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 YOU 인터뷰 #8
한 사람의 인생은 곧 한 권의 책이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책을 한 권 읽는 것과 같다.
우리와 비슷한,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공감과 위로, 용기를 나누고 싶다.
"완전히 골 때리는 인터뷰가 됐으면 좋겠어."
"이 인터뷰를 보고 나를 아는 사람들이 혼돈의 카오스에 빠졌으면 좋겠어."
인터뷰 요청을 수락하며 강영훈씨가 내건 조건이었다. 그는 필자의 십수 년 지기 친구이자 동생이다. 그의 스타일을 잘 알기에 역대급으로 가볍고, 편안하고, 즐거운 인터뷰를 약속했다.
하지만 그가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진중하게 고민하고 성실하게 대답한 탓에 바라던 혼돈의 카오스를 글에 담지 못했다. 혼돈하지는 않지만 가볍게 웃으며 볼 수 있는 인터뷰를 준비했다.
ㅣ간단하게 자기소개해 주세요.
네, 저는 부산에 살고 있는 올해 스물다섯 살이 된 강영훈이라고 하고요.
부산 인디밴드 해서웨이(Hathaw9y)에서 기타 치고,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ㅣ제가 알기로 중고등학교를 안 나오셨다고...
네, 저는 중고등학교를 미인가 대안학교에 진학했어요. 검정고시도 안 쳐서 지금 학력도 중졸이에요.
ㅣ검정고시를 안 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아니요.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귀찮으면 안 하는 스타일이라... 굳이 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죠.
ㅣ(웃음) 학력 때문에 피해를 본 적이 있나요?
아니요. 한 번도 없었어요.
ㅣ 그럼 학력 덕을 본 적은 있나요?
음, 덕이라고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중졸인 게 자랑은 아니지만, 저는 자긍심 같은 걸 느껴요. 나는 중졸 밖에 안 되지만 남들과 똑같이, 심지어 잘 살고 있다.
나는 잘 살고 있다.
ㅣ지금 인디밴드로 활동하고 계신데, 음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초등학생 때 학교 밴드부에 등록하면서 기타를 처음 배웠어요. 처음엔 '그냥 한 번 해보자'라는 생각이었는데 제가 또래보다 기타가 빨리 느는 편이더라고요. 그래서 재미까지 붙였던 것 같아요.
ㅣ그럼 직업으로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특별한 계기는 없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이후로 악기를 손에서 놓은 적도 없고, 또래 친구들보다 실력이 빨리 늘기도 하니까 내가 남들보다 특출난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그 우물 안에서는 제가 제일 잘 했거든요. 우월감을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 대외적으로 "내 꿈은 기타리스트다"라고 말하고 다녔어요. 좀 애가 약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웃음) 덕분에 기타를 손에서 안 놓고 이렇게 일로도 하고 있네요.
ㅣ신체에 관한 궁금증이 있는데, 손가락이 되게 긴 것 같은데 기타 치는 데에 도움이 되나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기타를 치다 보니까 손 모양이 변해요. 왼손으로 기타 넥(neck)을 잡다 보니까 엄지가 좀 내려가고, 엄지 검지 사이도 좀 넓어요. 근데 그렇다고 손가락이 짧다고 못 치는 건 아니에요. 저는 학교에서 초등학생 밴드부를 가르치는데 다들 잘 치거든요.
ㅣ손가락이 길면 코 파는 데에도 도움이 되나요?
(웃음) 네..? 아니 질문이..(웃음)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ㅣ코 파다가 '와 이건 진짜 나라서 팔 수 있다'라는 생각 안 해보셨어요?
(단호하게) 저는 코를 파지 않습니다. 저는 코를 풉니다.
재능을 사용하지 않는 긴 손가락.
ㅣ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밴드는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제 첫 밴드는 스무 살에 들어간 '더 매거스(The Magus)'라는 팀이었어요. 그때가 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놀고 있을 때였는데... 저는 '이왕 하는 거면 부산에서 제일 잘하는 밴드, 제일 잘하는 기타리스트가 되어야지'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밴드 구인글을 볼 때도 다른 것 안 보고 음악이 제일 괜찮은 팀을 찾았어요. 그게 매거스였죠.
ㅣ보통 음악을 하면 '내 음악'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을 텐데요.
