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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홍희 Aug 31. 2020

[01] 섬세하되 질척대지 않는 크라우드펀딩의 언어

스니커즈로 20억을 모은 언어의 마술사, 제누이오

진짜 졸라 깁니다. 하지만

내 펀딩의 제목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스토리 톤 조절을 못 하겠다.

하시는 분들이라면 일독을 (제 맘대로) 권합니다.
이러는 제가 누구인지 궁금하시다면 → 그 펀딩은 왜 성공했을까.



크라우드펀딩을 준비하시면서
이 프로젝트 모르시면 안 됩니다.

'스니커즈'라는 단일 제품으로 총 2번의 펀딩을 진행해 20억(+ a)를 모은 제누이오의 #페르페토 프로젝트다. 

미리 밝히자면 내가 담당했던 건 첫 번째 프로젝트다.

발을 공중으로 들어 올린 대표 이미지가 트레이드 마크인데, 워낙에 유명하다 보니 비슷한 패션·잡화카테고리 뿐만 아니라 다른 카테고리에서도 제누이오의 스토리를 따라해 오는 경우*들이 종종 있을 정도다.

* 물론 그런 경우엔 콘텐츠 심사 단계에서 최대한 수정 요청 드립니다. 스토리를 다시 써야 할 수도 있으니, 처음부터 나만의 스토리를 써주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거친 스토리와 (메이커님의)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에디터들




스니커즈 프로젝트는 많은데,
제누이오는 어떻게 압도적일 수 있었을까?

많음. 진짜 많음.


섬세하되 질척대지 않는
메이커님만의 언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크라우드펀딩의 언어는 왜 섬세해야 하는가.

크라우드펀딩은 어쨌든 제품을 처음 소개하는 자리다. 따라서 제품의 특징들이 상세하게 작성되어야 하는데, 그 방식은 온라인 플랫폼의 특성상 '글자(텍스트)'일 가능성이 크다.

상세한 텍스트는 좋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상세하면 스토리가 길어져 다 읽지도 못하고 페이지를 이탈하시게 된다. (예를 들면... 바로 이 브런치처럼?) 상세하지만 지나치지 않는 텍스트가 크라우드펀딩에 적합한 섬세한 텍스트다.


하지만 질척대지는 않아야 한다.

크라우드펀딩은 오픈할 때 설정해 둔 목표 금액을 넘기는 결제예약금이 모여야 성공했다고 하는데, 성공을 위해 서포터님들께 펀딩 참여를 졸라서는 안 된다. 서포터님들의 귀에는 '저희 성공해야 돼요 ㅠㅠㅠ 도와주세요 ㅠㅠㅠ"처럼 들릴 뿐이다. 새벽 2시에 걸려온 옛 애인의 전화처럼 부담스러워진다.


제누이오의 프로젝트들은 모두 목표 금액이 높았다.
첫 번째 펀딩은 6,500만 원이었고 두 번째 펀딩은 1억 원이었다. 둘 다 특출나게 높은 편인데, 특출나게 높은 결제예약금을 모으며 성공했다.


1억 받고 18억 모은 앵콜 펀딩 클라스

목표 금액이 이렇게 높은데, 펀딩 참여를 조르지도 않고 성공할 수 있었을까? 읽다 보면 알겠지만 이들이 섬세한 언어를 사용해 서포터님들을 납득시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크라우드펀딩의 언어는
어떻게 섬세해야 하는가.


내용이 아주 길기 때문에 (그것도 졸라 깁니다.) 1편에서는 섬세함이라는 한 놈만 패보겠습니다.
2편에서 질척이지 않는 언어를 분석할 건데요. 제누이오가 가장 잘 하는 것 중 하나이기 때문에 같이 읽어주시는 게 좋겠습니다. 저부터 일단 빨리 쓸게요.




1. 제목부터 섬세해야 한다.

제목만 읽고도 서포터님들이 내가 뭘 얻어갈 수 있는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① 추상적인 말은 최대한 빼되, ② 제목만 보고 파악하기 힘든 구체적인 내용은 빼는 게 좋다.


