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롭고 다채로운 세상이기에
과학과 예술 그 사이 철학 5/
지난 과학과 예술 그 사이 철학에서는 불안이라는 감정에 관해 이야기해 보았다. 오늘은 모든 이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너무도 버리고 싶어 하는 감정 중 하나인 열등감에 대해서 말해볼 예정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다른 이와 자신을 비교하며 우열을 가린다. 아무리 본능적이라고는 하지만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알 수 있게 된 수많은 타인의 소식과 정보들은 참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럽고 괴로운 열등감을 불러일으킨다. 자신보다 우월해 보이는 외모, 능력, 재산 등 수많은 조건을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된 현대사회에서 열등감은 심각한 사회적 갈등과 고립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실 나는 태생적으로 열등감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다. 예술과 디자인을 업으로 삼고 있기에 미디어와 거리를 두기 쉽지 않은 현재까지도 말이다. 그렇다면 열등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과연 이 감정에 대한 글을 써도 괜찮은 것인지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열등감을 인지하지만, 이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러한 본인의 노하우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꽤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공부를 곧잘 했던 나는, 이 시기에 최초로 열등감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성적이 오르면 오를수록 나보다 높은 등수를 기록한 친구들을 질투하게 되었고, 그들보다 높은 등수를 차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열등감이 커지면 커질수록 공부에 대한 집중력은 높아졌고 중학교를 졸업하기 직전, 마침내 전교 1등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었다. 이때까지만 보면 열등감은 자신을 발전시키는 원동력과 같은 든든하고 힘이 되어주는 존재였다. 그러나 성실함, 이해력, 기본적인 응용력과 암기가 요구되는 초, 중학교의 시험과는 달리 고등학교의 시험은 그 난이도가 상당히 높고, 배우는 과목에 대한 깊이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깊었기에 열등감을 동력 삼아 발전할 수 있는 것에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고등학생 당시 과학에 매료되어 이과를 선택하였으며, 과학을 좋아했기에 자연스레 큰 노력과 많은 시간을 쏟았고 이는 나에게 최상위권 성적으로 보답해 주었다. 그러나 이과생에게 과학만큼 중요했던 수리영역에는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전혀 도달할 수 없는 경지가 존재했다. 이는 같은 반에서 수학으로 날고 긴다는 몇몇 친구들로 인해 더욱 절감할 수 있었다.(물론 이들은 높은 수리성적을 얻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결국 나는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열등감을 연료로 사용해 가며 발버둥 치더라도 이들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마침내 인정하게 되었다. 이 감정은 좌절이나 허탈과는 다른, 다소 긍정적인 체념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로 인해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능력과 가치가 있으며, 타인과의 비교로 인해 느껴지는 열등감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후 대학에 진학하고 사회에서 만나거나 인터넷으로 접하게 된 많은 이들은 내게 열등감을 줄 수 없었다. 사실 높은 과학성적이라는 뾰족한 무기가 내게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러한 깨달음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부가 아닌 외부의 방향으로 시선을 옮긴 채 세상을 바라본다면 누구에게나 고유한 능력과 매력이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으며 열등감이라는 괴로운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개인적인 경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인간 외의 생물을 바라볼 때, 동식물들 각각의 우열을 가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초원의 왕 사자, 떼를 지어 유영하는 정어리들, 들판에 핀 꽃들과 그 사이를 날아다니는 곤충들은 어느 것 하나 우월하고 열등한 존재로 분류될 수 없다. 오히려 이들은 다양성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각자의 생태학적 역할과 기능에 충실하며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생물들은 경쟁보다는 서로를 보완하는 공생의 원리를 따르며 자신들만의 고유한 삶을 살아간다.
생물의 범주에 포함되는 인간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각자 고유한 능력과 장점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성적이나 재산과 같은 수치로 줄을 세우는 경쟁사회 속에서 그러한 능력과 장점들은 쉽사리 잊히고 지워진다. 그러나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역할이 존재하고, 각각의 역할들은 다양한 능력을 갖춘 사람들로 인해 수행된다. 학창 시절 수학이나 과학을 잘하는 능력은 쉽게 두드러지고 누구나 부러워하는 것 중 하나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말을 조리 있게 하는 능력, 타인에게 상냥하게 대하거나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능력 등 수치로 나타낼 수 없는 수없이 많은 능력이 필요하다. 마치 다양한 생물들이 공생하며 생태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인간 사회에서도 각자의 고유한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며 사회 전체를 풍요롭게 만들어 간다.
예술 또한 마찬가지이다. 예술가들의 숙명은 누군가를 이겨내고 우월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개성 있는 스타일과 세계관을 창조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사는 세상에 단 한 가지의 색으로 그려진 예술작품만 존재한다면 무미건조하고 지루할 것이다. 톡톡 튀는 색감에 묵직한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키스 해링(Keith Allen Haring)의 벽화라든지, 고독했던 삶을 강렬하고 거친 소의 모습으로 승화시킨 이중섭의 회화, 만화라는 보편적인 소재를 자신만의 표현법으로 구현한 로이 리히텐 슈타인의 작품 등 작가만의 독특하고 개성 있는 정체성을 녹여내려 한 시도들로 인해서 예술은 풍요롭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자본주의라는 현대사회의 시스템과 발전된 미디어는 우리를 곧잘 열등감이라는 함정 속에 빠뜨린다. 유명한 연예인의 화려한 외모를 우월하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하나뿐인 얼굴을 마치 게임 캐릭터를 고치듯 손쉽게 바꾸며, 타인과 비교했을 때 자신이 가진 것들이 열등하다 느끼며 삶을 포기하기까지도 한다. 모두의 얼굴이 똑같이 생긴 그리고 모든 이들이 유행하는 비싼 재화들로 치장된 사회는 과연 아름다울까? 물론 열등감은 우리에게 긍정적인 발전의 계기나 성장의 동력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괴롭거나 부정적인 마음을 심어주기도 한다. 과학과 예술의 관점을 통해 우리는 열등감을 극복하고 고유한 행복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개개인의 독특한 성향과 관점을 모아 다양한 세상을 만들어 나간다면 우리의 삶 또한 풍요롭고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조화로운 생태계와 다채로운 예술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