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리드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매미 May 15. 2021

향유하는, 박향유

READ YOU 인터뷰 #7



한 사람의 인생은 곧 한 권의 책이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책을 한 권 읽는 것과 같다.
우리와 비슷한,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공감과 위로, 용기를 나누고 싶다.




READ YOU : Interview
#7. 박 향 유


박향유씨는 포도농사를 짓는 농업인이다. 
스무 살인 그녀는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손수 올해 농사를 지었다. 사실 그녀에게 농사는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라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포도밭을 거닐었고 농사는 자연스레 지어왔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늘 자연과 함께한 셈이다. 그 모습이 신기해서 인터뷰 섭외를 하며 도시에서 살아보고 싶었던 적은 없었냐는 질문을 드렸다. 


"농촌에서도 충만하게 살고 있어서 딱히 생각해본 적이 없어죠."


라는 답변.
농촌에서 충만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곳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박향유씨를 둘러싼 이야기들이 궁금했다. 우리는 상주에 위치한 향유네 포도원을 방문했다.





ㅣ시작하기에 앞서 간단하게 자기소개 한번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향기로울 향, 기름 유, 향기로운 기름 스무 살 박향유라고 합니다. 아픔을 치유하는 향유이면서, 동시에 세상을 향유해요.(웃음) 저는 농촌에서 나고 자랐고요. 초등학생 때는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놀며 배웠어요. 그러다가 풀무학교를 '창업'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농사도 짓고 마을에서 마을돌봄교사도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창업을 하셨다고요?

아, 졸업했다는 뜻이에요. 저희 학교는 졸업할 때 새로운 시작을 하라는 의미에서 졸업이라는 말 대신 창업이라는 말을 써요.

ㅣ초등학생 때 학교를 그만두셨다고 하셨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4학년 때 부모님이 먼저 제안을 하셨어요, 그때는 학교가 너무 재밌어서 거절했는데 5학년 때 즈음 학교가 재미없어지더라고요. 제 주변에 홈스쿨링하는 친구들이 많았거든요. 학교 끝나고 홈스쿨링하는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 보니 점점 밖에서 노는 게 더 재밌어진 것 같아요. 또 밖에서 더 다양한 것들을 할 수 있다는 걸 느끼니까 학교가 자연스럽게 지루해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부모님께 '엄마 아빠, 나 학교 그만다니고 싶어'라고 말씀드리고는 학교를 그만 뒀죠.

ㅣ홈스쿨링은 어떻게 하셨나요?

함께 홈스쿨링하는 친구들과 동네 이곳저곳을 놀러 다녔어요. 덕분에 계절에 따라 푸르르게 지낸 기억이 많아요. 계곡가서 가재잡고, 꽝꽝 언 저수지 위에서 눈 쌓인 곳에 발자국 남기고.(웃음) 그러다가 검정고시 준비를 하면서 친구들하고 공부모임을 만들었어요. 지역 어른들의 도움으로 모임 장소도 생기고, 미술 수업도 들을 수 있어서 따뜻하게 공부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초등학교는 그만 뒀지만 보따리학교라는 형태가 없는(?) 학교를 다녔어요. 이 학교는 계절에 따라 열려요. 농가 보따리, 전체 보따리 두 개로 나뉘는데요, 농가 보따리는 각 지역 농가에 가서 일주일 정도 농가의 삶을 살아봐요. 그리고 전체 보따리는 아픔이 있는 곳, 도움이 필요한 곳, 우리가 알아야 하는 곳에 가요. 덕분에 저는 밀양 송전탑 건설현장에 가서 주민분들 기지에서도 지내보고, 영덕이나 울진에서 핵발전소 반대하면서 돌아다니기도 하고, 제주 강정마을도 가서 같이 행진하면서 해군기지 건설 반대도 할 수 있었어요. 그 시간들 속에서 생생한 경험을 하고 다양한 감정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덕분에 세상에는 아름답고 행복한 것들만 있는 게 아니라 아픔도 너무 많고 분노도 너무 많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ㅣ풀무학교 소개를 좀 해주세요.