(기존)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장인이 만드는 [페르페토 송아지가죽 스니커즈]

내가 제누이오 프로젝트의 초안을 처음 만났을 때 보았던 제목은 이랬다. 그리고 위 ①과 ②를 기준으로 제안드린 제목들 중 두 가지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예시 1) 이탈리아 장인도 놀란 가격ㅣ70만 원 대 명품 스니커즈가 10만 원 초반?

삭제된 주요 단어 : 브랜드, 제품명(페르페토), 송아지가죽

추가된 주요 단어 : 가격, 10만 원 초반 

(예시 2) 10만 원 초반에 누리는 70만 원대 이탈리아 스니커즈의 완벽함ㅣ페르페토

삭제된 주요 단어 : 명품, 브랜드, 장인, 송아지가죽

추가된 주요 단어 : 10만 원 초반, 완벽함




① 상세하기 위해 → 추상적인 말 빼기

10만 원 초반이라는 구체적인 가격이 무조건 제목에 들어가야 했다.
오프라인에서 최소 70만 원 대에 유통되는 퀄리티의 스니커즈를 10만 원 초반대에 펀딩할 수 있다는 내용이 기억에 남았다. 와디즈 서포터님들이이야 퀄리티만 합리적이라면 10만 원 대도 저렴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임을 이미 알고 있으니, '그래서 얼마인지'를 제목에 무조건 넣고 싶었다.

'명품 브랜드 장인이 만든다'는 추상적인 이야기는 빠져도 될 것 같았다.
장인 정신이야 너무 많은 펀딩에서 지겹도록 언급되고 있는 키워드이고, 그 정신으로 서포터님들께 뭘 제공해 드릴 수 있는지 보여줄 수 없다면 안 쓰는 게 낫다.

 굳이 강조한다면 (예시 1)처럼, 그냥 장인이 아니라 Ciao! Buon giorno! 하고 인사하는 '바로 그 이탈리아' 장인으로 구체화 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종료된 패션·잡화 프로젝트 중, 제목에 '장인' 들어간 것만 이 정도 (20년 8월 30일 기준)


② 지나치게 상세하지 않기 위해 → 구체적인 말 빼기

굳이 '송아지 가죽'임을 알려줘야 할까?*
꼭 가죽 스니커즈여야만 명품으로 인정받는 건 아닌데, 가죽 중에서도 송아지 가죽이라는 게 제목에서 드러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스토리 안에서, '송아지 가죽을 이렇게 잘 처리했으니 이게 바로 명품'이라는 식으로 차근차근 풀어가는 게 더 효율적이지.

* 한 가지 주의할 점.
내 제품의 주요 특징이 원단이나 재료라면 제목에 그 내용을 넣는 것이 좋다. 페르페토 스니커즈의 경우 송아지 가죽에 가격적인 혜택, 기타 디테일들이 정해져 '명품 퀄리티'라는 큰 특징을 구성하기 때문에 '송아지 가죽'임을 안 넣어도 되는 것이지, 원단/재료 그 자체가 메인 특징이라면 제목에 넣어줘야 한다.

(예시) 캐시미어 코트의 가격을 다시 쓰다ㅣ매일 입는 캐시미어 코트, 벨리에
10만 원 대 코트이지만 구체적인 가격 대신 '캐시미어'를 두 번 반복해 원단을 강조했던 케이스.


그리고 제품명.

많은 메이커님들이 프로젝트 제목에 제품명을 넣어 오시는데, 사실 제품 이름이 매력적이라서 펀딩하시는 분은 없다. (얼굴/성격 보고 고백했다는 썰과 이름 세 글자 보고 고백했다는 썰 중 뭐가 더 많은지 생각해 보시라.) 제품명 쓸데없이 글자수만 차지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제품명이 제목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메이커님이 정해오신 최종 제목은 (예시 2)를 살짝 바꾼 아래와 같았다.

(기존)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장인이 만드는 [페르페토 송아지가죽 스니커즈]

(최종) 10만원 초반에 누리는 이탈리아 명품 스니커즈의 완벽함 | 페르페토

삭제된 주요 단어 : 브랜드, 장인, 송아지가죽

추가된 주요 단어 : 10만 원 초반, 완벽함

유지된 주요 단어 : 명품, 스니커즈, 제품명(페르페토)

짠-




2. 프로젝트 요약도 섬세해야 한다.