커리어를 좀 쌓고 싶다고 해야겠죠. 스스로 싱어송라이터로서 부족함을 많이 느꼈어요. 그래서 입지를 좀 다진 다음에 내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ㅣ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매거스가 부산에서 되게 잘 된 케이스였잖아요? 인기의 비결이 뭘까요?
멤버 형들이 쓴 곡이 좋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무대에서 제가 열심히 했기 때문에.(웃음) 사람들이 그런 부분을 좋아해 줬던 것 같아요. 그쪽으로 승부를 본 거죠. 젊기도 하고, 퍼포먼스 같은 비주얼에서도 그렇고, 에너지도 그렇고. 정리하자면, 에너지가 좋았다. (단호하게) 주로 내가. 그게 비결이다.(웃음)
ㅣ아, 매거스의 아이돌은 나다?
그건 팩트죠. (웃음) .........너무 시건방지게 나가진 않겠죠..?
*리드유는 날 것 그대로의 기록을 준수합니다.
부산 인디계의 아이돌.
ㅣ매거스가 해체되고 새로 만든 팀이 해서웨이(Hathaw9y)죠? 해서웨이 이름의 출처에 대한 질문을 되게 많이 받았을 거 같아요. 다국적기업 버크셔 해서웨이, 셰익스피어의 아내 앤 해서웨이, 수학자 스태포드 해서웨이, 너무 많은데 어디서 따 오셨나요? (시치미 뚝)
*사실 필자는 해서웨이 이름의 출처를 알고 있다.
아, 이거 질문 잘 짰네.(웃음) 셰익스피어 아내가 앤 해서웨이인지 처음 알았어요.
보통 배우 앤 해서웨이에서 따 왔냐고 물으시는데, 도니 해서웨이(Donny Hathaway)라는 70년대 알앤비 가수의 이름에서 따 왔어요. 노래 좋습니다.
ㅣ팀 이름은 어떻게 정하게 된 건가요?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이나 가수, 밴드의 이름을 넣어서 만들어보자고 회의를 하다가 정했어요. 저랑 세요형(드럼)은 도니 해서웨이가 좋다고 했고 특민이는(베이스) 모닝 어쩌고가 좋다고 해서, 처음에 의견이 모인 이름이 '모닝해서웨이'였어요. 근데 모닝을 뺐죠.
ㅣ배우 앤 해서웨이랑 이름이 겹쳐서 대중들이 기억하기 쉬운 것 같아요. 근데 아직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면 잘 안 뜨더라고요.
아마 향후 몇 년은 더 안 뜰 거예요.(웃음) '해서웨이 밴드'라고 검색하거나 숫자 9를 넣어서 'Hathaw9y'라고 검색하시면 뜰 거예요.
ㅣ밴드 해서웨이 소개를 좀 해주세요.
해서웨이는 부산에서 결성된 팝 밴드입니다. 키위(kiwi:본인), 세요(sEyO), 특민(TeukMin), 이렇게 매력 넘치는 삼인조로 구성이 되어 있고요. 작년에 EP앨범 <Boy Loves Hayley>가 나왔습니다. 이상입니다.
ㅣ예명들에는 의미가 있나요?
저 같은 경우는 머리가 빡빡머리다 보니까, 누가 제 머리 보고 키위 같다고 강키위라고 부른 적이 있어요. 그 뒤로 강키위가 됐어요. 세요형은 키우는 고양이 이름이 '세요'예요. 안녕하'세요'의 세요.
ㅣ고양이 이름이 바둑이었다면 바둑이라고 지었을까요?
아마 그러지 않았을 거예요.(웃음)
특민이는 아무 의미 없어요. 그냥 한 거예요. 특별해서 특민이 뭐 그런 느낌이랄까요. 하는 짓이 짱구 같아서 특구라고도 불러요. 그게 더 입에 잘 붙네요.
ㅣ머리가 빡빡이라서 키위라면, 머리가 길어지면 키위가 아닌 건가요?
(심각)저도 그 생각 많이 했어요. 언젠가는 머리를 기를 텐데... 그래도 캐릭터는 버리지만 이름은 가져가야죠.
ㅣ머리는 얼마나 자주 미나요?
보통 일이 있을 때 밉니다. 공연이 있다거나. 오늘 인터뷰한다고 해서 밀고 오려고 했는데 바빠서 못 밀었어요.
