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사이 봄비 내림
봄비 덕분에 공기가 조금 시원해졌다. 비구름이 지나간 자리에 새파란 하늘이 뜨는 걸 보고 침대 옆 창문을 반쯤 열어뒀다. 창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면 버들이는 어디에 있었던지간에 종종걸음으로 뛰듯이 와 창가에 자리를 잡는다. 방충망 하나만 두고 이렇게 높은 창가에 앉혀놔도 되는걸까 걱정했었지만, 8년째 아무 소란없이 조용히 창밖만 감상하는 중이다.
한낮의 버들이는 고요하고 느릿하다. 졸졸 쫓아다니며 야옹야옹 말을 거는 저녁의 모습과는 다르게. 요즘같은 날씨엔 이불 위에 벌렁 누워 햇볕을 쪼이곤 하는데, 짧고 짙은 털 위에 햇살이 머무르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보면 덩달아 나른해진다. 한줄 한줄 모여 무늬를 이루는 섬세한 털, 새근새근 숨소리에 따라 위아래로 작게 떨리는 수염, 그 위에 금빛으로 반사되는 조그만 빛가루들. 한낮의, 사선의 햇살 아래 늘 반 이상 감겨있는 두 눈.
거실 테이블에 앉아 그림을 그리다 한참의 침묵에 문득 궁금해져 방문을 열자 예민하게 고개를 치켜드는 버들이와 눈이 마주쳤다. 겁이 많은 고양이라 작은 소리에도 곧 잘 깨곤한다. 그러다 나인걸 확인하고, 시선은 그대로 맞춘 채 눈을 서서히 감으며 조금씩 고개를 다시 이불 위로 붙이는 몸짓에, 아무도 없는 집에서 오랜만에 소리내어 웃었다. 경계하지 않는구나, 편안하구나, 싶어서. 가족이 된 지 8년이 다 됐으니 이제 당연한 일인데도 늘 새삼 기쁘다. 한걸음에 머리맡에 앉아 손바닥으로 한쪽 뺨을 받쳐주고, 완전히 눈을 꼭 감을 때까지 옆에서 토닥토닥 쓸어줬다.
숨소리가 고르게 퍼진다. 평화로운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