이거 정말 어깨가 무거워지는 질문이에요. 깊은 시간을 담은 학교를 3년 다닌 입장에서 설명하자니.
정식명칭은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예요. 그래서 농업을 많이 배우죠. 몸과 머리로도 배우지만 마음으로도 배워요. 그리고 생활관에서 함께 지내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도 배우고, 아날로그적인 생활 속에서 자연과의 조화를 배워요. 저는 풀무학교를 떠올리면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라는 책의 제목이 떠오르더라고요. 풀무학교는 오래된 가치들을 지향한다고 생각해요. 오래돼서 보편적이기도 하고, 근본적인 뿌리같은 그런 가치들이요. 
풀무학교는 '더불어 사는 평민'을 길러요. 더불어 사는 평민. 그 말은 곱씹을수록 좋은 거 같아요. 그 외에도 다양한 교육 목표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머리와 가슴과 손의 조화'가 떠오르네요. 머리는 학문을, 가슴은 신앙을, 손은 노작을 의미해요.

풀무학교는 저한테는 보물찾기를 하는 장소 같은 곳이었어요. 학교 곳곳에 엄청난 보물같은 배움들이 숨겨져 있어요. 아니, 사실 대놓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그걸 찾으려는 마음이 있는 사람과 가슴 속에 그걸 받아들일 공간이 있는 사람은 정말 많이 얻어가는 거죠. 저는 감사히도 보물들을 많이 발견하고 가슴 속에 채워 올 수 있었어요. 제일 크게 배운 건 자연과의 조화, 사람과의 조화, 신앙과의 조화예요.

ㅣ 자연과의 조화, 사람과의 조화, 신앙과의 조화 중 어떤 게 가장 힘들던가요?

셋 다 너무 어려운 것들인데.(웃음) 자연과의 조화가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왜냐면 지금 생활 속에서는 자연을 파괴하는 생활패턴들이 너무 많으니까요. 노력하며 살아야죠.


"더불어 사는 평민. 그 말은 곱씹을수록 좋은 거 같아요."


ㅣ농사를 짓고 싶어서 풀무학교에 입학하신 건가요?

사실 풀무학교를 선택한 이유 중에 농업은 크게 없었어요. 학교의 분위기가 너무 좋아 보여서 그저 함께 살고 싶어서 간 거예요. 농업은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제 삶 속에 깃들어있던,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었어요. 그런데 학교에서 농업이 정말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 후로 농업은 제게 더욱더  큰 의미가 되었죠.

ㅣ농업말고 다른 하고 싶은 일은 없으세요?

저는 좋아하는 게 많아서 하고 싶은 것도 진짜 많아요.(웃음) 노래도 많이 듣고 싶고, 연극도 하고 싶고, 친구들이랑 글읽기 모임도 하고 싶고, 책도 많이 읽고 싶고, 시도 쓰고 싶고, 음악도 하고 싶고, 자수도 놓고 싶고, 의술도 배워서 주변사람들과 건강하게 살고 싶고... 뭐 이런 것들을 하며 사람들과 자연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마을은 삶터이기에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일으킬 수 있잖아요. 그리고 그 '행복한 삶' 속에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을 테고요. 하지만 지금의 농촌 마을은 복지·문화·교육·의료적인 부분들이 많이 열악한 상황이에요. 그래서 농촌 마을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ㅣ'창업'을 할 즈음부터 집으로 돌아와 농사를 하겠다고 계획하셨나요?

그건 아니에요. 하고 싶은 게 워낙 많았으니까 '뭘 먼저 할까'가 가장 큰 고민이었어요. 근데 막상 창업할 때쯤 되니까 쉬고 싶어지더라고요. 그 동안 지치는 줄도 모르고 열정적으로 학교 생활을 했었는데, 마무리 할 때가 되니까 엄청난 피로감이 찾아오더라고요. 재정비할 겸 조금 쉬어갈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집으로 돌아왔어요. '아무런 계획 없이 올해 스무살 1년을 쉬어보자'라는 게 제 계획이었죠.

그래도 큰 틀을 정했었는데, 첫번째는 '나한테 집중해보기'였어요. 학교를 다니면서 계속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 살다보니까 나한테 신경을 잘 못 쓰게 되더라고요. 저는 사람들을 좋아해서 함께하는 그 시간도 너무 좋았지만 그런 시간들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나도 돌봐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때는 그럴 재주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번 1년은 나한테 집중해보기로 했어요.
두번째는 '풀무학교 그 동안 배운 것들을 정리해보기'였어요. 왜냐면 엄청 많이 배워서 왔는데 뒤죽박죽이면 안 되잖아요. 이 말 들으면 엄마, 아빠나 친구들은 니 방정리나 하라고 할 거 같은데.(웃음) 어쨌든 그런 틀을 정해봤어요.