ㅣ지금 밀고 오실래요?
......
ㅣ원래 머리가 갈색 자연 곱슬이었다고 알고 있는데, 그 스타일을 포기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요?
있어요.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머리 긴 뮤지션은 많아요. 공연을 보러 가면 다 비슷하게 생겼어요. 근데 그중에 빡빡이가 있다고 하면 눈에 띄니까 기억에 오래 남겠죠.
ㅣ민머리라 조명을 잘 받을 거 같은데, 관객들이 머리 때문에 눈부셔 한 적은 없었나요?
(웃음) 아직 없었어요. 아, 근데 그런 건 있어요. 사진을 찍었는데 제가 조명을 제대로 받으면 제가 없어져 버리는.(웃음) 옷만 남아 있다거나.
ㅣ세수할 때 머리도 한 번에 씻나요?
샴푸 따로 합니다.
조명을 제대로 받아버렸다.
ㅣ해서웨이 결성 시기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가 겹쳐서 활동을 잘 못하셨을 텐데 그것 때문에 팀 분위기가 우울하지는 않나요?
그런 건 없어요. 어쩔 수 없는걸요. 오히려 창작할 시간이 생겨서 잘 됐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공연이 너무 하고 싶지만 이런 마음이 계속 쌓이다 보면 결국 언젠가 공연을 하게 됐을 때 그만큼 더 즐겁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예전엔 무대에서 연주하는 것에 엄청 집착했어요. 무대에서 얻는 에너지가 저의 전부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창작하는 데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도 엄청 중요하더라고요. 지금 즐거워요.
ㅣ사전에 해서웨이 멤버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잖아요?
네. 제가 멤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근데 막상 하려니 못하겠네요. 뭐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ㅣ음, 멤버들을 처음 만난 이야기부터 해보죠.
좋아요. 세요형은 매거스할 때 같이 했던 형이에요. 그때부터 제가 정말 좋아했어요. 세요형을 처음 만났을 때 착하고, 올바르고, 사회에 때묻지 않은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되게 친숙했어요. 자연스럽게 나중에 같이 뭐라도 해보자는 얘기를 종종 했어요. 그러다 해서웨이를 결성할 즈음 진지하게 밴드 같이 하자고 제안했는데 흔쾌히 수락해서 정말 기뻤죠. 제가 정말 가족처럼 사랑하는 형입니다.
특민이는, 특민이가 고등학교 졸업반일 때 친구들이랑 졸업식 날 밴드 공연을 하고 싶었대요. 그래서 밴드를 가르쳐줄 선생님을 구하는데 제가 간 거예요. 선생님이랑 학생으로 처음 만난 거죠. 특민이 첫인상이 정말 강렬했어요. 키도 크고, 늘씬하고, 손도 크고, 머리색은 파랗고, 몇 가닥 땋아져 있고, 비주얼이 범상치 않았어요. 빛이 나더라고요. 근데 얘가 또 베이스를 정말 잘하는 거예요. 처음 하는데도 가르쳐주는 대로 곧잘 따라오더라고요. 얘는 나중에 밴드하면 잘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까진 같이 한다는 생각은 안 했었어요. 근데 해서웨이를 꾸려야겠다는 마음이 확실해지면서 점점 탐나기 시작하더니, 결국엔 땡겨온거죠. 근데 처음엔 싫다 그러더라고요.(웃음) 만날 때마다 같이 하자고 졸라서 겨우 해준 거예요.
ㅣ고등학생이던 특민씨를 끌어들였다고 했는데, 그럼 해서웨이가 망하면 영훈씨가 특민씨 인생을 망치는 건가요?
(웃음) 그런 얘기 많이 들어요. 특히 세요형이 많이 해요. 니가 끌어들였으니까 니가 책임져라. 더불어 내 인생도 니가 책임져라.(웃음)
ㅣ세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끈끈한가요?
사실 아직 친해지는 중이에요.(웃음) 저도 그렇고, 세요형도 그렇고 막내인데 특민이는 4남매 중에 맏이거든요. 특히 저는 여동생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어요. 특민이는 또 손윗사람을 다 불편해하더라고요. 예의 차리고. 그런 벽을 깨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렸어요. 지금은 그냥 장난도 치면서 좋아지고 있어요. 우리는 가족이야!라고 말하기보다는 아직 친해지고 있는 과정인 것 같아요. 그 재미가 또 있죠.
