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현 Jul 17. 2024

비 오는 날에는 아프리카가 떠올라

2019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본격적인 장마의 시작, 오늘도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빨래는 덜 마르고 공기는 축축하다. 뽀송하고 쨍쨍한 날이 그리워서 습관적으로 하늘을 쳐다보는 시간이 많아진다. 어릴 땐 비 오는 날이 울적하다는 엄마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었는데, 나도 나이를 먹었는지 이젠 날씨가 흐리면 마음까지 흐려지곤 한다. 기분도 착 가라앉고 의욕도 살짝 식는다. 안 그래도 무더운 여름 이왕이면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을 보는 게 더 기분 좋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비오는 날을 반기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이런 날을 기념케 하는 순간 또한 내 속에 있다. 떠올릴 때마다 슬그머니 미소짓게 만드는 2019년 뜨거웠던 여름 인천 송도에서의 기억.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밴드 위저(Weezer)의 아프리카(Africa)가 울려퍼지던 순간이다.     

*2018년 위저가 토토(Toto)의 아프리카를 커버하여 싱글 음원을 발매함.               


 2019년 당시 나는 밴드 위저의 노래에 푹 빠져있었다. 앨범도 사고 LP도 사고 그렇게 그들의 노래를 주구장창 듣고 있던 때, 마침 펜타포트에 내한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놀란 마음에 비명을 한 번 지르고는 터질 것 같은 마음으로 티켓팅을 했던 기억이 난다. 마침 딱 내가 좋아하고 있는 밴드가 올 해 온다니! 럴수 럴수 이럴수가. 그렇게 8월이 오길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친구들과 설렁설렁 즐기러 갔던 부산 락페와는 달리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 딱 하나만 보고 혼자서 울산에서 인천까지 가야 했기에 나는 왠지 만반의 준비를 해야할 것 같았다. 어느 공연을 가든 노래를 잘 모르면 100% 즐기긴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던 나는 그들의 노래를 질리도록 들으며 열심히 예습했다. 운동하면서도 듣고, 출퇴근길에도 듣고, 뮤직비디오도 한 번씩 보고... 언제 또 올 지 모르는 위저의 무대를 완벽히 즐기리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결전의 날, 아침 일찍 일어나 KTX와 지하철 몇 개를 갈아타고 이미 녹초가 된 채로 공연장에 도착했다. 해가 지고 위저의 무대가 시작할 때까지 다른 아티스트의 공연도 보고 배도 채우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두근두근, 드디어 시작된 그들의 무대. 5년이란 시간이 지나 자세한 것은 떠오르지 않지만 분명하게 기억나는 건 내가 가장 좋아했던 'Africa'가 예상과 달리 초반에 나왔다는 것, 노랑색과 빨강색의 조명, 퍼붓던 비, 입고있던 비옷이 팔뚝에 달라붙던 일, 빗물이 눈으로 흘러 눈을 닦아야 했던 일, 관객석으로 힘차게 쏘아올려지던 물대포, 그와 함께 터지던 함성소리, 노래 시작 전 'Let's go to Africa!'라는 아티스트의 외침에 깜짝 놀라 내 입에서 흘러나왔던 외마디 비명, 그리고 그토록 기다렸던 순간이 곧 시작된다는 기대로 마음이 부풀던 느낌.             

  

 집채만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진동과 벅참, 인생에서 느낄 수 있는 최대치의 흥 또는 몇 년치의 신남을 압축적으로 모아뒀다가 폭죽 터트리는듯한 그 느낌은 콘서트장이나 페스티벌 무대가 아니면 느낄 수 없다. 그 날 위저 무대를 보면서 그랬다. 그 전에도 재밌는 콘서트를 많이 갔었지만 힘들게 도착해서 비까지 맞으며 앞으로 또 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내가 사랑하는 아티스트의 음악을 현장에서 들었던 그 순간은 말로 표현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대로 땅에 묻혀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어폰으로만, 집에 있는 작은 스피커로만 듣던 그 음악을 이렇게 넓은 곳에서 이 많은 사람들과 저렇게 커다란 스피커로 듣는 순간. 빠 밤 빠 빠 빰빰빰, 하고 귀를 때리는 전주 소리에 함성이 저절로 터져나오는 순간.          


 이 순간을 위해 노래를 그렇게 열심히 들었구나, 그런 기분으로 알콜도 없이 정신을 놓은 채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들은 아프리카는 'I bless the rains down in Africa(나는 아프리카에 내리는 비에 감사해)' 라는 가사와 함께 그대로 내 안에 새겨져버렸다. 그보다 더 적절할 수 없었다. 무대에 심취해 눈을 감고 몸을 흔드는 사람들이 늘상 신기했었는데 그 때 나는 눈을 감고 노래를 들었던 것 같다. 모든 사사로운 생각들과 분리되어 오직 그 무대 앞에 온전히 서 있는 나만을 느끼면서.  

              

 그 날 위저의 많은 노래를 비 맞으면서 들었지만 저 가사 한 줄 때문에 나는 비오는 날만 되면 그 무대와 함께 축축한 회색빛으로 흔들리는 아프리카 초원을 떠올린다. 지금 아프리카에도 비가 올까? 아프리카에 가 보지도 않고 노래를 만든 토토처럼, 나는 아프리카에 가 본 적도 없으면서 그 곳을 애틋해하게 되었다. 어떤 기억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위안이 된다. 나에겐 그날의 기억이 그렇다. 회색빛 하늘과 쏟아지는 비에 울적해지다가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슉, 하고 그 무대 앞으로 다시 빨려들어가서는 비를 맞으며 노래를 듣다 미소짓는다.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는 아프리카를 그리워한다. 그러니, 이제 그만 울적해하고 밀린 일들을 하러 가봐야겠다.       




당시 현장 모습. 영상이 하나라도 남아있어 다행이다.....



음원.



*참고 : Mary라는 소녀가 위저에게 아프리카를 커버해달라고 트위터에서 캠페인을 벌였고, 소원이 이루어짐.

위 영상의 앨범 커버를 자세히 살펴보면 트윗 캡쳐본이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가 잊고 있는 한 가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