처음에는 아주 나태하게 살았어요. 그래서 이건 많이 반성 돼요. 반성하는 의미에서 고백하는 거예요. 여유와 쉼은 누렸어야 하지만 나태와의 선은 지켰어야 했는데 선을 그냥 훌러덩 넘겨버려서.(웃음) 그렇게 살다가 농번기가 찾아오며 자연스럽게 농사를 하게 됐어요. 저는 집에 있었고, 밥벌이를 해야 할 나이였고, 집에서는 농사를 짓고 있었으니 자연스럽게 농사를 짓게 됐어요. 덕분에 요즘은 정신이 없어요. 그래서 나름 균형이 잘 지켜진 것 같아요. 초반에는 좀 나태했지만 후반에는 정신없이 바빠지면서, 1년 평균치로 봤을 때 적당하지 않았나.(웃음)



ㅣ향유포도원 소개를 해주세요.

이 질문도 답하기 약간 어려웠어요. 향유포도원도 저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거든요. 그래서 저도 찾아봤어요.(웃음) 짤막한 소개말을 찾았는데 읽어드릴게요.

향유포도원은 화학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만든 목질퇴비로 땅을 건강하게 만들며 자연적인 천연 자재로 농사를 짓습니다. 농사를 통하여 건강한 삶을 소비자와 더불어 누리고 더 나아가서 자연과 공생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향유 포도원은 제 이름으로 이루어져있긴 하지만 결국 부모님이 다 가꾸셨어요. 부모님이 신학대를 나오셨는데요. 신앙을 가지고 계시니까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이 무엇일까 고민하시다가 '말로만 사는 삶이 아니라 몸으로도 사는 삶'을 생각하셨대요. 예수님이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처럼'이라고 말씀하시던 부모님의 모습이 기억에 남네요. 부모님께서 선택하신 삶의 방식은 유기농업이었어요. 그래서 대학 졸업하고 동시에 귀농을 하셨대요. 그렇게 향유포도원이 생겨나고, 제가 태어나고, 동생 선린이가 태어났죠. 그래서 향유 포도원은 단순히 농작물을 파는 것을 넘어서 소비자분들과 삶을 나누고 있는 것 같아요. 농산물을 통해 사람들이 연결되고, 소식을 나누는 것이 참 좋아요.

ㅣ향유포도원은 유기농업인 거죠? 유기농에 대해 설명 좀 해주세요.

사전적 정의는 '3년 이상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유기물을 활용해 농사를 짓는 방식'일 거예요. 제가 살면서 옆에서 지켜보고 또 그 속에서 경험하며 느낀 바로는, 유기농업은 '자연스러운 것', 그리고 '자연스러우려고 노력하는 것'같아요. 제 아기 때 사진 중에 포도가 가득 든 대야 속에 발가벗고 들어가서 양손으로 포도를 집어 먹고 있는 사진이 있어요. 부모님은 그 사진을 보면 늘 껄껄 웃으세요. 요즘은 과일용 세제가 나오는 시대잖아요. 그렇게 과일도 세제로 씻어 먹어야하는 시대인데 가장 조심해야 할 아이가 과일 속에서 발가벗고 있는 모습을 봐도 부모님은 그저 흐뭇하세요.(웃음) 본인들이 농사를 직접 농사를 지었고 그게 전혀 해롭지 않다는 걸 제일 잘 아실 테니까. 불안한 마음이 하나도 없으신 거죠. 그런 걸 보면서 유기농업은 부모님의 마음, 사랑하는 마음 이런 것 같기도 하고.(웃음)
근데 유기농업을 얘기할 때마다 조금 조심스러워져요. 마치 유기농은 좋고 관행농은 안 좋다고 비추어질 것 같아서요. 관행농을 하시는 분들도 그 분들만의 생계가 있기에 함부로 옳다 그르다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유기농업도 굉장히 고단하고 좁은 길을 걸어가는 농사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프라이드는 가져야 하는 것 같아요.



