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5일 오후 8시 51분에 세상에 나왔으니, 6시간이 모자란 두 달을 알뜰하게 채워 준 아이에게 감사한 마음이 가득입니다. 그 무엇보다 감사한 점은 아기띠로 뒤로 업어 재울 수 있다는 점입니다. 두 손 두 팔로 조심스레 안고 달래줘야 할땐 그나마 눈이라도 행복하자며 자연스레 각종 예능 프로그램을 섬렵했었죠. 그리고 또 그런 내가 너무 한심해서 울곤 했었죠. 이건 16년 첫째 때나 19년 둘째 때나 강산이 조금 바뀌었을, 22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늘 그렇듯, 아이는 크기 마련이고 시간은 돌아오는 법입니다. 아기띠를 뒤로 매면 세탁기와 건조기를 자유자재로 넘나들을 수 있습니다. 좁은 집 안에서 갈 수 있는 곳이 얼마 되지 않을 때 세탁실에 들어가는 제 모습은 마치 왼손을 거둘 뿐을 외치는 강백호처럼 비장합니다. 두 손이 자유롭다는 것은, 그리고 아이가 내 등 뒤에서 새근 새근 자고 있다는 숨소리는 저를 늘 자신있게 만들어 줍니다. 그 덕에 이렇게 노트북을 꺼내 오랜만에 일기도 쓸 수 있습니다. 옛 시절 포대기로 아이를 들쳐 매고 앉을 새 없이 지독히도 바빴던 엄마들의 천 분의 일도 바쁘지 않지만, 그래도 그 마음만은 이렇게 배웁니다.
아기띠 혹은 포대기를 앞으로 매는 것과 뒤로 매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혹시 주변에 첫째 엄마들이 있다면 꼭 뒤로 업기 모드를 몸소 가르쳐 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저도 첫째 땐 조심 조심 앞으로 안으며 눈맞춤을 하던 시절이 있었죠. 이렇게 적으니 저도 아이를 몇 번 낳았다고 육아 꼰대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뒤로 아이를 매는 것에 한 번 익숙해지면 정말, 정말, 좋습니다. 요즘 대화도 안하고 글도 안 썼더니 이 이상의 단어가 생각나질 않는군요. 표현력이 7세 첫째 수준이 되었지만, 뭐 이 또한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둘째를 낳고 엄마가 건조기를 사주셨고, 셋째를 낳고 아버님이 식기세척기를 사주셨습니다. 늘 도움만 받고 살지만 이 두 도움은 특히 기억에 남는 도움입니다. 건조기에 이어 식기세척기의 도움을 받으며 세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엄마가 가끔 도와주신다고 등판하시는 날이면 고마우면서도 나이 든 엄마 고생만 시키는 모자란 딸이 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이 두 아이들은 전혀 미안하지 않습니다. 그저 기특하고 자랑스러운 마음만 가득입니다. 혹여 엄마도 저에게 이런 감정일까요. 엄마에겐 늘 기특하기만 한 자식이고 싶고, 아이들에겐 늘 멋있는 부모가 되고 싶은데 왜 양 쪽 모두에게 미안함만 가득한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아이가 한 명씩 태어날 수록 할 수 있는 것들도 도움을 받는 것들도 모두 많아집니다. 그 모든 것이 지금의 저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