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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우 Mar 16. 2024

두번째 컷

이제 밖으로

 우리가 이사한 곳은 전포사잇길 위쪽의 한 아파트인데, 아래는 사람들이 마구 붐비는 번화가이다. 최근 서면 중심가가 많이 죽은 이후로 전포 사잇길로 많이 유입이 되었는데, 죽어라 마셔라 하는 유흥가와는 다른, 조금은 점잖은 분위기를 품고 있다. 물론 담배에는 장사없다. 어떻게 거리에 담배가 묻으면 급작스레 힘들어지고 조용해질까. 사람들의 뒷굽에 짓밟히는 젖은 꽁초들. 가로등 근처에 떨어져있는 꽁초들. 난 창문 밖으로 전포를 내려다보며 어느새 서글퍼진 나를 발견했다. 침대에 누워 내가 찍은 첫번째 사진을 살펴본다. 아직은 정돈되지 않은 밤의 풍경이 왜 이렇게 기댈 대가 없어 보일까. 난 그 사진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뭐하노. 사진만 그래 쳐다보고." 아버지께서 열린 문으로 날 보고 말하셨다. "사진 보고 있었슴다. 그냥, 좀 몽글한 기분이네요."

"밖에 산책이나 갖다 온나. 저 밖에 니가 좋아할 예쁜 가시나들 많더만. 카메라로 좀 찍고 온나."

"아부지, 그거 도촬입니더."

"야 야, 내가 니 엄마 만날 때 한 멘트가 - 저기, 너무 예쁘셔서 그런데 사진 한 컷만 찍어도 될까요?- 였어 임마. 도촬을 하라는 기 아니고 정중하게 다가가서 사진 한 컷 찍어주고 주면 좋아 죽는다. 니가 그 들쑤시는 클럽인가 뭐신가 그런 것보다 한 층 더 낫다 아이가."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여서 할 말을 잃었다. "그런 걸 요즘 세상에 으찌합니까."

"그냥, 카메라들고 갖다 와. 카메라는 찍히는 게 없으면 소용이 없고 찍지 않으면 무쓸모다."


 그렇게 등 떠밀려 난 카메라를 든 채 전포 거리로 쫓겨났다. 내리막을 살살 타며 내려가니 금방 기분이 뭉개졌는데, 그 아부지가 말한 예쁜 가시나들은 다 남자애들 팔짱끼고 노는게 아닌가. 남 기분 좋으라고 사진을 찍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목에 카메라만 건 채로 뾰로퉁한 표정으로 잠깐만 돌아다니다 들어가자는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지만 걸어도 뭔가 몽글하고 서글픈 이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좀 산책을 하기에는 시끄러웠고 정신사나웠다. 마음의 안정을 찾을 때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 근방 카페는 전부 만석이고 어여쁜 가시내들이 남자애들과 같이 수다를 떨고 있다. 난 당당히 토라져있었다. 그러다, 문득 내 처지를 더 슬프게 해 아예 슬픔을 가시게 할 친구를 만났다. 가로등. 그 옆에 기대서 담배를 피는 할아버지. 그는 전포와 멀어 보였고 이 시대가 아직 거치지 않은 듯 보였다. 가로등은 화사하게 꾸며졌었지만 지금은 때에 바래 지저분해졌고 온갖 전단지와 개 오줌 자국, 잡초같은 꽁초들이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그 위에 달린 이름 모를 기계들은 그 풍경을 더 서글프게 만들기 충분했다. 난 무심코 카메라 초점을 가로등 위에 맞추고, 한 장 찍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떠난 후 남은 에쎄 수 꽁초와 같이 가로등을 찍었다. 가로등은 옆에 있는 이자카야에 대비되어 한 층 더 비굴해보였다. 이게 내 두번째 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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