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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화 May 26. 2023

덮어 두고 싶은 이야기

 부모님을 보면 영감이 솟는 편이다. 헤아릴 수 없는 희생에 감동과 미안함이 벅차오르다가, 빽 지르는 잔소리에 억울함이 치솟았다가 하는 게 나뿐은 아닌 모양이다. 행복하고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두 어른의 인생을 지켜보며 숱한 글들을 썼다.

 사람들은 내 형제관계를 유추할 때 꽤나 난항을 겪는 편이다. 어른스러워 보이지만 어딘가 무관심해서 장녀는 아니고, 개인주의적이지만 또 어딘가 다정해서 외동은 아니고… 나에게는 오빠가 있다. 2살 터울, 빠른 년생으로 3학년 차이인 나의 오빠. 오빠와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말을 하지 않았고 지금도 전화번호를 저장하지 않았다.

 어디서부터였고 어떤 상황이었는지 어떤 말들이 오갔는지는 선명하지 않은 채 오래된 감정만 남아 있는 기억으로부터 시작된다. 오빠의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와서 너는 왜 그렇게 동생에게 함부로 대해? 왜 그렇게 말해? 하며 놀라던 기억이 있고. 또 엄마가 외출을 하면 나를 베란다에 가둬놓고 식으로 괴롭히곤 했다. 엄마에게 이를 거야! 집전화로 전화를 할라 치면 다른 수화기를 들고 마구 버튼을 눌러대던 그의 모습이 또 기억난다. 또… 오빠가 있는 다른 친구의 집에 놀러 갔을 때, 그의 오빠가 그의 이름을 다정히 불러주고 피자를 시켜 주는 모습에 거대한 문화충격을 받았던 기억도 있고. 아, 오빠가 방에 숨어있는 나를 놀리거나 괴롭힌답시고 뒷베란다로 통하던 내 방 창문을 넘어 들어오곤 했었다. 불행하게도, 전술한 모든 상황을 한 번도 즐거운 장난이라 여겨본 적은 없다. 넌 뚱뚱해, 못생겼어(인정하기 싫지만 그는 나와 정말 많이 닮았다), 밖에서 내 동생이라고 하지 마, 나는 네가 쪽팔려. 어디에서 배워온 건지 모르겠는 언행을 퍼붓는 그를 좋아하기 힘들었다.

 그는 학교에 자꾸만 엄마가 오게 만드는 학생이었다. 흡연하다 걸려서, 여자 아이를 때려서, 안 좋은 무리와 몰려다녀서. 엄마는 오빠를 이렇게 만든 것이 임대 아파트 마을에 살던 친구들 때문이라는 결론을 짓고 나에게도 하얀 마을 아이들과 어울리지 말라는 엄포를 내렸다.

 그는 아빠가 선풍기가 부서질 때까지 그를 때리게 만들었다. 엄격하고 기준이 높고 성실한 아빠와 그는 너무 달랐다. 매일 아침 큰 소리의 알람이 몇 번이고 울려도 제대로 일어나지 못했고, 몇십 분간 알람 음악을 듣다 못한 아빠는 그의 방에 들어가 구석에서 돌아가던 선풍기가 조각조각 나도록 휘둘렀다.

 몇 차례 가출을 감행하기도 했다. 아빠와의 불화가 주된 이유였다. 고3이 되어서 가출하는 걸 보고 기함을 하긴 했기만 어쩔 도린 없었다. 그가 가출한 줄도 모르고 있던 나에게 문자를 한 걸 보고 부모님이 그것을 이용해 오빠를 집으로 잡아왔다. 그때부터 오빠는 나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 나에게 배신감을 느꼈던 건지, 꼴값이었다. 그때 이후로 그의 재수학원 생활, 나의 기숙사 생활, 군복무 등으로 몇 년간 한 집에 살 일이 없어지며 점점 더 어색한 사이가 되었을 뿐이다.

 한심했다. 공부도 못하는 게 열심히도 안 하고. 재수 학원에 보내주어 경기권 대학에 진학을 한 뒤 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반수를 하겠다고 시위를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는 방식으로. 그래서 새로 공부하게끔 부모님이 학원에 보내주었는데 실패했다. 대학 졸업 후 아무런 취업 준비 활동도 하지 않아 부모님과 싸웠으며, 27살에 출가가 아닌 가출을 하는 그를 보며 짜증이 치밀었다. 그런 그가 나를 멍청하게 여기고 막말을 내뱉는 상황은 최대 미스터리였다.

 그의 남은 인생이 어떻게 풀려나갈지 취업 준비에 막막했던 나도 애가 타곤 했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전공과 관련된 직장을 아빠가 알선해 주어서 어쩐 일인지 잘 다니고 있다. 가끔 부모님께 밥도 사고, 독립도 하고. 신경을 건드리는 일이 있다면 가족톡방에 아빠가 무슨 말을 해도 싸가지없게 답을 잘 안 한다는 것. 그 정도다.

 내가 처음 태어났을 때 오빠가 무슨 감정을 느꼈을지 생각을 해봤다. 나에게 뚱뚱하다고 항상 폭언을 퍼부었지만 정작 그가 고도비만으로 청소년기를 보냈던 걸 생각하면 본인의 콤플렉스를 만만한 나에게 투영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는 재수를 해서 겨우겨우 상향 지원한 대학에 붙었지만 나는 입시에 처참히 실패해서 결국 같은 초중고대학교를 다니게 된 것도 생각한다. 그러니까… 복잡하다. 엄마는 오빠와 나 사이에 대화가 없다는 것도 경시 여기다가 대화 단절이 시작된 이유가 엄마임을 내가 일러준 뒤로 괜히 우리 사이에 말을 하게 만든다. 귀찮고, 짜증이 난다.

 잠시 떨어져서 정리해 봐도 그를 이해하고 싶지 않다. 데이고 난 자리를 아직 까지 만지고 싶지가 않다. 이해해 주기가 싫고 용서할 용기가 없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조차 안 하는 기색이니… 얽히고 망쳐버린 관계를 복구하는 데 너무 많은 게 필요하고, 지금의 나는 일상을 살아내느라 지쳐있다. 어쩐 일인지 스르륵 그가 직장에 잘 다니게 된 것처럼, 어쩐 일인지 스르륵 풀려나갈 수도 있는 걸까. 상상이 되지 않는다. 오늘도 덮어 두고 싶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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