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과 영화 <초미의 관심사>
2020년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의 한 경찰서.
위조된 20달러 지폐가 사용되었다는 신고를 받는다.
출동한 경찰은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를 차에서 내리게 한다. 비무장 상태의 플로이드가 아무런 저항 없이 차에서 내린 후, 경찰은 플로이드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무릎으로 목을 눌러 8분간 자세를 유지한다.
"숨을 쉴 수가 없어요. 저를 죽이지 마세요."
8분의 시간이 흐르고, 플로이드는 그 자리에서 사망한다.
다음날, 한 행인에 의해 촬영된 동영상이 온라인에 퍼지고,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며 시위가 시작되었다. 미국 50개 주의 400개가 넘는 도시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동시에 미국이 아닌 다른 국가에서도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온라인에서 또한 활발한 시위는 #BlackLivesMatter, #JusticeforGeorgeFloyd 등의 해쉬태그를 이용하여 인종차별에 반대하고, 이 사건의 부당함에 맞서 유대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침묵하는 사람들에게 침묵은 충분하지 않다며 더 적극적인 시위를 촉구하고, 나아가 국제적 팬들이 한국 뮤지션을 비롯한 예술가에게 공개적인 지지를 요청하고 있다고 한다. 반면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현지에 있는 사람들 만큼의 심각성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해외 팬들의 요구에 맞선 동양인 팬들은 동양인이 해외에서 인종차별 범죄를 당했을 때 어떤 지지를 해주었냐고 반발하며 오랫동안 존재해온 동양인 인종차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나 역시 인스타그램을 통해 현지에 있는 '그들'에게 힘을 보태었다. 미국과 캐나다에 거주한 경험이 있어 현지에서 적극적으로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친구들의 소식을 전해 듣는 나로서는 지켜만 보는 것만큼 마음이 아픈 것이 없었다. 흑인뿐만 아니라 모든 소수 인종을 위해 고질적인 미국 내 인종차별을 없애고 싶은 바람으로 현장에 있는 친구들을 향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었다.
하지만, 글을 올린 후 3일이 지난 지금까지 나 자신을 비롯해 너도나도 해쉬태그 릴레이를 펼치는 인스타그램을 보며 내 마음속에서는 인종차별에 반대한다는 목소리의 뿌듯함 대신 불쾌감과 찝찝함이 자리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이 사건을 통해 액티비즘 또한 서양을 중심으로 선택하여 실현된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차별에 근거한 범죄가 발생했을 때, 분노를 소셜미디어에 발현하여 부당함을 외치던 나는 당시 누구보다 조용했던 사람들을 안다. 오히려 차별을 차별하고 있는 그들의 모순에 거북함을 느끼면서도 그들의 침묵마저 내가 비난할 수 없는 권리인 것을 깨달아 나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차별은 결코 낯설지 않다. 한국에서의 차별은 미묘하게, 만연히, 항상 있어왔다. 단일민족의 역사를 핑계 삼아 피부 색깔이 다른 이들을 향한 경계의 눈초리. '흑형', '흑누나' 등 친근함을 무기로 그들을 재단하는 단어. 국가, 인종으로 판단하여 쏘아대는 무례한 질문들. 또한 차별은 인종에서 그치지 않는다. 성차별, 성소수자 차별, 지역 차별, 장애인 차별 등과 같이 다양한 형태로 뿌리내려왔다.
일상에 스며들어 우리를 낡게 하는 은은한 차별. 하루가 다르게 발생하는 차별에 근거한 범죄. 그리고 차별을 차별하며 선택적인 액티비즘을 취하는 사람들. 비판하고 싶지만 그중에 허우적대고 있는 나 또한 떳떳하진 못하다. 그렇다면 각기 다른 역사를 가진 우리는 어떻게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 있을까.
머리가 아플 때쯤 영화 <초미의 관심사>를 보았다.
오랜 기간 동안 떨어져 살았던 모녀가 사라진 막내딸을 찾아 나서며 이태원 구석구석에서 다양한 인물들을 만난다. 블록버스터도 아닌 비교적 단순한 스토리에서 모녀가 만나는 인물들에 집중한다. 이태원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여 캐릭터의 다양성이 스크린에 어색하지 않게 담길 수 있었고, 극 중 어머니인 배우 조민수의 코믹한 연기는 다양성과 개인의 이야기가 부담스럽지 않게 관객에게 서사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엄마(조민수)가 택시에서 제일 처음 조우하는 젊은 남성 택시운전사(신재환)부터 흑인의 외모를 가진 젊은 한국인 오토바이 배달원 정복(테리스 브라운), 영어로 길을 묻는 젊은 백인 관광객(제레미 카펜터), 중년의 트랜스젠더 여성(안아주), 타투이스트가 직업인 젊은 싱글맘(안리나), 타투샵 사장인 젊은 동성애자 남성(김지훈), 타투샵 사장 애인인 젊은 남성(김남호), 중년의 의상샵 남성 사장(정미남), 드래그 퀸이 직업인 젊은 남성 마이클(이수광), 그리고 미성년 동성애자 여성(최지수, 오우리)까지. 외모도, 나이도, 취향도, 직업도 가지각색인 개인에 철없는 엄마(조민수)와 무뚝뚝한 딸 순덕(김은영)의 투박한 따뜻함이 더해져 안정감을 준다. 얽히고설키며 서로를 곤경에 빠뜨리기도 하지만 정의에 맞서서는 서로를 도우며 다채로운 감정과 이야기를 보여주는, 상처 입은 영혼들.
미국의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통해 성찰하던 중 영화를 통해 미래에 제시할 해답을 찾진 않았지만, 다양한 개인이 같이 담긴 일상이 이 영화처럼 자연스럽게 흐르면 좋겠다는 소망이 생겼다. 모든 이의 편에 서서 이해해보겠다는 이기적인 욕심보다는 아픈 역사를 가진 개개인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들어주고, 지지해주는 것. 사회가 성실히 다양해지고, 그에 맞춰 산업이 개인화되고, 개인을 구분함과 동시에 편견을 동반한 차별은 멈추지 않겠지만, 이런 사려 깊음이야말로 우리가 진정 성취하고자 애써야 할 목표이자 기반이 아닐까.
We will never understand but we st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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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Photographer): Fibonacci 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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