해서웨이의 EP앨범 <Boy Loves Hayley>
ㅣ이번에 발매한 EP앨범 이야기 좀 해주세요.
해서웨이를 처음 결성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재미'였어요. 매거스로 활동할 때 정말 너무 열심히 했어요. 그러다 보니 즐거움이랑 거리가 좀 멀어졌어요. 그런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어요. 음반 발매도 계획에 없었어요. 부산음악창작소에서 음반 지원 사업 공고가 떴길래, 마침 써 놓았던 세 곡을 한 달 정도 열심히 연습해서 지원했어요. 그게 붙은 거죠.
앨범 제작을 위해 해서웨이 활동하면서 우연히 친해졌던 앨범 아트 작가님, 프로필사진 작가님, 뮤직비디오 작가님과 제작팀을 꾸렸어요. 이 분들과 모여서 미팅하고 작업하면서 정말 많이 배웠어요. 밴드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예술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해요. 예술성을 선택하면 인기가 없을 거 같고, 대중성을 선택하면 예술성이 떨어질 것 같고. 대중을 계속 신경 쓰는 거죠. 저도 그랬어요. 그런데 어차피 예술은 보는 사람만 보고, 사는 사람만 사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보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가 제일 중요한 거예요. 사람들 시선 신경 쓰지 말고 진짜 좋은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임하자. 이렇게 생각하니까 작가님들이랑 우리가 하나로 똘똘 뭉쳐지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앨범 작업은 정말 즐거웠고 결과물도 정말 만족스러워요.
ㅣ앨범이 처음 나왔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좋았죠. 아니, 근데 오히려 좀 덤덤했어요. 작가의 마음으로 작업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냥 내가 할 일을 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느낌이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요.
ㅣ함께 좋은 작품 만들어주신 작가님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작가님들 평생 같이 가야죠. 차기작, 차차기작까지 다 맡길 거니까. 다 같이 잘 될 날까지.(웃음)
ㅣ앨범 수록곡들이 제목처럼 한 문장으로 완성되는 구조인데 의도하신 건가요?
아니에요. 따로 쓴 세 곡이 우연히 맞아떨어졌어요. 앨범의 대주제와도 잘 맞는 것 같아서 그대로 진행했습니다.
작가님들, 함께해요. 평생.
ㅣ작곡의 영감은 어디서 얻나요?
그냥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보면 나오는 것 같아요.
<Love>는 매거스 해체하던 시기의 감정이 담긴 곡이고요, <Hayley>는 제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서 썼고, <Boy>는 특민이와 작업하다가 운이 띄어진 곡이에요. 특민이가 만든 특유의 밝고 따뜻한 분위기가 매력이죠.
ㅣ마감시간이 다가오면 더 작업이 잘 된다거나, 그런 건 없나요?
있어요. 부산음악창작소 지원을 받으면 40분짜리 쇼케이스를 해야 되는데, 저희가 가진 곡이 녹음한 세 곡밖에 없어서 급하게 곡을 더 썼어요. 그때 나온 곡이 <까만밤>, <우>, <낙서> 같은 곡이에요. 앨범 수록곡도 많이들 좋아해 주시지만 뒤에 나온 세 곡을 정말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ㅣ저도 개인적으로 뒤의 세 곡을 정말 좋아해요. 시간을 거듭할수록 해서웨이의 색깔이 선명해지는 것 같거든요. 팬으로서도 그게 보이는 것 같아요.
정확하십니다. 점점 좋아지는 걸 저도 느껴요.
ㅣ해서웨이 활동하면서 팬으로부터 피드백도 많이 받나요? 어떤 피드백이 주로 들어오나요?
좋다. 특민이 예쁘다. 특민이 귀엽다. 정도..?
ㅣ해서웨이 음악을 본인도 많이 듣나요?
엄청나게 많이 들어요. 오늘도 들으면서 왔어요.(웃음)
ㅣ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내가 썼지만 정말 잘 썼다' 이런 생각 하시나요?
그런 생각을 하죠.
ㅣ지금까지 쓴 곡 중 가장 잘 썼다고 생각하는 곡이 있다면?
솔직히 지금까지 쓴 곡들도 저에겐 기적이에요.(웃음) 내가 이런 걸 만들다니.
