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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l Nov 14. 2024

돌이켜보니, 그때였다_2

또다시 무너지기 시작한 건.

일주일이었나, 2주였나... 시간이 흐르고 난 뒤, 동생에게 카톡이 왔다. 미안하다는 카톡이었다.

전화도 없이 카톡으로만 미안하다고 보낸 동생에게 나는 더 화가 났다.

대화는 하기 싫고, 상황만 어서 정리하려는 심보로 느껴졌다.

연락을 피해놓고, 시간이 한 참 지나고 나서야 연락을 한다는 게 카톡 하나라니...

회피에, 무책임까지 한 동생의 행동에 너무 서운했고, 속상했고, 화가 났다.

실망스러웠다. 괘씸하기까지 느껴졌다.


더는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마음대로 회피했다가 마음대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어물쩍 넘어가는 그 방식에 맞춰줄 수 없었다.

사실 그런 식으로 갈등을 푸는 방식을 매우, 무지무지 싫어한다.


어릴 때는 어리니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라며 이해해 주고 기다려줬다.

그러고 나면 크게 다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먹을 걸 주거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행동해서 매우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어리니까 아직 뭘 잘 몰라서 그런 거겠지 생각하며 넘겼다.


그렇게 그냥 넘어가주고, 그 방식에 맞춰준 게 잘못이었던 걸까.

알려줬어야 했나. 알려주면 뭐 하나. 어차피 내 말은 듣지도 않는데.

이런 것까지 내가 가르쳐야 할까.

이런 건 부모가 가르쳐야 하는 거 아닐까. 이런 건 내가 가르치기엔 벅찬 문제였다.


그럼에도 동생에게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이런 식으로 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언제까지 회피만 할 거냐고.

그동안 너의 방식에 맞춰줬지만, 이젠 난 못 맞춰준다고. 할 만큼 했다고.


나의 감정을 표출한 거지만, 사실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화가 많이 났지만, 알려주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보냈다.


그러나 내 희망은 무참히 짓밟혔다. 또 내 탓으로 몰아가는 내용을 담은 답장을 보면서 상처받았다.

앞으로 네가 전화해도, 카톡을 해도 난 받지도 않을 거고 답장도 안 할 거라고.

너도 혼자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을, 회피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게 얼마나 힘든지 느껴보라고.


동생은 내 말에 알았다고 답한 뒤,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연락을 안 한 채로 한 달이 되어갔다.


부모님은 동생에게 누나한테 전화해서 사과하라고 말만 할 뿐, 별다른 액션이 없었다.


그 와중에 엄마와도 연락이 끊긴 상태였고, 나는 시간이 갈수록 지쳐갔다.

바닥이 아니라 지하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동생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내가 그걸 못 알아줬나 싶다가도

나도 힘든 상황이고 그걸 알면서도 나한테 이렇게 상처를 주는 건 정말 너무했다고 화가 나기도 했다.


엄마는 동생이 틱틱거리고, 짜증 부리고, 내가 보기에 저건 예의가 없다 도가 지나치다 생각이 들었던 행동과 말들도 다 받아주셨다. 그럴 수 있다고, 오죽하면 그러겠냐고, 힘들어서 그런 거라고, 원래 그러니 이해하라면서 나한테까지 동생을 이해해 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왜 나만 버릇없다고, 예민하다고만 생각하시는 걸까.

나만 왜........ 나쁜 사람 만들고, 이해해주지 않는 걸까.

엄마는 우는 딸을 내버려 두고 끊어놓고, 걱정도 안 되나.


다들 이 상황을 안일하게만 생각하고, 풀려고 노력도 안 하고 손 놓고 있는 게 더 상처였다.

아빠도 나보고 기다려보라고만 했다.


버림받은 것 같았다.

한 달이 되어가는 동안 그 시간들을 어떻게 버텼는지도 모를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가 쓰러졌다고.

그러면서 불안증, 폐소공포증이 있는 아빠는 나에게 불안을 다 쏟아부었고,

아빠는 기억도 못 하시는 말들을 다 들어줬다.


그리고 내게 당장 내려오라고 하셨다. 순간 설움과 짜증이 확 몰려왔다.

그럼 난 일은 어떻게 하고, 그러냐. 옆에 동생도 있는데 왜 나한테만 그러냐

그리고 지금 서울 쪽 코로나가 심한데 무턱대고 갈 수 없지 않냐며 짜증을 냈다.

그러자 동생도 바쁘지 않냐고 네가 내려오라고 하셨다.


난, 안 바쁜가.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걱정되지만, 이젠 내가 모든 짐을 다 짊어지고 싶지 않았다.

