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 동안 마음이 어지럽다. 뭐 하나 집중하기가 어렵고 가만있는 것은 더욱 괴롭다.
아마도 동생의 전화를 받은 후부터 그런 것 같다.
지난 수요일 동생이 밤늦게 전화를 했다. 부모님 집 문제로 급하게 의논할 것이 있다는 것.
얼마 전 전세로 살고 있는 부모님 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남의 일처럼 생각했던 깡통전세 사고가 부모님에게도 일어난 것이다.
전세로 들어간 집에 은행대출이 많았고, 집주인이 파산하는 바람에 집이 경매에 넘어간 거다.
그래도 대출을 좀 받을 수 있어서 전세보증금을 받아낼 수 있을 만큼의 금액으로 경매에 참여해
부모님이 집을 낙찰받거나, 다른 사람이 낙찰받더라도 전세보증금을 지킬 수 있게 전략을 세웠었다.
계획대로만 흘러가면 문제가 없어 보였는데...
다행히 예상대로 경매 낙찰을 받았다. 문제는 세입자가 부모님이기 때문에 전세보증금으로 깔고 있는 금액을 차감하고 나머지만 지불하는 과정에서 전세보증금을 입증하는 절차가 있었는데 이 신고 시기를 놓쳤다는 것.
동생이 아버지를 도와서 절차를 밟았다는데, 어찌 된 일인지 보증금 입증 날짜를 놓쳐서 전세보증금만큼의 금액을 직접 입금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아버지와 동생은 놀라서 법원으로 달려갔고 기한에 대해서 듣지 못했다고 이의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꼼짝없이 2억에 달하는 보증금을 현금으로 지불해야 하게 되었다. 아니면 낙찰이 취소되고 계약금도 돌려받지 못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경매 낙찰을 위해 빌린 대출도 취소될 수 있다는 것. 그러면 다시 경매에 신청할 수 없다.
이미 낙찰금액을 최소한으로 했던 이번 경매가 취소되면 다음 경매 금액은 더 낮아질 가능성이 크고, 그러면 부모님의 집 보증금은 모두 보전받기 힘들어진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던 과정에서 기한 날짜 하나를 놓치는 바람에 모든 것이 어긋나 버렸다.
동생은 잔금 입금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융통해 줄 수 있는 자금이 있는지 물으려 연락을 한 것이었다.
프리랜서인 나 역시 일거리가 없는 어려운 시기라 아무리 끌어 모아도 몇백이 안되고 얼마 나오지 않을 대출도 받으려면 공증이니 절차가 복잡해 열흘 밖에 남지 않은 기한 내에 받기는 힘들다.
모두가 어려운 시기, 당장 2억씩이나 되는 돈을 구하기가 쉬울까.
아버지도 동생도 백방으로 뛰고 있다는데... 아... 머리가 아프다.
사실 돈이 있었다 하더라도 난 흔쾌히 빌려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요구로 몇 번이나 돈이 오고 갔던 적이 있었고 그때마다 스트레스가 심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는 언제나 당당하게 나에게 손을 내밀었고 나는 뭐에 홀린 듯 아무 말 없이 돈을 건네었었다. 그리고 언제나 빌려준 돈은 돌려받기가 쉽지 않다. 20대에 일찍 독립하고 결혼해서도 한 번도 부모님께 도움을 바란 적 없었던 나는....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그 일들이 상처로 남아 있음을 안다. 그래서 다시는 부모님과 돈거래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까지 했었다.
자의든 타의든 이번에는 부모님과 돈거래를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은 무겁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예민해지는 아버지, 그 곁에서 아무 말 못 하고 냉가슴 앓고 있을 엄마.
괜찮다고 하지만 어깨가 축 처졌을 동생까지 눈앞에 어른거린다. 밉고 원망스러우면서도... 안쓰럽다.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며 쳐진 몸이라도 움직여야겠는데, 날은 또 왜 이렇게 차가운 건지...
무겁다. 사는 게 참. 마음이 무거우니 주변도 다 무겁게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