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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Jan 30. 2022

그러니까 이것은 새해 첫 날 엄마가 된 이야기.

믿을 수 없지만 내가 엄마가 되다





한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그날은 2022년 1월 1일이었다.

아마도 살아온 그리고 살아갈 인생에서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이 될 날.

38주 차 임산부였지만 혹시나 만에 하나

이른 출산을 할까 우려되어

12월의 마지막 3일을 누워서만 지냈던 터라

1월은 새해 땡 하자마자 놀러 다닐 생각만 했다.

그 중 첫 번째 계획은 새해맞이 거창 감악산 일출행.

임신하고 못한 차박을 하자고 내가 졸랐지만

영하의 추운 날씨에 산 정상에서 일박이일은 무리일 거라며 새벽에 드라이브 삼아 일출만 보러 가자고 남편이 달랬다.


happy new year 2022!!!!!!!


2022년 새해 카운트다운을 하고서

새벽 3시 알람을 맞추어 놓고 설레며 짧은 잠을 청했다.

"아..."

생리통처럼 싸르르 한 아픔에 알람이 채 울리기도 전에 먼저 눈이 떠졌다. 주기적으로 반복되었다.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일이 분 후에 사그라드는 그런 통증.

어라 혹시 이거 가진통인가.

예닐곱 번 일정한 통증이 지속되자 그제야 혹시나 하는 생각에

주기 체크하는 어플인 '진통'을 다운로드하였다.

통증이 오는 주기를 체크하면서도 생각했다.

'아직 예정일은 열흘이나 남았는데 뭐...'

그리고 임신 전 워낙 심한 생리통을 겪어왔던 터라

(늘 느끼지만 내가 느끼는 생리통을 비유하자면 자궁 안이 철수세미로 벅벅 문질러지는 고통이다.)

참을 만한 이 정도 통증으론 절대 출산으로 이어질 리 없다 생각했다.

그럼에도 6~7분 주기의 진통이 한 시간 넘게 이어져 갔고, 차차 더 잦아졌다.



처음 진통오던 때 주기를 입력하니 갈 준비하라더니(왼쪽)                            한시간 반이 지나자 병원 가라고 재촉(오른쪽)


이쯤 되자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옆에서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웠다.

"나 진통 온 거 같아..."

아침 7시,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는 진통에

결국 다니는 병원에 전화했다.

수화기 너머로 받은 간호사는

"진통 간격이 어떻게 되세요?

초산이세요 경산이세요?"라는 형식적인 질문을 하더니

생각보다 무덤덤하게 말하는 내 목소리에다가

초산이면 아직 자궁문 안 열렸을 거라며

주기 1~2분 주기가 되거나 양수가 터지면 그때 병원으로 오라고 말했다.


전화를 끊고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는데

붉은 선홍빛의 피가 묻어 나왔다.

이게 말로만 듣던 이슬이구나. (출산 징조인 피 비침을 왜 이슬이라고 하는지는 이해불가.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무색무취의 어떤 것인 줄 착각할 게 뻔하다. 나도 그랬고.)

어쨌든, 그쯤 되니 주기는 일정하진 않지만

3~5분 내외로 줄어들었고

대구의 병원까지는 1시간 30분 거리.

혹시 모르니 채비를 해서 나섰다.

아직 출산하려면 멀었다고 거절 당해

다시 돌아오리란 예상하며 병원으로 향했다.


감악산에 가서 보는 대신, 유튜브로 실시간 일출을 with 진통


"만에 하나 1월 1일생 되면 웃기겠다.
이름을 박새해라고 지어야 하나."

차 안에서 농담을 할 정도로 통증은 참을만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배 부여잡고 꺅꺅 소리 지르는 임산부에 익숙한 남편도 옆에서 멀쩡한 나를 보고

출산하는 건 아닐 거라 확신을 했다.



1월 1일 아침, 계획에 없던 대구행.


9:10 도착한 병원은

공휴일인 만큼 조용하고 근무하는 직원도 몇 안되었다.

3층 분만실에 가서 접수를 하고

서류 몇 가지를 적어 내고 병원 옷으로 갈아입었다.

누워서 기다리다 내진을 했다.

9:20 긴장 속 첫 내진을 받았는데, 이어지는 간호사의 말.


"자궁문이 20% 열렸네요 출산 준비합시다."


네.....? 뭐라고요? 출산이요!???

그 말을 들은 후 30분 안에 제모와 관장까지 출산 전 3대 굴욕을 순식간에 다 당했다.

비닐장갑을 끼고 안에 손을 넣어서 이리저리 후벼 판다고 들어 걱정했던 내진은 약간의 불쾌감은 들어도 참을만했고.

제모는 그냥 서걱서걱, 남이 그곳을 깎아주는 이상한 경험이었다.

관장은 약을 넣고 최소 3분은 기다려야 하는데

넣자마자 오는 신호에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바로 뛰어 들어갔다.

처음에 서류 접수할 때 무통주사는 안 맞겠다 했었다. 부작용이나 후유증이 두려워서. 그런데 간호사분이 내 말에 반색하며 다시 생각해보란다. 요즘 안 맞는 산모들 없다고. 맞으시는 게 좋을 거라고.