옆에 있으면서 신경도 안 쓰는 동생한테는 뭐라 안 하면서 왜 나한테만 뭐라 하나 라는 생각에 억울했다.


그리고 며칠 후, 엄마가 수술을 받게 될 거라는 소식에 나는 짬을 내서 내려가서 수술에 대해 설명을 듣고 다시 올라왔다.


엄마는 심장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불행 중 다행인지 판막은 달지 않았지만 끈을 잇는 수술을 받게 됐다.

미안해졌다. 이 상황에서 더는 짐을 짊어지고 싶지 않다고 동생 있지 않냐고 짜증을 낸 게.

남들은 네가 얼마나 지쳤으면 그랬겠냐고, 옆에 동생도 있는데 무턱대고 너한테 온갖 짜증과 화를 쏟아부은 아빠가 잘못이라고, 동생만 바쁜 거 신경 써준 게 잘못이라고. 차별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난 미안했다.


그리고 연인한테 부탁해서 차를 타고 천안까지 왔다 갔다 했다. 두 번인가 정도 그렇게 한 후,

일을 최대한 빨리 끝내고 가족들과 교대하여 엄마 간호를 봤다.


간호하기 전까지 당장 옆에서 지켜볼 사람들은 아빠와 동생이기에 난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했다.

아빠가 기댈 수 있도록 하소연을 들어드리고, 우실 때는 위로를 해드렸다.

동생이 짜증 부리고, 나를 무시하듯이 행동해도 힘들어서 그런 거겠거니 했다.


연인은 내 앞에서는 울어도 되고, 힘든 내색 해도 된다고 말했다.

그러지 못했다. 울고 싶은데,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이상했다. 예전의 나처럼 괜찮은 척, 강한 척했다.


그리고 수술과 회복이 잘 되고 퇴원 후, 며칠 안 돼서 다시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가 몸이 안 좋아서 다시 응급실에 간다는 거였다.


나는 그동안 부여잡은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혹시나 나도 모르게 코로나가 걸린 채로 엄마를 간호한 게 아닐까.

잘 때도 마스크 끼고, 수시로 손 소독까지 했는데... 무언가 허점이 있었나.

나 때문에 엄마가 아픈 걸까 봐. 안 그래도 심장 수술한 사람이 코로나 걸리면 위험한데,라는 생각에

나는 아빠한테 무섭다고, 불안하다고, 나 때문에 코로나 걸린 거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자 아빠는 너까지 왜 그러냐고, 너까지 그러면 난 어떡하냐고 했다.

그 말에 턱, 숨이 막혔다.


"아빠, 저번에 말했잖아. 대신 내가 무너질 때 아빠가 잡아달라고."


그 말에 아빠는 뭐라 대답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쉬이 기분이 풀리지 않았던 걸 보면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 같다.


난 다시 괜찮은 척해야 했다.

그 후, 난 또다시 가족들의 감정을 받아줬다.


엄마는 다행히 신장에 염증이 생겨서였고, 회복이 잘 되고 현재 건강하게 살고 계신다.


돌이켜보면, 그때였다.

내가 또다시 무너지기 시작한 게.

다시 번아웃이 오기 시작한 게.




동생과는 화해했다.

엄마의 상황을 동생 혼자 견디기 힘들 것 같았다. 걱정됐다.

그래서 먼저 연락해서 힘들면 이야기하라고 말했다. 대신 우리가 풀 건 남아있으니 그건 해야 한다고 하면서.


집에서 왔다 갔다 하던 때, 난 연인의 차를 돌려 다시 병원에 갔다.

그리고 동생과 이야기를 했다.


동생은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사실 어물쩍하는 모습에 그 사과가 와닿지 않았지만, 전보다는 진심이 느껴져서 받아줬다. 그리고 나도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 사과했다.


그렇게 잘 마무리가 되려는데, 동생이 한 말이 좀 걸렸다.


"누나는 정신적으로 엄마아빠 챙기고, 나는 물질적으로 챙기자."

"괜히 누나한테 화풀이했어. 내가 보기엔 그냥 우리 서로 힘든 얘기 안 해서 그래. 미안하게 생각해."


왜, 나는 정신적으로 동생은 물질적으로 챙겨야 할까?

그렇다고 동생이 물질적으로 잘 챙기는 것도 아닌데.

정신적으로 챙기는 게 더 힘든 건 알까.


화풀이하는 건 그럴 수 있다고 치지만, 우리 서로 힘든 얘기 안 해서 그런 거라니.

힘든 얘기 안 해서 싸운 게 아닌데....


그래도 괜찮았다.

화해했으니 된 거다. 일단 엄마부터 신경 쓰자.


그렇게 부랴부랴 처리하지 말 걸 그랬다.

괜찮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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