ㅣ재배하는 포도도 종류가 다양하다고 들었는데 어떤 것들이 있나요?

나오는 순서대로 얘기하자면 흑바라드세네카베니바라드캠벨샤인머스켓 다섯가지예요. 제일 주력으로 하는 건 캠벨, 그 다음은 샤인이고, 나머지는 조금조금씩 해요. 흑바라드는 이름처럼 까맣고, 향이 좋고, 엄청 달아요. 베니바라드는 대추포도라고 불려요. 이름처럼 빨갛고, 식감이 엄청 아삭아삭해요. 이건 샤인보다 식감이 더 좋아요. 그래서 매니아층이 있어요. 저도 베니바라드를 제일 좋아해요. 엄청 달지도 않고 향도 깊지 않은데, 식감이 주는 힘이 크더라고요. 세네카는 머스켓 향이 나는 알이 작은 청포도예요. 다른 포도에 비해 손길을 주지 못했는데도 잘 자라요. 흑바라드라는 친구와 수확 시기가 비슷해서 함께 팔아요. 캠벨은 미국에서 건너온 포도인데 우리나라 대표적인 포도로 흔히 먹는 검붉은 포라색 포도예요. 샤인머스켓은 요즘 열풍이 불고 있는 향과 식감과 당도가 모두 매력적인 맛난 청포도죠.

ㅣ과수 유기농업은 다른 유기농업에 비해 관행농과 차이가 있다던데 어떤 차이가 있나요?

이건 저희 부모님이 더 잘 아시겠지만,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이런 느낌으로 읊어보겠습니다.(웃음) 우선 이곳저곳에 노동이 많이 들어요. 토양을 비옥하게 하려고 목질퇴비도 만들어서 뿌리고, 밭에 녹비 작물을 길러서 관리하기도 하고요. 풀 관리를 하느라 예초기를 돌리고, 제초매트를 깔아보기도 하죠.
과정이 다르니 결과도 달라요. 예를 들어 샤인머스켓이 씨가 없는 품종이라고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지만 사실 샤인머스켓은 씨가 있는 친구예요. 관행농은 포도가 자랄 때에 호르몬제를 써서 씨를 없애고, 과육을 비대하게 만들죠. 저희는 호르몬제를 쓰지 않으니까 씨가 있고, 상대적으로 알이 조금 더 작아요. 그리고 자연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새나 멧돼지, 고라니, 벌레, 날씨 등... 올해도 흑바라드와 베니바라드는 곰팡이가 80%나 폈어요. 자연적인 흐름에 맞춰서 엎어질 때도 있고 잘 되기도 하고 그러네요.

ㅣ엎어지면 많이 속상하시겠어요.

엄청 속상하죠. 어떻게 보면 농사의 결실이 저희의 한 해의 결실이기도 하고, 생계로 곧바로 이어지니까요. 가끔은 똑같이 땀 흘려서 일했는데 그런 결과가 나오면 마음이 심란해요.

ㅣ포도 농사만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포도는 과일 중에 드물게 '송이'라고 불려요. 한 송이 안에 여러 알들이 있거든요. 정말 재미있는 게, 포도의 세상은 사람 사는 세상과 참 비슷한 것 같아요. 알 솎기를 한다거나 순지르기를 한다거나 포도 농사를 지을 때에 적용되는 규칙이 세상 이치와 비슷해요. 예를 들어 힘이 부족한 포도에게는 옆에 있는 힘이 센 포도가 힘을 나눠 줄 수 있게 도와준다거나, 짐을 좀 줄여주거나, 양분을 더 주기도 해요. 그리고 힘이 너무 세서 옆에 있는 포도를 누르는 포도에게선 그 힘을 조금 가져와요. 각자 포도들의 수준에 맞춰 힘을 분배해주며 균형이 고르도록 도와주죠. 사실 다른 작물들도 이런 원리가 적용되겠지만, 포도는 밭 전체에서부터 한 송이의 한 알까지 세세하게 적용되니까 더 느끼는 게 많은 것 같아요. 포도 한 송이가, 포도나무 한 그루가, 포도 한 밭뙈기가 그들만의 공동체 같기도 해요. 포도 덕분에 다양한 것을 배워요. 세상의 이치도 배우고, 사람 관계도 배우고, 정치도 배우고.(웃음) 재미있어요. 아버지도 일 가르쳐주실 때 항상 사람 사는 세상에 비유하며 이야기 해주시는데, 그 시간들이 너무 즐거워요.

