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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미 May 17. 2020

관계 속 맹점

-나라는 오답지를 안고 너를 바라본 지난 날


나는 네가 알고 있는 사람 중 가장 긴밀한 관계이다. 눈빛만 보더라도 네가 그것을 좋아하는지 좋아하지 않는지, 원하는 것인지 원치 않는 것인지, 기분은 괜찮은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 수 있다. 나와 이 정도로 꽤 진솔하지만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생각하니까. 네가 뱉은 모진 말 안에도 나는 네가 어떤 의도로 이를 한 것인지 알고 있다. 너는 결코 모진 사람이 될 수 없기에 모진 말을 뱉는 너 자신 스스로가 분명 아팠을 테지.


나의 판단이 너의 행동에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맞아떨어졌던 경우가 부지기수였기에 그랬던 것일까.

아니면 네가 나에게 보였던 그 선한 미소가 마치 영영 내 곁에 머물 것이라 여겼던 탓이었을까.

내가 부르면 너는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탓이었을까.

내가 원치 않는다고 하면 너는 기꺼이 이를 마다하는 일이 많아서였을까.


내가 너를 가장 잘 안다 자부하였는데, 돌이켜보니 네가 나를 더 잘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너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것은 나라고 여겼는데 돌이켜보니 네가 나에게 더욱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인정하면 할수록 나라는 오답지를 가득 안고 너를 바라본 것임을 깨달았다.


나는 틀렸다. 나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너를 잘 안다고 자부했던 나의 오만이었고 자만이었다.

한 줌에 쥘 수 있다 여겼던 너의 생각과 마음은 결코 잡을 수 없는 신기루와 같은 존재였고, 나는 알지 못했다. 인간이란 결국 개개인의 개체로써 존재하는 단일체로서 다른 인간과 아주 얇디얇은 선으로 이어져 있는 것뿐이었음을. 이 선을 끊어낼 수 있는 사람은 나만이 아니라 너도 해당된다는 것을, 너 또한 얼마든지 너의 그 두 다리로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내 욕심에 너를 가둬둔다고 할지언정 너 또한 네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비로소 이 사실을 깨달은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너는 어느새 내가 닿을 수 없는 저 멀리 떠나고 없었다.


일련의 모든 사건은 연결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가 그 모든 것을 세세히, 아주 낱낱이 알지 못하는 이상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죽을 때까지 결코 너를 이해할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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