤서에게 쏟아지는 관심이 자신의 결핍을 더 단단하게 하고 자신의 아이의 관심으로 묻어나게 하기 위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좋은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저희 가족을 이용하여 이상한 소문과 프레임을 주변 분들이 씌워 주시기도 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아팠던 저희 가족에게 몇십 년 전 결핍으로 가득 찬 저와 같던 모난 여러분들 그래도 감사합니다 지금은 다른 방향이지만 저처럼 어떠한 계기로 방향을 바꾸어 좋은 세상의 씨앗이 곧 퍼질 거라 믿습니다 저도 많이 발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생각의 차이가 사람을 바꾸고 아주 작은 프레임의 차이가 세상을 바꾸는 것 같습니다 윤서와 함께한 세월이 피부와 뼛속 깊은 곳까지 느끼게 해줬습니다 늘 꿈꿨던 윤서와의 마지막 인사는 보통의 장례식이 아닌 초록 초록한 잔디밭에서 이뤄지만 미국의 파티 문화처럼 웃으며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 늘 저희 부부 한편에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한 황망한 이별에 멋진 피날레는 무산되었습니다 그래도 윤서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시고 많은 분들의 응원으로 푸르른 하늘 속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 가서 행복한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모나고 거친 투박한 감정을 글로써 기록하며 슬픔을 이겨내려 합니다 지금 바로잡지 않고 기억하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저조차도 왜곡된 이야기로 만들어 버릴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바르게 살지 못할 것만 같아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순간의 이야기보따리를 이곳에 납깁니다 그동안 감사하고 감사했습니다 조금씩 천천히 잘 이겨내 보겠습니다


이제는 저희 가족의 소식을 통해 우울함과 힘듦이 생산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윤서를 통해 행복하게 즐거웠던 그 에너지가 계속 증폭되어 하늘에 새로운 여행을 떠난 에너지가 기쁨과 행복으로 나뉘어 모두에게 채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서프라이즈 같던 슬픔은 이제 그만 다시 예전처럼 맛있게 먹고 미소가 예쁜 쪼블리의 행복에너지를 만끽할 시간입니다 짧은 시간 늘 응원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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