ㅣ나만의 포도 감별법이 있나요?

있죠. 이제는 그냥 느낌이 와요.(웃음) 물론 이게 다 백발백중은 아니에요.
일단 크다고 무조건 맛있는 건 아니에요. 저는 적당한 크기가 가장 끌리더라고요. 샤인머스켓은 익을수록 노란빛을 띠는 친구라서 생초록이나 파릇파릇한 연두색보단 은은한 노란빛을 띠는 파스텔톤의 연두빛이 더 맛있어요. 그리고 투명한 것 보단 약간 불투명한 것이 더 식감이 좋더라고요. 캠벨은 알맹이가 적당히 단단하면서 송이가 꽉꽉 차지 않고 헐렁한 것이 더 맛있게 느껴져요. 보라색 포도라 표현하지만 사실 검은색에 더 가까워요. 그래서 검붉을수록 잘 익은 거예요.

ㅣ과일 중에 포도를 가장 좋아하시나요?

저는 딱딱한 복숭아가 세상에서 제일 좋고요.(웃음) 딸기와 수박도 정말 좋아해요. 사실 과일은 다 좋아요. 포도는 캠벨만 키우던 시절에 질리도록 먹어서 그런지 설레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지금은 다양한 포도를 먹으면서 포도의 다채로운 매력을 많이 느끼는 중이에요. 물론 아직까지는 딱딱한 복숭아의 설렘을 이길 순 없네요.

ㅣ올 한 해 농사를 회고해 본다면

처음부터는 아니었지만, 농번기 때부터 함께하며 희노애락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리고 마음 비우기 연습도 할 수 있었죠. 농사일을 할 때, 집중해서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머릿속이 깨끗해지며 손이 저절로 움직여져요. 약간의 무아지경 상태와 도를 닦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해요. 덕분에 일을 하는 순간에는 마음이 평화로워져요. 그런데 올해 중반까지는 이상기후 때문인지 농사가 잘 안됐어요. 너무 슬펐죠. 이상기후의 요인 중 하나인 나의 생활양식에 화가 나기도 했고요. 농사는 자연과 밀접하게 관계된 일이다 보니까 우리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결과를 볼 때가 많아요. 그러한 결과를 받아들이기 위해선 결국 마음을 비워야 해요. 자연을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하겠죠. 덕분에 일을 할 때 마음이 비워지고, 결과를 받아들일 때 마음을 비울 수 있는 한 해였네요.
 그래도 마지막에 샤인머스켓 농사는 잘 된 편이었어요. 안 그래도 예쁘게 생긴 포도인데, '아 예쁘다. 정말 예쁘게 생겼다' 하며 기쁘게 수확했죠. 이것도 마음을 비운 덕에 더 기쁜 마음일 수 있었겠죠?(웃음)

ㅣ미래에는 향유씨 본인이 포도밭을 물려받게 되는 건가요?

그것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이 되지만, 일단 그러고 싶어요. 물질적인 걸 떠나서 생명이 깃든 이 토양을 부모님께서 20년 넘게 가꿔오셨는데 그걸 다른 사람에게 넘겨진다는 것이 너무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어서 잘 가꿔보고 싶어요. 미래에는 포도 돌봄농장도 시도해보고 싶어요. 

ㅣ마을돌봄교사도 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마을돌봄학교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삶의 장소인 마을이 교육의 장이 되고, 마을의 삼촌, 언니, 이모들이 선생님이 되고, 마을의 이야기나 요소들이 교육내용이 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곳이에요. 실질적으로는 농번기 때 바쁜 학부모님들 대신 방과후에 아이들을 돌봐주고 있어요. 저는 평소에는 마을돌봄교사로서 아이들이랑 같이 간식 챙겨 먹고, 같이 책 읽고, 놀고, 옆에서 지켜보며 돌봄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특별프로그램 중, 동화책 읽고 연극 만들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이 수업은 고등학교 때 연극동아리에서 활동했던 경험을 살려서 맡게 되었어요. 밖에 나가면 정말 보잘것없는 스펙일텐데 그런 경험을 통해 마을에서 아이들을 만날 수 있고, 일하며 조금의 경제적 여유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준 마을에게 너무 감사해요. 저는 마을에 꿈을 가지고 있는 입장으로서 지금 만나고 있는 아이들이 훗날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 자신을 품어줬던 마을을 기억하며 마음이 따뜻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어요.



