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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홍희 Nov 14. 2021

[1] 구질구질하지만
상세페이지는 ‘상세’하게

“남자한테 참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

천호식품은 몰라도 이 멘트를 읽는 순간 머릿속에서 광고 한 편이 재생된 분들이 계실 겁니다. 2010년에 만들어진 광고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걸 보면 이 광고, 제대로 만든 게 맞아 보입니다. 타겟 고객의 호기심을 유발해 임팩트를 남겼죠.


이 광고의 컨셉을 살려 저도 광고 한 편 해보겠습니다. 산수유는 아니고 신발인데요. 2010년이 아니라 2021년인만큼 TV 광고보다는 자사몰이나 온라인 패션 플랫폼 업로드를 위해 상세페이지를 작성해 보겠습니다. 최소한의 정보만 노출해서 호기심을 유발한다면… 이런 느낌 아닐까요?


멋져 보이는 영문 한 줄, 제품 사진 한 장. 이 신발의 아웃솔은 무엇이고 인솔의 쿠션감은 어떤지, 또 어떤 부자재가 사용되었고 관리방법 설명 같은 내용 없이 제품의 사진만 보여주는 겁니다.


그리고 저는 망했을 겁니다. 천호식품이 광고 한 편으로 대박을 친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이자, 누구도 원하지 않았을 결말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금은 2010년이 아니고,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건 TV 광고가 아니라 온라인 상세페이지니까요.


호기심을 유발하고 싶었을 뿐인데 망했다니.

고객은 제 신발이 궁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네이버 쇼핑에서 ‘신발’을 검색하면 6471만 1177개의 결과가 나옵니다. (2021년 1월 15일 기준) 이 중에서 1%의 판매자만이 상세페이지를 꼼꼼하게 작성했다 쳐도 고객은 64만 7111개의 신발을, 아웃솔 제조사부터 인솔 쿠션감까지 매장에서 신어본 것 이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한정된 예산에서 최상의 만족감을 주는 쇼핑을 하고 싶은 고객들은 굳이 잘 알지도 못하는 신발을 사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죠. 그건 도박이니까요.




막 시작한 브랜드일수록 상세페이지는 ‘상세’하게.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서 에디터로 일하다 보니 온라인 상세페이지보다도 상세하게 작성된 스토리를 매일 같이 보게 됩니다. 자사몰이었다면 ‘모두 다른 가죽을 사용해 경쾌한 컬러 매치를 보여준다’ 썼을 문장을, 왜 경쾌한 컬러 매치를 보여주고 싶었는지부터 시작해 사용한 가죽은 어디서 오고 누가 다듬는지까지 하나하나 짚고 넘어가는 식입니다.

* 다수의 개인으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것으로, 펀딩에 참여한 대가로 제품(리워드)를 제공합니다. 제품 출시 전 충분한 수요를 파악해 꼭 필요한 생산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왜 그러는 걸까요? 이들 대부분이 막 시작한 브랜드이기 때문입니다.

1) 재고 없는 매출 발생이나 홍보, 혹은 시장 조사 등을 목적으로 신생 브랜드가 펀딩을 오픈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서포터(고객)들은 제품이 마음에 들어도 사진빨, 모델빨에 속아 도박이 될까 망설이게 됩니다.

2) 무엇보다 오늘 펀딩한다고 해서 내일 당장 오지 않습니다. 오늘 주문 내일 도착이 익숙한 대한민국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려야 하는 이유가 없다면 굳이 펀딩할 이유가 없죠.


바꿔 말하면, 신생 브랜드일수록 이미 널리 알려진 브랜드보다 무엇이 왜 좋은지 고객들에게 충분히 설명해야만 매출이 발생합니다. 고객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신발’ 했을 때 떠오르는 브랜드들이 있습니다. 그 브랜드 구매 경험도 있고 “여기 000 모델 어때?”하고 물어봤을 때 들을 수 있는 주변의 후기도 충분합니다. 지인 후기가 아니더라도 그 브랜드 상세페이지에 가면 낯선 이들의 리뷰가 수두룩하죠. 모든 것들이 “이 브랜드의 신발을 사면 망하진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생 브랜드는 이 중 무엇 하나 갖추지 못했습니다.
짱 되서 이길 준비를 하는 중이죠 ⓒ최고심

막 제품을 생산했으니 내 브랜드의 구매 경험 있는 고객은 극히 적고, 후기를 써주는 고객은 더 적고, 주변인에게 추천하는 고객은 더 더 적겠죠. 신생 브랜드는 내 제품을 궁금해하며 기다려 줄 고객 자체가 없는 상황이므로, 결국 초기 고객 확보를 위해서라도 ‘친숙한 브랜드를 버리고 우리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차근차근 어필하는 상세페이지가 필요해지는 것입니다. 원단부터 부자재까지 보여줘야 하는 것들이 많은데 그걸 한 장의 사진에 모두 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니까요. (만약 담으셨다면 판매보단 예술 쪽은 어떠실지…?)


그렇게 작성된 상세페이지와 받아본 제품이 일치할 때, 비로소 고객은 ‘여기엔 베팅해도 되는구나!’를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베팅의 성공률이 올라갈수록 고객은 ‘이 브랜드는 원단만큼은 제대로야’ 혹은 ‘착화감은 여길 따라올 곳이 없네’처럼 내 브랜드가 집중하는 가치를 경험하게 됩니다. 

여기 괜찮은데?


그런 고객들이 늘어간다면 더 이상 시시콜콜하게 상세페이지를 써야 할 필요가 줄어들겠죠. 내 브랜드는 이미 원단으로 유명한 곳, 착화감으로 유명한 곳으로 소문이 나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없을 테니까요.


비로소, 우리도 사진 한 장만으로 고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브랜드가 된 겁니다.




그러러면 일단 팔아야 합니다.

상세페이지를 쓰다 보면 저 역시 가끔 ‘현타’가 옵니다. 아, 이런 것까지 써야 하나 싶고 비는 느낌도 들고 괜히 구질구질하고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을 거부한다면 누구도 원하지 않는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망한다던가.


그러니 유사한 제품을 다루는 유명 쇼핑몰에 들어가는 것부터 시작해 보세요. 어떤 포인트를 얼마 정도의 분량을 할애해 작성했는지부터 디테일 사진은 어떤 각도에서 얼마나 가깝게 찍었는지까지 충분히 살펴보시는 게 좋습니다. 그대로 따라하는 건 절대 금물, 내 제품에 적용한다면 어떻게 쓰고 찍어야 할지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다음 제품 런칭 때 좋은 인사이트가 되어줍니다. 언젠가 여기를 이기겠단 생각을 하면 불타오르는 의지도 얻어갈 수 있습니다.


불타오르네~


상세페이지 작성법을 알려주는 글을 읽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브런치에서 ‘상세페이지’라고 검색만 해도 각 분야의 실무자들이 쓴 팁이 수두룩 빽빽하게 나옵니다. 그마저 귀찮다면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의 콘텐츠 에디터가 달마다 한 번 쓸 글을 정독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네, 그게 바로 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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