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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미 Feb 11. 2020

나는 이름이 두 개다.


나는 이름이 두 개다. 하나는 호적상에 등록된 이름이고, 또 하나는 우리 집 지붕 아래에 존재하는 이름이다. 호적상에 등록된 이름은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가운데 혜자를 돌림으로써 완성되었고, 또 다른 이름은 내가 태어남과 동시에 첫째 언니가 나의 눈을 보고 떠오르는 단어로 지어준 이름이다. 호적상의 이름은 나의 자매들과의 결속력을 다져주었다면, 또 다른 이름은 나의 눈동자가 얼마나 빛났는지를 알려주었다.


아마 중학교 1학년, 그러니까 삶에 대한 고뇌가 가장 가득했을 사춘기 시절, 나는 너무도 헷갈렸다. 학교에서 출석을 부르는 것은 호적상의 이름인데 집에서는 내내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그리고 너무도 귀찮았다. 행여 친구들이 나의 또 다른 이름을 알게 되었을 때 이유를 물어보고 이에 대해 일일이 답변을 하는 것이.


그래서 어느 날, 선언했다.

“나를 더 이상 초롱이가 아닌 혜미로 불러줘. 태어났을 때 눈이 그렇게도 빛났다면서 지금 내 눈은 엄청 작고 그래서 친구들이 꼬막 눈이라고 놀린단 말야. 눈이 초롱초롱했다는 건 다 거짓말이지? 그리고 초롱이는 강아지 이름 같아서 싫어, 그러니까 이제 혜미라고 불러줘! 알았지?”

이렇게 내가 선언한 날에 엄마는 퇴근 후 저녁 준비하느라 바쁘셨고 내 이름을 지어준 첫째 언니는 서울에서 돈을 버는 중이었으며 둘째 언니는 고3이었다. 아, 아빠는 7살 때 엄마와 헤어지셨다. 사유는 성격 차이. 남들이 말하는 가장 보통의 이유이자, 수많은 해석이 가능한 이유로.


다행인 건지 그 뒤로 나는 호적상의 이름으로만 불렸다. 아마 엄마는 언제나 바쁘셨고 첫째 언니는 근무로 고향에 내려오지 못했으며 둘째 언니 또한 수능을 마치고 곧장 첫째 언니를 보러 서울에 가서 그랬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이름을 아는 사람 중 불러줄 사람이 없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지 않나 싶다.


그렇게 나는 26살이 되었다. 초롱이보다 혜미가 더 익숙해진 지금은 괜히 이따금 스스로 내 이름을 불러본다. 초롱이. “엄마, 근데 언니는 왜 초롱이라고 했대?”, “네가 태어났을 때 눈이 얼마나 반짝거리는지 초롱초롱 빛이 나서 초롱이라고 한 거야. 지금도 봐, 너 눈이 얼마나 예쁜데, 쌍꺼풀도 딱 있고.”


우연한 계기로 모 열매회사의 스토리 앱을 설치해 구경하던 중 무려 6년 전, 사진 3장이 업로드되어 있었다. 새삼 지금보다 어렸던 나를 보며 낄낄대다가 사진 하나의 댓글 창을 보게 되었다. 2014년의 최*경, 최*미, 김*태, 그리고 2017년의 최*주, 아빠였다. ‘울 초롱 이쁘당~^^♡’


그는 세 딸 중 막내딸을 가장 예뻐한 사람이었으나 세 딸 중 막내딸과 가장 짧은 시간을 함께한 사람이었다. 그를 나의 어린 시절 안에 추억하기 위해서는 내 머릿속의 어느 기억이 아닌, 케케묵은 앨범을 뒤적거리며 사진을 보고 옆에 누군가가 부연설명을 해야 ‘그랬구나.’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삶에 대한 고민이 최대치였을 때 없었고, 그는 내가 그토록 혜미로 불리기 위해 사투했던 그 어느 날에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혜미보다 초롱이가 더 익숙한 사람이었다. 물론 헤어진 이후 간간이 만나긴 했으나 그때마다 그리 반가운 존재는 아니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마음 한쪽에 언제나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강해 단 한 번도 그에게 제대로 웃어주지 않았으니까.


딱 한 번, 내가 24살 때. 17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다섯 식구가 함께 살았던 적이 있었다. 서로가 함께하지 못했던 그 공백이 하루아침에 채워졌을 리 만무했다. 위태로웠고 불안한 날들이 가득했으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다독이고 품었다. 그땐 내가 서울살이를 했을 때여서 자주는 보지 못했지만 내가 없는 사진 속의 네 식구가 참, 예뻤다. 예쁘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소중했다. 수많은 갈림길을 돌고 도느라 너무도 멀게만 보였던 그 가족이 나에게는 너무도 소중했다.


그때 알았다. 엄마에게도 아빠가 필요했고 첫째 언니에게도 아빠가 필요했으며 둘째 언니에게도 아빠가 필요했음을. 나의 이름이 두 개의 역사를 가진 이유를 알고 이를 기꺼이 불러줄 수 있는 사람, 다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아빠의 자리에 있어야 할 그가, 우리는 모두 필요했던 거다.


물론 이는 과거형이다. ‘살았던 적’이니까 지금은 함께 살지 않음을 의미한다. 가끔은 여전히 현재형으로 남았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그땐 조금 덜 위태로웠으려나, 그땐 조금 더 진심으로 행복했으려나.


스토리 앱은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나, 혹여라도 시간이 지나면 댓글이 사라질까 봐 캡처는 냉큼 했다. 아마 한동안은 이 그리움이 밤마다 베개를 적시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게나 초롱초롱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나는 오늘 밤 그를 추억한다. 케케묵은 앨범의 사진도 그 옆 누군가의 부연 설명도 아닌, 24살의 내가 직접 보고 듣고 만지고 겪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의 아빠를. 여전히 혜미보다 초롱이가 익숙할 그 덕분에 나는 여전히 이름이 두 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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