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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미 Apr 01. 2020

후지고 싶지 않아


지방의 한 병원에 태어나 지방의 한 가정집에서 나는 자라는 내내 들은 말이 있다. “이곳은 너무 좁아. 더 큰물로 가서 놀아야지 않겠니. 좁은 곳에 있으면 생각도 좁아져.”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했지. ‘큰물은 위 지방이겠구나, 그럼 난 서울로 가야겠다.’


대학교를 중부권으로, 대학원을 경기도로, 취업은 서울로. 나는 위로 향할수록 나의 세계가 더 넓고 커진다는 자부심에 힘껏 두 어깨가 올라가 있었고 고향에 내려올 때마다 이 좁아터진 고향이 너무도 숨이 막혀 그 안에 사는 나머지 가족을 내 맘속에서 무시하고 있었다. 불쌍하게도 그땐, 나의 세계가 무엇인지도 모른 체 그저 주변 세계가 커짐에 이것이 내 세계라 착각했던 것 같다.


모든 것을 관두고 다시 그 좁아터진 나의 고향, 집에 돌아오고 알았다. 좁아터진 것은 나의 고향과 나의 집이 아닌 좁아터진 마음을 가지고 있는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생각을 품고 살아가는지 그 무엇 하나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단순히 큰물에 놀아야 큰 사람이 되는 줄 알았던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그토록 무시했던 가족은 그 누구보다 제 위치에서 제 몫을 해내는 사람이었고 그를 해내지 못한 사람은 오직 나 하나뿐이었다. 이것을 인정하고 보니 내가 참 후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어디서, 어떻게 저런 고약한 생각이 내 속에 자리 잡고 있었는지 내가 참 많이도 부끄러웠다.


가끔은 이런 나의 후진 과거를 깨끗이 잊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란 잊고 싶은 과거 하나쯤은 있을 테니까.
그러나 그 과거도 결국 내가 아니던가.
지난날의 과거가 후지든 그렇지 않든 그 또한 나의 모습 아니던가.
버릴 수 없으니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마땅히 품어야 할 나의 과거임을 안다.


물론 글을 쓰는 지금도 여전히 후지다. 다만 겉이 후져도 속은 후지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어릴 적 내내 들은 그 큰물은 단순히 개인의 관념 혹은 사회적 위치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닌 마땅히 스스로의 세계를 튼튼히 자라게 해야 함을 알았다. 시간 맞춰 물도 주고 볕도 쬐어주며 양분을 든든히 먹어 튼튼히 성장해야, 그 어느 물에 가도 내가 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애석하게도 사람은 언제나 먹어봐야 그 맛을 알고 쳐다봐야 그 형태를 알 듯, 겪어봐야 그 인생의 교훈을 깨닫는 존재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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