ㅣ예술은 누구나 접근하기 쉽지만 또 그만큼 좋은 결과물을 내는 것을 어려워하고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실제로 어려운가요? 아니면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걸까요?
음, 저는 그런 접근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어요. 그냥 한단 말이죠. 그래서 말씀드리기 좀 어렵긴 한데, 제가 보기에는 너무 어렵게들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처음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따라 한다는 느낌으로 시작해도 충분해요. 그러다가 하고 싶은 것을 조금씩 만들어가는 거죠.
ㅣ해서웨이 활동에서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유명한 팝 아티스트들처럼 앨범을 먼저 내고 그걸 토대로 활동을 하고 싶어요. 그런데 지금 저희는 신곡을 하나씩 공개하며 인지도와 돈을 끌어모아 앨범을 내는 식이죠. 그게 아쉬워요.
ㅣ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뮤지션이 있다면?
딱 두 명이 떠오르네요. 존 메이어(John Mayer)와 존 프루시안테(John Frusciante). 멋있잖아요.
ㅣ나에게 음악이란?
여기서 이상한 대답을 하나 하고 싶네요.
나에게 음악은 '똥꾸렁내'같은 것이다. 너무 코를 박고 맡으면 싫어요. 적당히 떨어져 맡으면 중독성 있죠.
나에게 음악은 똥꾸렁내.
ㅣ오늘 인터뷰 어땠나요?
완전히 골때리는 인터뷰가 됐으면 했는데, 너무 진지하게 성실하게 대답한 것 같아요. 하다 보니 그렇게 되네요. 저도 어쩔 수 없는 성실한 사람인가 봐요.(웃음)
ㅣ공통 질문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요?
나에게 행복이란, 멤버들과 나누는 한 잔의 사랑? (씨익)
ㅣ멤버들이 사랑을 부담스러워 하진 않나요?
부담스러워 할 때도 있어요. 근데 대체로 잘 받아줘요. (웃음)
저는 좋다고 표현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행복한 강키위씨.
ㅣ앞으로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
음, 그게 참 힘들어요.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 공연을 하자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데. 오프라인이 아니고서야 무슨 재미가 있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그만의 매력도 있겠지만 저는 오프라인 공연이 좋아요. 얼른 세상이 괜찮아져서 무대에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요. 오래오래.(웃음)
ㅣ2021년에는 공연을 좀 할 수 있을까요?
못해도 돼요. 곡 쓰면 되니까.
ㅣ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작품 하나만 소개해 주세요.
그건 바로 '나'라는 작품?(웃음)
작품명 <강영훈:강키위>
ㅣ마지막 질문입니다.
'나'라는 사람을 책으로 쓴다면, 그 책의 첫 문장을 뭐라고 쓸 것 같으세요?
삶을 마주하는 모든 이들은 매순간 비슷한듯 언뜻 다른 두갈래의 기로에 서게 된다.
왼편에 놓인 길은 그 경계마저 분명하지 않은 비포장도로다. 아니, 길이라기보다는 너른 황야와 같다. 사람이 걸어간 흔적이 없어 내가 걸어가면서 길을 닦고, 돌을 치우고, 방향을 잡아가는. 그 길의 이름은 '자신의 길'이다.
오른편에 놓인 길은 지평선의 끝까지 곧게 뻗은 포장도로다. 앞서 많은 사람들이 선택했으며 혹여나 닳을까 포장공사가 연중무휴로 진행된다.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 나에게도 운전사와 차 한 대가 주어진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하는 길. 그 길의 이름은 '타인의 길'이다.
두 길 중 어떤 길을 택하든 예고되지 않은 위험에 고통받을 것이다.
타인의 길을 택한 이들은 고통의 책임을 운전사에게, 자동차에, 길에 있는 돌부리에 떠넘긴다. 저것만 아니었으면 나에게 고통이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위안을 삼고 길을 떠난다. 부자유란 이런 것이다.
자신의 길을 택한 이들은 고통의 책임을 오롯이 자신이 부담한다. 돌부리에 걸렸다면 그것은 내가 치우지 않은 탓이다. 가시에 긁힌다면 그것은 내가 제대로 보지 못한 탓이다. 책임을 온몸으로 견디어야 하지만 화가 나지 않는다. 다음번에 내가 조심하면 될 뿐이다. 자유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