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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떼 Jun 16. 2024

제주 - 다섯 번째 여름

제주에서의 다섯 번째 여름을 맞이했다. 해가 지나는 것을 여름으로 기억하는 나. 나는 언제부터 여름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오늘도 늦은 아침 겸 이른 점심을 위해 동네 빵집에 빵을 사러 다녀오는 길 잠깐 걸었을 뿐인데 몸 여기저기서 흘러내리는 땀을 느끼며 '더워, 빨리 찬물에 샤워하고 싶다!'하며 괴로워하다가도 찬물 샤워 후엔 언제 그랬냐는 듯 바람이 몸을 관통하는 가벼운 원피스를 입고 앉아 수박을 먹으며 활짝 웃을 수 있는 이 계절 '여름'을 나는 분명 사랑한다. 


작년까지 잘 작동하던 에어컨이 말썽이다. 주말이 시작되던 밤 드디어 여름인가 하고 올여름 첫 에어컨을 켰는데 작동시킨지 한 시간이 지나도 찬 바람이 나오지 않는다. 아래층에 사는 집주인분이 이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달려와서 봐주셨지만 아무래도 엔지니어를 불러서 알아봐야 할 것 같다. 휴- 아직 그늘에 앉아있으면 찬바람이 불어와 시원한 날씨이니 다행이지. 조금 더 늦게 이 사실을 알아차렸다면 매일 무한 반복의 샤워를 할 뻔했다. 


사실 나는 더위를 많이 타지 않는 데다가 에어컨 바람보다는 자연의 바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창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기분이 썩 좋긴 하다. 하지만 그런 나조차도 에어컨 없이 여름을 나기는 어려우니 얼른 서비스센터 접수를 해야겠다. 오늘의 To Do -


오늘은 여름 맞이 대청소를 했다. 우리집은 시내에 위치한 작은 2층 주택의 2층으로 바다 쪽으로 난 작은 테라스에서 아주 작게나마 바다가 보이는 구조다. 바다가 보이는 거실의 큰 창 옆에 테이블을 두고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며 시간을 보내곤 하는데 이사 온 후 한 번도 청소하지 않아 더러워진 창과 방충망 때문에 이 작고 소중한 뷰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 아쉬워서 청소 업체를 불러서라도 청소를 해야겠다 했더니 남편이 자기가 할 수 있다며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남편이 바깥 창과 방충망을 하나하나 분리해서 닦고 그사이 나는 안쪽 창과 창틀을 열심히 닦았다. 또 땀이 났고 오늘의 N 번째 샤워를 해야 했지만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 개운한 기분이 든다.


집은 어쩌면 또 다른 내가 아닐까 하고 종종 생각한다. 어디서 였더라 혹시 우울한 마음이 든다면 지금 당장 집 청소를 해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것만으로 꽤 괜찮아진 마음이 들 것이라고. 


집을 가꾼다는 것은 내 주변의 환경을 정리 정돈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분명 있다. 일어나자마자 물 한 잔을 바로 마실 수 있게 씻어진 컵, 아침 샤워를 마치고 꺼낸 보송보송한 새 수건, 문을 열면 내가 원하는 것을 바로 집어 들 수 있게 정리된 냉장고, 집을 나설 때 바로 신을 수 있도록 잘 벗어둔 신발. 이 모든 것들이 나의 하루를 완성하는 작은 조각들이다. 그러니 내일도 나 그리고 나의 집을 아끼고 가꾸는 것을 미루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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