ㅣ도시에서 살아보고 싶었던 적은 없나요?


저는 농촌생활에서 부족함을 느낀 적이 없어요. 농촌이 그 자체로 저에게 행복을 주는 곳이거든요. 도시에서는 살아보고 싶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근데 요즘은 조금 걱정이 되더라고요. 저는 농촌에 뜻을 두고 있기 때문에 여생을 농촌에서 살고 싶은데, 농촌이라고 행복한 일만 있는 건 아니니까 당연히 힘들 때도 있을 거잖아요. 그 때 혹시나 '아 도시로 올라갈걸'이라는 후회를 할까 봐 걱정이에요. 그래서 예방 차원으로 미리 도시에 살면서 질려보고 싶어요.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게 좋아서 도시 생활을 경험하고 싶기도 하고요. 도시를 배척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그저 제 취향이 농촌이고, 제 꿈이 그 곳에 있다보니.(웃음)

ㅣ존경하는 사람이 있나요?

책 속에서 만나는 유명한 사람들도 존경스러운 분이 많은데 제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건 가까운 분들인 것 같아요. 가까울수록,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존경하는 분일수록 더 존경스러운 것 같아요. 인간은 절대 완벽하지 않잖아요. 완전 틈도 많고, 부족한 점도 많고, 가까우면 그런 틈들이 더 잘 보이기 나름인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존경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엄청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존경하는 분이 부모님이에요. 정말 많은 영향을 받았죠. 그리고 만났던 선생님들, 친구들, 제 동생을 존경해요. 주변 사람들을 존경할 수 있어서 참 기쁘네요.


https://youtu.be/FMSJtKCK6vU

   ㄴ 향유씨가 직접 제작+연기한 2020년 건강생활실천영상공모전 최우수상작




ㅣ공통 질문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요?

제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의 기준은 '혼자 행복하지 않는' 거예요.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삶이 제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이에요. 그래서 내 행복이 다른 이들의 행복을 방해하지는 않는지 항상 경계하려 해요.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음식을 먹을 때에도 '이것을 하면 나는 행복하겠지만 다른 사람은 행복할까? 다른 생명은 행복할까? 내가 이 행복을 찾아서 다른 이들이 아파하진 않을까?' 이런 시뮬레이션을 해보죠. 그런데 항상 다른 생명에게 피해 끼치지 않으면서 살 수는 없더라고요. 고민을 하다가 결국 먹고 싶은 걸 먹을 때도 많고, 나를 먼저 생각할 때도 많아요. 그래도 이런 고민을 한 번 하고 넘어가면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행복의 기술로는 범사에 감사하고,(웃음) 많이 사랑하고, 보물찾기하는 것처럼 행복을 찾아요. 감사할 일과 사랑하는 게 많을수록 행복해지는 요소가 풍요로워지더라고요. 또 어찌 되었든 행복을 느끼는 게 나니까, 내가 행복하고자 행복을 찾으면 행복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덕분에 지금까지 나름대로 행복하게 잘 살아왔어요. 오늘도 두 분을 만나 뵐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해요.(웃음)

ㅣ앞으로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

목표나 꿈을 생각하다보면 결국은 우주평화?(웃음) 같은 것들이 떠오르는데, 이건 너무 추상적이고. 그러기 위해 내가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 하는데. 일단 제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들과 늘 함께하고 싶어요. 무슨 일을 하든 간에. 그리고 삶의 형태로서는 농촌마을에서 주변 사람들과 으쌰으쌰해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그런데 위에서 말했다시피 지금의 농촌마을은 그런 기반이 마련되어 있지 않잖아요. 그래서 기반을 쌓아가고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 과정들이 결국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한 행동들이겠죠. 또 건강하게 살고 싶고 건강하게 농사 짓고 싶어요. 그래서 생산만 하는 포도농장을 넘어, 아픈 이들을 돌볼 수 있는 돌봄농장으로도 넓혀보고 싶어요. 공부 많이 해야겠죠. 요즘은 아로마테라피에 꽂혀서 배우는 중이에요.