프로젝트 요약이 뭐냐면, 프로젝트를 클릭했을 때 (제목을 빼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텍스트다.

길고 긴 와디즈 펀딩 스토리를 읽을 지 아닐 지가 여기서 결정이 되는데, 의외로 여기에 제목을 복사 + 붙여넣기 해오시는 메이커님들이 많으시다. (그러면 에디터 마음이 찢어지겠어요, 안 찢어지겠어요?)


개인적으로는 프로젝트 제목을 연장해주는 느낌으로 작성한다는 대원칙 하에, 둘 중 하나의 방법을 많이 추천드리는데 제누이오의 경우는 ①에 해당했다.

① 제일 중요한 제품 특징 하나만 감성적으로 조지거나

② 특징이 많은 경우 단순 나열이 되지 않게 부드럽게 이어주는 것





초안에 적혀 있던 프로젝트 요약은 이러했다. 

(기존) 명품 브랜드에서 최소 70만 원에 선보이는 퀄리티의 스니커즈를 이제 합리적인 가격에 경험하세요. 이탈리아 최상급 송아지가죽으로, 이탈리아 장인이 만듭니다.


제안드렸던 프로젝트 제목들이 '10만 원 대 초반의 명품'을 강조하는 방향이었기 때문에, 송아지 가죽처럼 추가 설명이 필요한 내용은 빼고 (지나치게 상세하지 않기 위해) 이거 하나만 감성적으로 조져보고 싶었다. 그래서 제안 드린 건 아래 두 가지.


(예시 1) "그 가격으로 브랜드 유지가 되겠어?" <페르페토> 제작을 맡으신 이탈리아 장인 분이 건넨 말입니다. 최소 70만 원부터 책정되는 스니커즈, 10만 원 초반대에 소개하고 싶습니다. 

(예시 2) 명품 브랜드가 최소 70만 원부터 선보이는 이탈리아 장인의 '완벽한' 송아지 가죽 스니커즈입니다. 단, 가격은 10만 원 초반으로요. 이탈리아 장인도 놀란 스니커즈 <페르페토>


이제 보니 (예시 2)는 너무 촌스럽다.


그리고 메이커님은 (예시 1)을 살짝 바꿔서 최종 확정해 주셨다.

(기존) 명품 브랜드에서 최소 70만 원에 선보이는 퀄리티의 스니커즈를 이제 합리적인 가격에 경험하세요. 이탈리아 최상급 송아지가죽으로, 이탈리아 장인이 만듭니다.

(최종) "그 가격으로 브랜드 유지가 되겠어?" <페르페토> 제작을 맡으신 이탈리아 장인 분이 건넨 말입니다. 70만원을 호가하는 럭셔리 스니커즈, 10만원 초반에 소개하고 싶습니다.


'70만 원을 호가하는 럭셔리 스니커즈'라는 단어 선택에서 그 섬세함에 얼마나 감탄했는지 모른다. '호가하다'처럼 있어 보이는 섬세한 단어 선택은 절대 깊은 고민 없이는 나올 수 없다.




3. 제품 특징 소개도 섬세해야 한다.

특징 소개는 상세하지만 너무 상세해서 어렵게 느껴지면 안 된다.

한 마디로 완급 조절을 잘해야 한다는 건데, ① 꼭 넣어야 하는 내용과(= 상세하기 위해) ② 없어도 되는 내용을 구분(= 지나치게 상세하지 않기 위해)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제누이오는 이걸 기가 막히게 잘한다.


① 상세하기 위해  → 꼭 넣어야 하는 내용

'이 내용이 없으면 서포터님들이 펀딩 참여를 망설일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좋은 예시) <페르페토>는 이탈리아 풀그레인 송아지 가죽으로 만듭니다.

(나쁜 예시) <페르페토>는 풀그레인 스니커즈입니다.


나쁜 예시는 왜 나쁠까?

가죽 중에서도 '송아지 가죽'이라는 주요 특징이 안 나왔다.

그 송아지 가죽이 심지어 이탈리아 가죽이라는 것도 안 나왔다.

서포터님들은 비전문가이기 때문에 '풀그레인'이 뭔 줄 모르신다.

가(죽)알못 : 풀 그레인이라니… 뭐 곡물 스니커즈인가요?

