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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짐니 Aug 08. 2021

다시 쓰는 안데르센_엄지공주 <멜로디>

악보에서태어난 엄지소녀

브런치 작가와 함께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명작> 공모전에 참가합니다. 안데르센의 <엄지공주>를 각색해 썼습니다. <다른 사람과 살고 있습니다> 매거진 연재는 한 주 쉬어갑니다 :) 





 옛날, 숲 속 마을에 사는 음악가 부부가 있었다. 아내는 음악을 만들고 남편은 기타로 그 음악을 연주했다. 이들 부부에게는 한 가지 소원이 있었는데, 아내의 음악을 남편이 기타로 연주할 때 예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줄 아이가 갖고 싶었다.


 아내는 매일 밤 기도했다. “예쁜 목소리를 가진 아주 작은 아이가 갖고 싶어요”

그렇게 기도가 계속되던 어느 날 밤, 아내의 기도를 들은 요정들이 나타나 악보 위에 별빛 가루를 사르르 뿌리고 사라졌다. 부부는 깜짝 놀라 눈을 비비며 요정들이 날아간 곳을 한참 바라봤다. 악보 위에서 반짝이던 별빛 가루도 어느새 사라졌다. 



 다음 날, 부부는 어젯밤의 그 악보를 펼쳐 놓고 연주하기 시작했다. 아내가 연주에 맞춰 흥얼거리자, 어디선가 맑고 높은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 이 노랫소리 들려요?”

 “네, 악보 쪽에서 나는 소리 같아요.”

 아내가 묻자 남편이 악보를 가리키며 답했다. 두 사람은 함께 악보를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동그래진 눈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얼굴에는 놀라움과 동시에 만면에 미소가 가득했다. 악보 속 음표 하나가 작은 소녀로 변해있었기 때문이다. 소녀는 엄지 손가락보다 작은 몸집에 맑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8분 음표의 꼬리와 같이 높게 묶은 머리가 발랄함을 더해줬다. 부부는 악보 속에서 나온 이 아이에게 ‘멜로디’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엄마, 아빠. 저는 노래 부르는 게 좋아요! 하루 종일 노래를 불러도 지치지 않아요.” 

 멜로디가 세상에 온 뒤로 부부는 매일매일 연주하고 노래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특별히 연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매일 함께 노래하다 보니 세 가족은 하나의 팀처럼 호흡이 잘 맞았다. 

 “우리 숲 속 광장에 나가서 노래해보지 않을래?”

 아빠의 제안이었다. 엄마와 멜로디는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숲 속 광장에서 공연을 하는 날, 멜로디의 가족들은 이른 아침부터 악보와 기타를 챙겨 광장에 도착했다. 토끼, 사슴, 개구리, 하늘의 새들, 그리고 이웃마을 사람들로 넓은 광장이 꽉 찼다. 세 사람이 앞으로 나가 인사를 하고 공연을 시작하려는 순간, 휘리릭 바람이 불어 엄마의 악보가 모두 날아가버렸다. “안 돼! 악보가…” 악보를 잡으려고 쫓아가던 아빠가 넘어지며 기타가 “쾅!” 쓰러졌다. 기타는 그대로 목이 부러져 두 동강이 나버렸다. “이걸 어떡하죠?” 엄마는 놀라 달려왔고, 아빠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괜찮아요, 저 혼자 노래할 수 있어요!” 

 멜로디는 씩씩하게 혼자 무대 위에 다시 올라갔다. 멜로디가 너무 작아서 관객 중 누구도 가수가 등장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노래를 시작하자 멜로디의 맑은 목소리에 순식간에 광장이 조용해졌다. 관객들은 가수가 어디에 있는지 연신 두리번거렸다. 그때 한 사람이 소리쳤다.

 “저기 무대 위에 엄지만한 소녀가 노래를 부르고 있어!”

 “어디? 어디?”

 “도대체 소녀가 어디 있다는 거야?”

 “어머, 정말 작다.”

 “저렇게 작은 소녀가 이런 목소리를 낸다고?”

 광장이 다시 소란해졌다. 멜로디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 높여 노래했다.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이 순간이 너무 행복했다. 멜로디가 다음 노래를 시작했을 때에는 동물들도 사람들도, 나무와 풀잎들도, 그리고 연못 속의 물고기들까지 함께 노래했다. 





 멜로디에게는 누구든 노래하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개구리들은 “필릴리 필릴리”, 새들은 “지지배배”, 나무들도 나뭇잎을 동그랗게 오므려 “휘리릭 휘릭” 노래를 부르고, 심지어 식탁 위의 쌀알들도 차례로 뛰어올랐다가 식탁에 부딪히기를 반복하며 “싸르르 싸르르” 노래를 불렀다. 멜로디가 가는 곳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렸다. 


 이 소식을 들은 이웃 나라 사람들이 멜로디를 찾아와 자신의 나라로 함께 가줄 것을 청했다. 

 보석 나라의 대표가 가장 먼저 말했다.

 “세상의 모든 보석이 우리나라에 있소, 그 아름다운 보석들이 부르는 노랫소리는 얼마나 경이로울지 들어보고 싶소.”

 목동 나라의 대표는 자신의 나라에는 양털이 어마어마하게 많은데 그 폭신한 양털들이 들려주는 부드러운 노랫소리를 듣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얼음 나라의 대표는 간절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모든 게 꽝꽝 얼어붙어 버렸어요. 사람들과 동물들의 마음까지 얼어붙어 아무도 집 밖으로 나오지 않고, 야속한 눈은 계속해 내려요. 멜로디, 당신의 노랫소리로 부디 우리나라를 녹아내리게 해주세요.” 

 멜로디는 즉시 얼음 나라로의 여행을 선택했다. 


 얼음 나라로 떠나기 전날 밤, 엄마는 멜로디에게 물었다. 

 “멜로디야, 세상을 노랫소리로 행복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 자신이 행복한 게 가장 중요하단다. 얼음 나라로 떠나는 너는 행복하니?” 

 엄마의 질문에 멜로디는 잠깐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네, 엄마. 저는 세상이 노랫소리로 가득 차는 게 너무 행복해요. 아직 노래하는 기쁨을 모르는 곳에 가서 행복을 나눠주고 싶어요.” 

 엄마는 대견함과 섭섭함이 뒤섞인 미소를 지으며 멜로디를 꽉 안아주었다. 

 

 얼음 나라로 떠난 멜로디는 꽝꽝 얼어버린 마을 전체와 내리는 눈까지 ‘사르르 사르르 사각사각’ 노래하게 만들었다. 어느새 얼음 나라 사람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오늘 창문을 열었을 때, 문득 바람소리가 노랫소리처럼 들렸다면 그것은 세상을 위해 노래하는 멜로디의 목소리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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