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을 잃어버린 자의 삶의 낙 되찾기
언니는 요즘 삶의 낙이 뭐예요?
아끼는 동생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못하는 내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좋아하는 게 참으로 많았던 나. “너 몸속엔 피 대신 커피가 흐를지 몰라.”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커피애호가였으며, 술도 주종을 가리지 않고 즐겼다. 그중에 최애는 막걸리. 마음 맞는 사람들과 밥정 나누는 걸 좋아했으며, 이따금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책을 잔뜩 쌓아놓고 간헐적 다독의 시간에 심취하곤 했다. 마그넷, 엽서, 씨글라스 수집도, 전시와 공연 도록 모으는 일도 좋아했다. 뮤지컬이 유행되기 한참 전인 2018년 우연히 본 ‘노트르담드 파리’ 이후 푹 빠졌던 뮤지컬 세계. 배우 박은태를 덕질하며 팬사인회도, 그가 나오는 시상식도 찾아갔다. 수시로 전시회를 검색해 마음이 동하는 미술관에 가서 문화수혈을 했다. 글쓰기도 좋아하고 책 속 한 페이지나 영화 대사, 인물의 인터뷰에서 심금을 울리는 문장을 수집해오곤 했다. 익사이팅한 걸 좋아해서 번지점프, 패러글라이딩 등의 레저를 했다. 꾸준히 한 운동을 하지 못하는 대신 취미는 운동 수집이었다.(클라이밍, 폴댄스, 프리다이빙, 발레 등, 패들보드 등) 즉흥적으로 전국을 유랑하듯 여행하고, 어쩌다 산에서 남편을 만난 그즈음부터 선망하던 등산과 트래킹의 매력에 푹 빠졌다. 남편과는 등산과 막걸리, 여행과 차박캠핑이 공통된 취미로 자주 함께 했다. 100까지 적어두었던 버킷리스트도 자주 업데이트하고 인생을 정말 즐기며, 후회 없이 살았다.
그런 내가 임신 출산을 하고,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는 상태가 꽤 오래 지속되었다. 시골에서의 독박육아+2년간의 모유수유+심하게 엄마껌딱지인 아이 이 세박자로 인해 더욱 컸다. 게다가 출산 후 내 몸은 180도 바뀌어있었다. 타고난 근수저로 건강하던 몸이 근육은 사라지고 완전히 젓가락처럼 앙상하게 말라 있었다. 활력 넘치던 나는 점점 생기를 잃어갔고. 언젠가부터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이 없어졌다. “넌 왜 그렇게 하고 싶은 게 많냐.”며 친정엄마에게 핀잔을 듣곤 했던 하고잡이가 더이상 아니었다. 오죽하면 식욕 많았던 내가 ‘한 알로 배불러질 수 있는 알약 있었으면..’ 생각마저 들었을까. 일상의 낙이 사라지니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하루하루 버티는 삶이 되어버렸다.
육아 때문인 줄로만 알았다.내 삶의 큰 원동력이자 가치 실현의 도구이던 일. 그 일을 멈춰서 그런 거라고, 일만 다시 시작하면 회복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일은 기대만큼 되지 않고, 맞벌이만 하면 쉽게 구해질 줄 알았던 아이돌봄도우미는 구해지지 않아 아이와의 시간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고, 일도 육아도 집안일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못하고 있는 나 스스로를 채찍질하기 일쑤였다. 그러다 급기야는 작년 10월, 우울증이 오고 말았다 우울증은 의지가 나약해서 겪는 거라 생각했던 과거의 나를 반성한다.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나아지는 문제가 아니다 결단코.
도중에 내가 hsp(highly sensitive person: 고도 민감성 개인)이란 것도, 어쩌면 ADHD일지 모른다는 것도, 남들과는 꽤 다른 애니어그램 4번 유형 예술가형이라는 것도, 그래서 삶의 난이도가 남들보다 몇 배로 높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 내가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예민하고 까다로운 육아레벨 끝판왕 급인 아이를 외딴섬에서 키우니 우울증이 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3년 간 나에게 삶의 낙은 사치와도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되찾아야만 한다. 과거의 나와는 달리 몸이 180도 변해 언제 먹어도 문제없던 커피가 이제는 낮 12시 이후 먹는 한잔만으로도 새벽까지 잠을 못 자고, 주량이 소주 한 병반에서 캔맥주 하나로도 취기가 오르는 억울한 상황... 카페인 쓰레기 알코올 쓰레기가 되어 예전만큼 커피나 술에서 낙을 찾을 수는 없다.
언젠가 어느 때처럼 작은 배낭 하나 덜렁 메고 나 홀로 눈이 허벅지까지 쌓인 제주도 한라산을 오르거나, 사랑하는 장소 테라로사 하나를 가기 위해 강릉행을 하거나, 좋아하는 자작나무를 보겠다고 덜컥 혼자 산악회버스에 올라타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숲을 가는 등의, 즉흥 도발의 아이콘 김아라는 더는 없다. 목발 같은 존재 ‘아이’가 있어서.
신생아 때부터 아기띠를 둘러 메거나, 잘 타지 않는 유모차에 태우고 수차례 전시회를 갔었다. 그러나 그때는 울어서 고요한 전시실에서 도망치듯 나오기 일쑤였고, 이제는 용수철마냥 언제 튈지 모르는 망나니 4세가 된 터라 전시관람에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다. 전시회도 이런데 공연은 더 말할 필요가 있으랴. 꽤 집중력이 좋은 아이라 세돌쯤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보러 갔는데 40분 만에 도망치듯이 나왔다. 역시 아직은 무리인가 보다.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가던 등산은 어떤가. 아이를 부모님께 맡겨두고 가야 하는데 그나마 가까운 친정부모님이 계신 대구는 매력 있는 산행지가 없고 오를 산이 많은 시부모님이 계산 부산은 왕복 4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아이를 등산캐리어에 업고 세식구 모두 간 적이 지금까지 다 섯번 정도 된다. 그러나 예민보스의 우리 차밍이는 캐리어에 가만히 타고 있어 줄 리가 만무하다.
그 어떤 취미도 고상하게 즐길 수 없다.
그러나 이제부터 아이랑 같이 조금씩 할 수 있는 걸 늘려가려고 한다. 얼마 전 낮은 산행을 함께 했는데 역시나 얼마 지나지 않아 등산캐리어에서 벗어났지만 그래도 전처럼 캐리어는 곧 죽어도 싫고 무조건 안아안아병이 아니라, 꽤 스스로 산을 오르내리는 모습에 희망이 보였다.
그래서 올해 나의 목표가 된 ‘삶의 낙 찾기 프로젝트’
함양살이에 점 하나 남기기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취미생활
건강한 몸과 마음 되찾아 다시 하고잡이가 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