그래서 나는 생각을 바꿔 그냥 맞기로 했다.

무통주사는 자궁문이 40프로는 열렸을 때 주입이 가능하다.

11:25 2차 내진을 했는데 자궁문이 3~40% 열렸다고.

그래서 무통주사를 맞고 드디어 가족분만실로 이동했다.


가족분만실에서, 긴장 속 남편과.


방처럼 조성해서 그런지 나름 아늑했고

TV를 틀어 우리가 종종 보는 국민가수를 시청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통증은

몸을 배배 꼬게 만들었고 신음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남편이 옆에서 손 잡아주고 같이 있어줘서  덜 긴장할 수 있었다.

지겨움 반 초조함 반 속에서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14:00 3차 내진을 했는데 60% 이상 진행되어

이제 분만을 한다고.


세명의 간호사가 와서 분만 준비를 하고

호흡하는 법을 알려주고 자세를 취해 힘 주는 걸 도왔다.

아침에 대구 오는 차 안에서 유튜브로 출산 호흡하는 영상 벼락치기 공부하길 잘했다.

그리고 맘스쿨 산모교실에서 요가 수업 때 배운 자세도 상기하며 힘주기에 집중했다.

하필 내 담당의는 쉬는 날이고 서울에서 못 오셔서 대신 다른 당직 의사 선생님이 들어왔다.

힘줄 때 남편이 옆에서 손잡아주거나 머리 채 쥐어 뜯기는 줄 알았는데 나가 있게 했다.

출산에 임박해 느끼는 진진통은 차 타이어가 배 위를 밟고 지나가는 거랑 맞먹는댔다.

그런데 잘 안 들어서 2번 주입한 무통주사가

뒤늦게나마 효과가 조금 나타나기 시작해서 그런지

무척 아프지만 참을만은 한 고통이었다.

원래 내가 고통을 잘 참긴 참는 편이긴 하다.

다들 출산할 때 수박이 똥꼬에 낀 느낌이라 했는데

그 정돈 아니었고 그냥 아래에 주먹만 한 대변이 끼어서 안 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시키는대로 호흡하며 다섯 차례 온힘을 다해 힘을 줬다.

그랬더니 왈칵, 아래에서 몸속에 있던 온갖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시원한 느낌과 동시에

"으아아아아앙~~~~~!!!!!!!"


그렇게 2022년 1월 1일 오후 3시 9분,

3.2kg의 건강한 남자아기를 출산했다.

생각보다 작고,

생각보다 팔다리는 길었으며,

생각보다 울음소리는 많이 우렁찼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작은.


밖에 있던 남편이 들어와서 아기를 안아 들었다.

간호사분이 "아빠 아기 이름 불러주세요"

하는데 남편이 입을 잘 떼지 못했다.

처음엔 쑥스러워서 그런 줄 오해했는데 알고 보니

음소거 모드로 오열하고 있었던 것ㅋㅋㅋㅋㅋ

매사에 덤덤하고 무심한 그인지라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을 잊지 못해 하는 그 모습이 신기했다.

나중에 들으니 분만실 문앞에서 대기하는데

힘주는 내 신음소리에 눈물 한 번,

그리고 차밍이 울음소리에 두 번,

그리고 들어와 처음 실물을 보고선 주체할 수 없이 왈칵 쏟아졌다고.


그때 나는 후처치로 회음부 절개 한 부위를 꿰매고 있었는데

출산할 때의 고통이 얼마나 컸으면

생살을 꿰매는데도 아픔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시원했다.

뱃속에서부터 3주나 앞선 키와 다리랬는데,

진짜 긴 팔다리를 허우적대며 귀청이 떨어져 나갈 듯

우렁차게 울어대는 아기를 처음 본 소감은

무척이나 비현실적이었다.

꼭 드라마 속에 나오는 움직이는 모형 아기인 것만 같았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작고 약해서 울컥했다.

그리고 남편이 탯줄을 자른 후 드디어 내 품에,

정확히 말하면 내 가슴 위에 올려진 차밍이를

마주하는데 그제야 실감이 났다.

아가, 내 아가. 열 달 만에 드디어 안아보는구나.


엄마 뱃속에서 방 뺀거, 너의 인생 첫 독립을 축하해!


그렇게 원하던 2022년 생을

그토록 원하던 자연분만으로

쉽게 순산했습니다...로 출산 후기를 마무리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후처치가 다소 오래 걸리는 것 같더니

아기가 나온 직후 빠져나와야 하는 태반이 나오질 않는단다. 즉, 태반유착이 일어난 것.


*태반이란?
태아와 모체 사이의 물질 교환이 이루어지는 장소. 즉, 임신 중 자궁 내에서 아기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해주고 노폐물을 배출하는 기관.


아기가 나오고 10분 이내에

태반이 나오면서 분만 과정이 끝나는데

태반의 일부나 전체가 자궁벽에서

떨어지지 않아 출혈이 계속되는 경우 태반유착이라 말한다. 심할 경우 자궁적출수술을 해야 한다.