그래서 제누이오는 '이탈리아 풀그레인 송아지 가죽'이라는 소제목 타이틀에 맞춰서 풀 그레인 설명을 일단 하고 송아지 가죽을 소개하는 섬세함을 보여줬다.




② 지나치게 상세하지 않기 위해  → 없어도 되는 내용

'이 내용이 없다고 서포터님들이 펀딩 참여를 안 하실 것 같지 않고, 있다고 해서 하실 것 같지도 않다'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좋은 예시) 송아지 가죽(calf skin)은 다른 동물의 가죽보다 부드러우면서도 통기성과 내구성 또한 뛰어나 신발 소재로서 가장 최적화된 가죽입니다. 


(나쁜 예시 1) ... 최적화된 가죽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발은 하루 종일 신발 속에 있기 때문에 통기성이 부족하면 불쾌한 냄새가 날 수 있고 발에 습기도 차지요. 또 큰맘 먹고 장만한 신발이 한 달 신고 떨어져 버린다면 어쩌구 저쩌구 쏼라쏼라

통기성과 내구성이 부족해서 겪는 불편함은 서포터님들이 이미 다 알고 있다.* 이 내용이 없다고 해서 펀딩 참여를 안 하실 가능성은 극히 낮기 때문에 안 써주셔도 된다.

* 보통 '없어도 되는 내용'은 서포터님들이 이미 알고 있을 내용인 경우가 많다.


(나쁜 예시 2) ... 최적화 된 가죽입니다. 송아지들은 보통 00개월이 된 어린 소를 말하는데요. 어느 정도 자랐기 때문에 가죽 두께가 어느 정도 있어 스니커즈를 만들 수 있으면서, 완전히 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죽이 부드럽고 어쩌구 저쩌구 쏼라쏼라

송아지 가죽이 왜 부드러운지 송아지의 생애까지 들먹이며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고 해서 1분 참여하실 게 10분 참여로 늘어날 가능성은 낮다. 핵심은, 제누이오가 강조한 것처럼 '부드러운 송아지 가죽을 사용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송아지들의 귀여운 얼굴이 떠올라 펀딩하실 것도 철회하실 듯.


뀨?


필요하실 거 같아서 준비했습니다.
세 줄 요약

1. 제목은 직관적으로 작성하기

추상적인 말은 최대한 뺀다.

제목만 보고 파악하기 힘든 구체적인 내용은 뺀다.


2. 프로젝트 요약은 제목을 연장해주는 느낌으로 작성하기

 제일 중요한 제품 특징 하나만 감성적으로 조지거나

 특징이 많은 경우 단순 나열이 되지 않게 부드럽게 이어준다.


3. 특징 소개는 꼭 넣어야 하는 내용과 없어도 되는 내용을 구분하기

이 내용이 없으면 서포터님들이 펀딩 참여를 망설일 수 있는가?

이 내용이 없다고 펀딩 참여를 안 하는가? 이 내용이 있다고 펀딩 참여를 하는가?



저도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심지어 맥 아님)




믿기지 않겠지만 2편이 있습니다.
질척거리지 않는 법

제가 저 위에서 한 놈만 팬다고 했었는데요.

증거

아직 살펴 봐야할 요소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건 바로 질척거리지 않는 크라우드펀딩 언어. 이것도 제누이오의 두 프로젝트로 살펴볼 예정으로 준비 중에 있습니다. 기다리는 분이 없어도 저는 씁니다. (제누이오... 좋아하거든요...☆)


근데 그러러면 퇴근을 빨리 해야 하는데요.




첫 펀딩과 앵콜 펀딩 스토리 중 하나만 읽어야 한다면
첫 펀딩 스토리를 읽으시라.

내가 담당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흑심을 숨기지 않는 편), 첫 펀딩 서포터님들의 후기가 어느 정도의 흥행을 뒷받침해 주는 앵콜 펀딩과는 달리 첫 펀딩은 맨땅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제품과 메이커님의 이야기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펀딩을 준비하는 분들이라면 후기 깡패인 프로젝트를 굳이 찾아 읽으면서 기죽으실 필요 없잖아요?


그럴수록 불타오르신다면 말리지는 않습니다.


그럼 조만간 돌아오겠습니다.

그 때는 코로나19가 잠잠해졌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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