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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미 Jun 06. 2021

쉼 : 休

에세이 #7


나는 뭐든 열심히한다. 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노는 것도. 행동, 생각 하나하나에 에너지를 많이 쏟는 편이다. 이런 성향 때문에 어릴 때는 자주 아팠다. 현장학습을 갔다 온 날, 발표회를 한 날, 캠프를 갔다 온 날, 학기가 끝난 날이 되면 어김없이 몸살을 하곤 했다.


청소년기에는 방학까지 학교에 매일 나갈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투잡을 뛰면서, 주말 없이 하루 최소 15시간 이상 일하고, 밤을 샜다.


일을 시작한지 4년 째 되던 어느 날, 나와 맞지 않은 부분들을 발견하면서 일에 대한 애정이 식었다. 자연스레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쉬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도망치는 것 같았다. 쉬어야하는 명분을 찾아야했다. 그래야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열심히' 쉬어야하는 이유를 찾았다.



그러던 중 만나게 된 영화 <리틀 포레스트>. 어찌보면 뻔한 청년들의 힐링영화, 그 뻔한 힐링을 받고 싶었다. 늘 그렇듯 해 뜨기 전에 출근해서 해 지고 퇴근했던 그날, 친구를 졸라서 심야영화를 보러 갔다.


나에게 쉼은 '멈춤'과 같았다. 일을 멈추고, 노는 것을 멈추고. 공허한 진공 속에 나를 내던지는.

이런 의미 때문에 무의식 중에 '쉼 = 정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쉼이 두려웠던 것 같다.


<리틀 포레스트>에서 김태리는 꾸준히 움직였다. 밭을 일구고, 모를 심고, 요리를 하고, 친구와 놀았다.

김태리의 쉼에는 '멈춤'이 없었다. 서울에서의 삶을 내려놓고 내려왔지만 시골에서의 삶이 있었고, 공간성과는 별개로 김태리 자신의 삶은 계속 굴러갔다. 이 영화를 보면서 쉼의 명분을 찾을 수 있었다.


쉰다는 것은, 멈추는 게 아니라 잠시 웅크리는 것이었다. 때로는 도움닫기를 위해 뒤로 몇 발짝 돌아가야 될 때도 있는 법이었다. 모든 길이 예쁘게 포장되어 길게 이어져 있지 않듯이, 때로는 점프를 위해 멈춰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때의 내게 필요한 것은 잠시 뒤로 물러나는 것이었다.

수년간 가꾼 것을 내려놓는 용기가 필요했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나'를 마주할 용기도 필요했고, 뒤로 돌아가는 수고를 마다할 용기도 필요했고, 바닥에서 다시 시작할 용기도 필요했다.

하지만 내가 쉬어야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었고, 나는 결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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