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은 미세한 머뭇거림에 귀를 기울인다. 작가는 발화이전의 공백, 움직임 사이의 행간과 같이 표현의 준비 과정임과 동시에 그 자체로 표현인 침묵의 순간을 조명한다. 침묵함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드러낸다. 지저귀는 새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침묵해야 하듯이, 인간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작가의 시선은 잘 알고 있다. 침묵을 조명함으로써 표현을 완료가 아닌 과정으로, 그리고 다양한 양태로 분화될 수 있는 미완의 순간이었음을 회상한다. 작가는 일상 속에 뭉개져 있는 분화의 순간들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 도래할 이별의 순간에 대한 불안을 조명하여 마주한다. 표현함과 침묵의 뒤섞임을 통해 언제나 완료 불가라는 모호한 지평에서 김소영의 작업은 인간의 인간성을 포착하고자 한다.
고대사회의 인간들은 자연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경외심은 고대사회의 인간들로 하여금 자연의 사물을 존중하도록 하여 교류의 대상으로 인정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기술의 눈부신 발전들위에 세워진 현대사회는 자연의 사물들을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도구적 재화로서만 바라보기 쉽게 만들었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이러한 도구적 시선은 사물들이 우리에게 내비치고 있는 존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힘들게 한다. 바야흐로 존재망각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자연과 세계를 도구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개인의 인간성 또한 망각하게 만들었다. 도구적 시선은 그저 있음으로써 다가오는 인간의 존재보다는 표면적으로 다가오는 그 대상의 유용성만을 바라보기 쉽게 한다. 이러한 시선으로 탄생하는 기계적 인간관속의 개인은 교감과 소통의 가치로부터 소외되어, 목적으로 다루어지기보다는 수단으로써 취급된다. 그리고 타인을 수단으로 취급하며 탄생하는 오만한 주체들은 자기 자신 또한 수단으로 취급하여 본인 스스로의 존재 또한 망각하게 된다. 이리하여 세계는 점점 의문 없이 텅 빈 기계들로 채워져 간다.
존재망각의 시대 속에서 김소영은 일상 속의 당연함에 가려진 타자, 사물들을 외면하지 않는다. 작가는 타자와 마주 보며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인다. 타자들이 우리를 향해 다가올 때 그것을 마주 보는 나와 타자의 관계는 불가분적이다. 각자 서로가 서로가 됨으로써 나타나는 존재론적 지평은 도구적 유용성에 앞서 항상 선행되는 것이다. 작가가 바라보는 타자로서의 사물들은 무엇을 위한 것이 아니라 존중받아 마땅한 것들이다. 이번 전시 《살과 조개더미의 언어》는 그것들의 그저 있음에 주목한다. 누구의 추억인지 모를 사물의 기억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작품을 바라보는 감상자 또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기억의 담지자임과 동시에 그것을 현재로 끌어와 현전 시키는 회상의 주체로서 세계의 생성과정에 참여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김소영은 빛을 칠하지 않음으로써 표현했다. 작가가 조명 앞에 붓을 내려놓았듯이 존재의 조명은 침묵을 통해 귀를 기울일 때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작가는 타자의 발화를 주목하기보단 침묵을 조명함으로써 피상적 소통을 지양하여 대상과 밀도 있는 교감을 이루고자 한다. 캔버스에 비친 타자의 손은 대상의 역사성을 대변하는 매개체이다. 발화행위에 앞서서 손은 아직 말해지지 않은 것임과 동시에 이미 말해진 것으로서 언제나 우리에게 보이며 열려있다. 작가는 이러한 손의 개시성을 포착하여 타자에게로 다가간다.
작가는 이미 지나가버려 그때, 그것이 된 기억들의 빛바램을 서정적인 색채로 담아내어 회상한다. 기억 속에는 눈앞을 기웃거리는 무수한 잡담들과 이어지지 않는 혼재된 여백들이 떠돌아다니며 우리의 시선을 흐린다. 그럼에도 작가는 그것들에 귀를 기울임을 놓지 않으며, 회상 과정 속 노이즈와 질감 또한 함께 담아내어 내용의 깊이감을 더한다. 잡담들 사이에 놓인 존재사건들을 영사기의 재생을 지속하듯 작가는 침묵의 가시화를 통해 끊임없이 회상하고자 한다.
Fall Asleep, 2023, Acrylic on Korean paper(Jangj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