자궁벽에 딱 달라붙어서 나오지 않는 태반을

의사 선생님이 마구마구 후벼 팠다.

외풍이 심해 추운 분만실에서 항생제와 수액을 맞으며 틈틈이 초음파로 확인하고 태반 제거를 시도하길 몇 시간, 그럼에도 나오지 않는 태반에 결국 의사 선생님은

두 손 두발 들고 일단 병실로 올라가 알아서 빠져나오기를 지켜보자 하셨다.

나중에 의사샘이 농담처럼 "아기가 미련이 남아서 엄마 몸 속에 흔적을 남겨놓고 나왔네" 하셨다.

오후 7시가 다되어서 병실로 올라왔고

그때부턴 오로와의 싸움이었다.

태반이 안 나온 까닭에 어마어마한 출혈이 지속되었고

간호사분들이 수시로 올라와 혈압을 재고 패드를 교체해주셨다. 감당 안될 정도로 나오는 바람에

침대 시트까지 묻기도.


와중에 24시간만에 먹은 첫끼는 너무 맛있었다


늦은 저녁 화장실에 가겠다고 일어났다.

남편이 입구까지 따라나섰고 홀로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는데... 직후의 기억은 없다.

눈을 뜨니 괜찮으냐고, 일어날 수 있겠냐고 다급하게 묻는 남편과 간호사가 곁에 있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화장실 들어가다가 내가 쓰러졌고, 남편은 나를 일으켜 세운 후 바닥에 떨어진 휴대폰과 물건을 줍는 중에 내가 다시 한번 고꾸라 쓰러졌다고. 그러면서 병실 앞 복도 유리창문에 부딪혀 유리창이 와장창 깨졌던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


나는 그 몇 분간의 기억이 아예 없다.

결국 나는 분만실에서 돌아온 지 몇 시간 만인

밤 10시에 다시 수술대 위로 올라갔다.

다시 떠올려도 끔찍한 태반 제거 과정.

출산은 할만했고 두 번도 할 수 있겠다면

긴 도구로 자궁 속을 후벼 파 내는 태반 제거는

다신 겪고 싶지 않은 고통스러운 과정.

게다가 그때는 무통주사도 약발을 거의 다해

너무 아팠다.

그냥 몸속에 태반 남겨놓자고,

제발 그만하면 안 되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고 마구 파내는 선생님이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그렇게 한 시간여 지났을까.

결국 태반은 분리되었고 나는 거의 실신하기 일부 직전이었다.

출산하면서나 태반 제거하면서 너무 많은 피를 흘렸던 까닭에 결국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수혈을 하게 되었다.

긴급히 Rh(+) A 혈액이 자정이 다되서 도착해 수혈받았다.

지난 새벽부터 진통으로 잠 한숨 못 자고 시달렸던 나는 수혈받는 동안 기절하듯 잠에 들었고

내 옆에서 마음 졸이느라 고단했던 남편은

수술실 앞 의자에서 누워서 눈 붙였다고.


그렇게

1월 1일 새벽 3시에 시작된 진통에,

오전 9시 병원에 입원해

오후 3시 출산을 했고,

밤 11시 태반을 제거하고서

다음날 새벽 2시에 모든 것이 끝나고

병실로 돌아왔다.

꼬박 24시간이 걸린 진통부터 출산 그리고 후처치 과정.

한 달 전 일인데 벌써 아득하다.

그때에 짤막하게나마 메모를 해두었으니

기억을 되살려 늦게나마 후기를 쓰는 거지

아니었으면 소설을 쓸 뻔했다.

그만큼 출산 후 한 달 동안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서 더 오래전 일 같다.


출산기록 메모.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뭐 이전에 브런치 글로 많이 풀어냈던 열 달의

힘들디 힘들디 힘든 임신 과정은 물론이거니와

남 앞에서 있는 굴욕 없는 굴욕을 다 겪어야 한다.

다리를 벌려 제모를 하고, 관장을 하고, 회음부 절개를 하고.

입덧도 그랫듯 출산도 사람마다 다 다르지만

그래도 다른 통증과 비할 데 없는 분만시 고통을 내몸으로 오롯이 겪고,

게다가 나는 실신하여 유리창도 깨 먹고,

처음으로 남의 피를 2리터쯤 수혈받고

평생 먹을 미역국을 다 먹고 있다(최대 하루 5그릇)

마치 열 달 안 한 생리를 한 달에 몰아서 하는 듯한 오로 배출까지.

그리고 신생아를 육아하며 인생에서 그 어느 때보다

체력소모가 많고, 잠 못 자고, 씻지 못하는 날을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건

막연히 뱃속에서의 태동으로만 느끼던

아기를 내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며

직접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놀랍도록 하루하루 커가는 아기만큼

(그토록 작은 생명체는 한달 동안 키는 5센티 자라고 몸무게는 1.5킬로 커졌다.)

나도, 남편도, 식구들도 서로 머리 맞대고

나름의 육아공동체를 이루어 한 뼘 씩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이보다 더 행복할 일이 어딨겠나.


다음은 출산 후 한 달간의 육아 이야기를 풀어봐야지.

Congratulation :^>

The birth of my baby 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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