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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옐로 Aug 08. 2022

국경마을에는 국경이 없다

히우 드 오노르(Rio de onor)

 여행의 수많은 기쁨들 중 하나는 현지인과 가볍고 나른한 대화를 나눠보는 것이다. 국경 마을에서 국경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 것은 허름한 구멍가게 앞 파라솔 아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을 때였다. 가게 앞에서는 장기와 비슷해 보이는 게임을 두는 노인들과 그것을 구경하는 노인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더위를 피해 앉아있는 노인들 뿐이었다. 울창한 매미 소리에 귀가 먹먹할 정도였는데, 매미들은 아마도 여름의 끝을 알리고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는 국경이라는 말이 아예 없었어요. 저기든, 여기든 언제나 자유롭게 왕래했죠. 주름이 깊게 팬 노인이 알아듣기 힘든 포르투갈어로 어쩐지 다그치듯 말했다. 그러니까 국경은 우리 것이 아니에요(A fronteira não é nossa). 겨우 백미터 앞이 국경이라서 재미있다는 내 말에 대한 노인의 대답이었다. 

    

고양이에게 사진 촬영을 해도 되는지 물었디


 포르투갈을 지도에서 보면 망연히 대서양을 바라보는 어떤 얼굴처럼 보인다. 그 얼굴의 뒤통수 가장 위에 바로 이 마을 히우 두 오노르가 있다. 이 마을은 수년전 포르투갈의 신비한 7대 마을 중 하나로 꼽혔다고 한다. 얕은 강을 바짝 끼고, 줄지어 지어진 편암 집들이 인간의 눈에 무척 아름답게 비치기 때문일 것이다. 

강물에 마을이 비치는 것을 보면, 내 마음도 명경지수가 된다


 마을을 방문한 날에는 관광객이 별로 없었다. 작고 아담한 마을은, 둘러보는 데 채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마을을 이리저리 거닐다가 스페인어를 말하는 사람이 이따금 눈에 뜨였다. 그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관광객이라기보다 거주민에 가까웠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들 모두가 마을 주민들과 익숙한 듯 대화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알고보니 그들은 그러니까 건너편 스페인 마을, Rihonor de Castilla에서 걸어온 스페인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것이 신기해 한참을 눈여겨보았는데 사람들 사이에 지도에 그려진 국경선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노인이 말한 ‘우리’란 이곳에 사는 포르투갈 사람들과 건너편 스페인 마을에 사는 스페인 사람 모두를 일컫는 말이었다.     


마그네트 기념품을 만드는 마을 아저씨는 흔쾌히 사진촬영을 허락해주었다


 강에 비친 집들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맑았다. 정오의 노곤한 태양은 로마 다리에 살짝 걸쳐있었고, 지팡이를 쥔 어느 노인이 부드러운 아치를 그리며 그 위를 걸어가고 있었다. 젊은 사람들이야 더 나은 삶을 위해 도시로 다 떠났죠. 어느 젊은이가 여기서 농사지으며 살고 싶겠어요. 하지만 당신 같은 관광객들은 이곳을 방문하죠. 왜냐면 여기에 찾아야 할 게 있으니까요. 나는 노인의 눈을 멀거니 쳐다보았다. 잃어버린 그 무엇을 찾기 위해서 온다는 말이죠. 그 무엇이 뭘까요. 내 물음에 노인이 아무 말 없이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도 아무 말 없이 다시 아이스크림을 핥았다.

      

할아버지가 빼꼼히 나를 보고 있었다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문득 스페인 지방정부라고 쓰여있는 낡은 지프 한 대가 가게 앞에 멈춰 섰다. 어디선가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라도 베고 왔을 것처럼 궂은 일을 할 것 같은 덩치 큰 사내 두 명이 차에서 내렸고, 익숙한 듯 가게로 들어가더니 각자 맥주 한 병씩을 들고나왔다. 그리고는 테이블에 앉아 스페인어로 이야기를 나누며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가게 앞 어떤 노인도 그들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그곳에는 그러니까 국경이 없었기 때문일까.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것이 바로 내가 이 마을을 찾은 이유인 것 같았다.


Rio de on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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