ㅣ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작품 하나만 소개해 주세요.

이 질문이 제일 어려웠어요. 왜냐하면 좋아하는 작품도 너무나도 많고, 그 종류도 참 다양하거든요. 제 성격이 그런 것 같아요. 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서 그런지 제일 좋아하는 것을 쉽게 못 골라요. 그래도 고민 끝에 겨우 꼽았습니다. 바로 <간디 자서전 : 나의 진리실험 이야기>예요.

     

풀무학교엔 한 문학작품을 골라서 깊이 있게 공부한 뒤, 친구들에게 발표하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스스로 진행하는 수업이 있어요. 저는 그때 이 책을 골라서 공부했어요. 덕분에 간디의 삶을 엿볼 수 있었죠. 간디는  멋진 사상과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삶으로 직접 보여준 대단한 분이에요.
간디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세 가지가 있어요. '아힘사(불살생)', '브라마차리아(금욕)', '사티아그라하(진리파지)'. 저는 그 중 아힘사에 집중했어요. 그 당시 전 생명에 대해 극도로 조심스럽고 예민해져 있었어요. 살아가는 것 자체가 생명을 죽이는 일의 끝 없는 반복인 것 같아서 괴로웠어요. 옷을 입고, 밥을 먹는 것까지 전부 다. 심지어 한 번은 친구가 모기를 잡으면서 "모기 너무 싫어. 다 멸종해버렸으면 좋겠어"라고 말한 걸 듣고 제가 상처 받았던 적도 있었어요.(웃음) 모기는 과하게 자기 욕심을 취하지 않잖아요. 그저 생존을 위해서 피를 먹는 건데. 오히려 나 같은 인간이 더 욕심을 부리며 많은 것들을 파괴하면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살아가는 게 죄악인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 정도로 예민해져 있었는데 책을 읽고 아힘사에 대해 계속 생각하다 보니까 살아가며 다른 생명을 죽이는 것은 불가피한 자연의 순리임을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그렇게 받아들이고 나니 마음을 전환할 수 있었어요. 지금까지는 '어떻게 해야 생명을 죽이지 않고 살 수 있을까'에 집중했는데, 이제는 '죽이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살리면서 살 수 있을까'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랬더니 두려워서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환하게 차오르는 거예요. 더 풍요로워지고, 뭐든지 베풀 수 있을 것만 같고. 어떻게 하면 덜 죽일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더 살릴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는 게 더 무한한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난 어떻게 살까' 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ㅣ마지막 질문입니다.
   '나'라는 사람을 책으로 쓴다면, 그 책의 첫 문장을 뭐라고 쓸 것 같으세요?


"포도나무밭을 거닐며 포도 한 알 한 알 속에 꿈을 채웠다."







상주에 도착한 날, 마을이 분주했다. 어디에서 나왔는지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이리저리 다니고 있었다. 어른들도 하나둘 자전거와 함께 모였는데 다 모이니 스무 명이 넘었다. 주말을 맞아 마을에서 자전거 모임을 떠나는 것이었다. 우리는 단체 사진을 찍어주고 떠나는 자전거를 바라보았다. 큰 자전거, 작은 자전거, 네발 자전거가 모여 떼를 이루었다. 천천히 페달을 밟고 나아가는 자전거 무리는 네발 자전거 아이의 속도에 맞추었다.

아프리카에서는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이 있다. 동네 삼촌, 이모는 아이에게 교사가 되기도 친구가 되기도 한다. 아이는 자연스레 어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커간다. 어떻게 사람들과 어울리는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지 어깨너머로 배우는 것이다. 사람들과의 거리를 두는 것이 일상이 되는 시대에서 농촌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는 또 다른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연과 어울리며 마을에서 함께하는 삶. 느리지만 지긋하게 변화를 향유 할 수 있는 삶. 아이들이 커나가는 것을 함께 지켜봐 줄 수 있는 이웃. 어울리는 마을에는 이웃이 있었고 아이들이 사라지지 않고 빛나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압축성장, 추태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