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살아온 신념과 작은 습관들은 어느새 서서히 그 사람의 세포속에 스며들어 그의 땀방울이 되고 피부 조직이 되는것 같다.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생각들이 그 사람에게는 숨쉬는 공기인것처럼 거부할 수 없는 생리현상이 되는 것일까
항암의 지독한 약 때문에 점점 쇠약해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환자에게 영양제 맞기를 간곡히 말했다.
살고자하는 마음이 누구보다 간절할 환자는 당연히 영양제를 한번이 아니라 열번 스무번이라도 맞고 싶어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아버지는 그 고집스런 고개를 조용히 흔들며 "영양제 맞아봐야 다 똑같애. 필요없어" 란 말을 내뱉었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도데체 무엇 때문에, 영양제가 많이 비싸서 그런가. 알고보니 그리 비싸지도 않은데. 영양제 맞는 시간이 너무 지루해서 그러나. 왜 안 맞겠다는지 어렴풋이 짐작가는 바는 있으나 그 속의 내밀한 생각은 알수가 없었다.
평소 시아버지의 성정에 비추어 우리가 내린 결론은 하나다. "돈"
늘 부족하다 싶고 조금 더 있었으면 하고 간혹 또는 자주 차고 넘치게 갖고 싶은 "돈"
드라마에 나오는 재벌들처럼 한도 없는 카드로 명품가방도 식료품 사듯 마음껏 쇼핑하는 기분은 어떨까.
그건 단지 한번씩 꿈꿔보는 로망일 뿐이고 우리는 지극히 평범한 보통 수준의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돈이 없어 쩔쩔맨다든지 약값도 못 낼 정도의 가난한 집안 형편도 아니다. 시아버지는 꽤 월급이 많은 회사에 다니면서 아파트도 마련하고 검소하지만 어느 정도 풍족한 생활을 하셨다. 버리는 걸 잘하는 시어머니와 버린 걸 다시 가져오는 시아버지의 싸움으로 가끔씩 시끄러웠지만.
그러나 아끼는 습성, 아주 작은 것도 절대로 아끼는 습성은 평생 몸에 베어 자신을 버티게 만드는 영양제 한 대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게 밤새 기침을 해대면서도 너희 아버지 전기 장판 껐다 켰다 하는거 봤으면.. 으이구 내가 두손 두발 다 들었다"
하루는 시어머니가 한숨을 내쉬며 푸념을 하셨다.
내가 시댁에 같이 살면서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도 사실 시아버지의 그 지나친 근검절약이었다. 한여름에도 에어컨 없이 선풍기로 버티고 있었는데, 어느 저녁 한창 밥을 먹다 자연바람 분다고 선풍기를 갑자기 꺼버리는 바람에 속에서 천불이 올라왔었다.
시어머니는 그 습성이 꼭 본인 시어머니, 즉 시아버지의 어머니를 닮았다고 했다. 그말속엔 아마도 죽어도 그 습성은 못고치는거 아닌가 하는 뜻이 담겨 있는 듯 했다.
그리고 가족만 생각하고 자신한테 돈을 쓰지 않는 시아버지가 불쌍하다고 하셨다.
다른 사람 같으면 살고 싶어서라도 좋은 약, 몸에 좋다는 것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해서 먹고 할텐데 작은 영양제 하나도 아끼는 환자가 너무 안타까웠다.
시아버지에게 돈은 어떤 의미일까? 이미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돈에 대한 관념 속에 주위의 말들이 끼어들 여지는 없어 보였다.
우리는 항암 주사를 맞으러 갈때 환자 몰래 의사에게 영양제도 처방해 줄것을 부탁하기로 했다.
환자의 머릿속에서 돈이 사라지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