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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gette J Nov 09. 2023

건강한 아이를 키워본다는 것..

"응애~ 응애~" 출근을 위해 맞춰놓은 알람 시간보다

조금 일찍 "꼬끼오~ 꼬꼬"처럼 우리 집 알람시계는

우렁차게 온 집안을 울린다 눈을 비비며 아현이를 안고

아직도 10년 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신문물 같은 기저귀

갈이대에 아이를 눕히고 몸이 기억하는 대로 로봇처럼 일을

마치고 수유 준비를 시킨다

.

그리고 조금은 이른 아, 점 준비를 한다 나는 아침에 정신이

없다는 걸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전날 조리를 위한

재료를 손질하고 지금은 신선하고 따뜻한 온기가 오래갈 수

있도록 아내가 먹을 음식을 준비해 본다 하루하루 매일 하는

메뉴들은 태어나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들이 수두룩  하지만

내 친구인 초록창과, 너 튜브의 힘을 빌려 오늘도 비슷하게 모습을 그려내고 뇌에 저장되어 있던 맛들을 소환해 준다

.

출근을 하면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하고 점심에 자투리 독서를

하곤 했는데 요즘에는 그냥 기절하기 바쁘다 집에서 하는

것도 별로 없는데 왜 이리  피곤한지 젊은 아빠에서 그냥

아저씨가 되어가는 과정인가 씁쓸하다 그래도 예전과는

다르게 그동안 있었던 많은 시련 속에서 배운 것이 내 몸이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기에 다시

운동하기로 마음만 일주일째 먹고 있다.. (곧 실행해야지..)

.

퇴근을 한다 손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 오늘 하루종일

아현이의 밥통이 된 아내와 이야기를 하며 후다닥 저녁을

준비한다 동네에 로컬푸드 마켓이 있어 신선한 식재료가

나를 유혹해 담아온 장바구니를 카운터에 펼칠 때

얘는 뭐 하는 사람인가?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나를 며칠

따갑게 했지만 이제는 당당하게 포인트 번호도 남기는

억척 주부가 되어버렸다

.

며칠 전 먹고 싶었다는 메뉴로 저녁을 준비하고 설거지하고

신생아 같지 않은 아이의 엄청난 빨래와 수건을 정리하고

조금 앉아 있다가 조금이나마 아내의 시간을 보장해 주기

위해 아이를 안고 소파에 거의 눕다시피 있다가 한 몸이 되어

같이 잠들면 어느새 저녁이 밤이 되고 조금 기운을 차린 아빠는 다시 내일 아침을 준비하는 쳇바퀴 속에 탑승하고 있다

.

그러다 이제 주방을 마감하고 잠들어 있는 아이옆에

물끄러미 서서 숨죽인 채 바라본다 올곧게 다 펴지는 다리와

손가락 발가락이 우리 부부에겐 엄청나게 생소하다

(심지어 만세를 하며 자는 모습까지도)

.

그리고 엄마젖을 잘 빨지 못했던 첫째와는 달리

"젖 먹던 힘까지"라는 말이 이래서 생긴 거구나 싶을 정도로

머리까지 빨개져서 밥을 먹는 녀석을 보면

정말 경이로울 정도로 신기함이 가득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건 아침에 나갈 때 보는 모습과 저녁에 퇴근하고 주방까지 마감하고 나서 보는 아이의 모습은

정말 눈에 보일 정도로 달라져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나 빨리 큰다고?)

.

하루하루 아니 12시간 주기로 아이들이 크는 것인가

10년 동안 쪼끄만 천사와 살았던 우리 부부는 이런 상황이 신기하기만 하다 그리고 얌전하고 순둥순둥한

친구와 살다가 우렁찬 울음소리와 모유를 먹지만 분수 토를 하는 녀석을 상대하면서 어안이 벙벙해지기도 하고

배변활동이 엄청나 기저귀를 뚫어 버려 옷과 심지어 아기 띠까지 오염시키는 거대한 아이가 신기하기도 하지만 하루하루 감당이 되지 않는다 10년 동안 함께해 준

얌전한 먹보 우리 엄지 공주가 너무 보고 싶기도 하다.. (윤서야 너는 빙산의 일각이었어..)

.

첫째 때 가보지 못해 한이 맺힌 산후조리원을 간 아내는

역시나 불만족하고 아빠 산후조리원에 입실해서 평화롭게 잘 지내고 있다 코로나가 한참 지났는데

이곳은 아빠의 입실을 철저하게 차단해서 "야호~2주 동안 휴가다" 쾌재를 불렀으나 갑작스럽게 이사 날짜를 당기게 되어 주간에는 이것저것 업무도 보고 저녁에는

이삿짐을 쌓는 불쌍사를 겪게 되었

(절대 이사 와 출산은 같이 하지 않으리 다신..)

.

사실 윤서의 그늘이 처음과 끝까지 깊게 새겨진 그곳에서

빨리 벗어나야 아내가 심리적으로 안정될 것 같아 불도저처럼 밀어붙여 이사를 했지만 결론적으로 잘한 것

같다 지금 새로운 공간에서 윤서 동생도 잘 크고 엄마도 잘 지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좋은 건 지금 공간이 윤서가 있는 곳과 더 가깝다는 점도 좋은 것 같다

.

아무튼 지난주에는 한 생명체가 온전한 성인으로 태어나서

아이를 낳고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그 엄청난 일을 해주신 우리 부모님께 다시 한번 존경을 표하고

나는 그저.. 절대 거저 큰 게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되었다 (어떤 우여곡절이 있든 간에..)

.

그리고 이번 주에는 어머님께 참 또 죄스러웠다

아침, 점심, 저녁, 뒤돌아 서면 밥때가 찾아오고 반찬은 재탕을 할 수 없는 그 슬픔 왜 어머니들이 외식을 그토록 사랑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어릴 적 반찬투정하고 차려서 앞으로 가져다주어도 먹지 않았던  나의 그 철없는 그 시절로 돌아가 꿀밤이 아니라 어퍼컷을 날리고 싶을 정도로

못되었던 나의 그 순간들이 떠올랐다

.

한쪽이 다 마비되어 불편한 몸으로도 아들이 먹겠다면

행복해하시며 음식을 해주셨던 우리 어머니 아들이 먹고 싶다면 뭐든지 다 해주셨고 그 음식 맛이

보통이 아니라 상위 클래스에 있었다는 사실도 지금에서야 알게 된 어머니의 손맛 지금도 살아계셨다면 밤새 뭐를 끓이고 해도 지치지 않으셨을 우리 엄마 음식을 하면서도 죄스럽고 마음이 무거워지는 건 내가 그만큼 못된 자식이었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것 같다

.

그나저나.. 음식을 하면 할수록 느끼는 거지만 정말 삼시 세끼 다해서 아버지가 수저 들기 전까지 맛있는 음식도 먹지 못했던 가부장적인 세상에서 자라온 나는 그때의 어머니들이 정말 존경스러울 뿐이다 정말 건강한 아이를

키우는 것도 모르고 있었던 부모님의 사랑을 다시 느끼게 해주는 것도 한 생명이 다시금 우리 집으로 찾아와 매주 무언가를 배우고 깨닫고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 어머니들 정말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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