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입 깨물었다. 으악! X맛이다. 절로 얼굴이 우그러들고 몸이 꼬인다. 서둘러 입을 헹궜다. 헹궈도 헹궈도 남겨진 냄새가 고약하다. 공진단이다.
얼마 전 한방병원에 근무하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기네 병원에서 제조한 한약을 직원 할인가로 구매할 수 있단다. 마침 그때 몸이 나른하고 무거워서 나날이 피로를 느끼던 터였다. 평소 같으면 비타민 한 알 삼키는 것도 귀찮은 나지만, 이참에 큰 맘먹고 나도 몸보신이라는 걸 해보자 싶어 한약 몇 가지를 요청했다.
공진단이라는 이름은 이따금 드라마나 오락프로그램 같은 데서 말로만 들어봤다. 호들갑스러운 등장인물이 과장된 엄살을 연출하며 그걸 삼키는 시늉을 하거나 언급하곤 했다. 그래선지 ‘공진단’ 하면 코믹하고 극적인 효과를 내는 어떤 소품의 이름쯤으로 여겨졌다.
그걸 먹게 될 줄이야.
반면, 그 성분을 뜯어보니 한약재의 대표주자인 녹용을 중심으로 내가 잘 모르는 진기한 뭔가가 잔뜩 들었다. 효능 효과에 대한 설명을 읽은 후에는 원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부풀었다. 재미 반, 진지 반이 되어서 ‘건강해질 거야! 건강해져야지!’ 주문을 외우며 그걸 입에 넣었다.
노랑 금박 속 덩어리를 깨무는 순간 코를 찌르는 쇠 냄새, 그것은 고약한 향연의 시작에 불과했다. 씹으면 씹을수록 맛은 정말 혐오스러웠다. 세상 못 먹을 건 다 그러모아 뭉쳐놓은 듯 쓰고 역겨웠다. 눈깔사탕만 하던 덩어리가 눈덩이만 한 크기로 입안에 느껴졌다. 엇박자를 내며 억지로 씹어 목구멍에 삼키는 기분이란. 똥 씹은 기분이 이런 건지도 모른다. 건강해질 수 있을까?
익모초. 쓴맛이라면 이 약초도 만만치 않다. 오래전 어렸을 때, 맹렬한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면 할머니는 익모초를 달였다.
갑작스러운 변고로 집 안팎이 엉망이던 시절이었다. 할머니는 노년의 목전에서 때 아니게 우리 다섯 자매의 양육을 맡았다. 손녀 양육에 더해 경제적 빈곤이라는 덤불 속 삶을 헤쳐 내느라 할머니의 성정은 날로 강퍅하고 거칠어졌다. 늘 웃음기 없는 얼굴로 엄한 잔소리와 채근을 끊이지 않았다. 동네에서는 소문난 호랑이 할머니였다.
여름이면 우린 다 같이 기진맥진해졌다. 삶에 지치고 더위에 지쳤다. 입맛을 잃고 진땀을 흘리며 비실거렸다. 내려 쪼이는 맹렬한 더위가 우리 가족에게 불어닥친 시련과도 같은 기세였을까? 어린 손녀들이 지쳐갈 때, 할머니는 더 강하고 독해 졌다. 벌겋게 익어 굵은 땀방울이 맺힌 이마를 훔치며 분연히 익모초를 달였다. 그리고, 정성스레 짜내어 미지근하게 식혀 부은 익모초 대접을 우리에게 내밀었다. 어느새 평소 무섭던 할머니안색은 싹 사라졌다. 대신 한결 부드럽고 다소 간절한 표정이 되었다. 약대접을 받아 든 나는 쓴 것을 눈앞에 둔 공포보다는 이 색다른 분위기가 흥미진진했다. 좀처럼 드문 이 상황을 더욱 즐겨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핼쑥하고 애처로운 병색을 과장하고 뽐내며 기운 빠진 몸짓으로 대접을 입에 가져다댔다. 오만상을 찡그리며 힘겹게 간신히 꼴깍꼴깍 목 넘김을 연출했다. 동그랗게 시퍼런 익모초 호수가 바닥을 드러낼 무렵, 대접에 파묻힌 얼굴 밖으로 치켜뜬 내 눈에 할머니가 들어왔다. 할머니는 나를 향해 고개를 잔뜩 빼고 살폈다. 조마조마하게 갸웃거리다가 이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견한 듯(나인지 당신인지) 급기야 할머니 얼굴에 뿌듯한 미소가 번진다. 나는 덩달아서 외마디 소리와 함께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이 쓴 약을 내가 얼마나 힘들게 먹었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줘야 했다. 그러면 할머니는 민첩한 동작으로 이때다 싶게, 미리 준비한 설탕 한 숟가락을 내 입에 꽉 물려줬다.
익모초는 정말 어마 무시하게 썼다. 돌멩이처럼 무뚝뚝한 호랑이 할머니도 단박에 말랑말랑 녹여놓을 만큼.
대접에 담긴 익모초 액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섬찟하도록 짙푸른 색깔은 독한 맛을 예고하며 서늘한 공포를 자아내기 딱 좋은 빛깔이었다. 검푸른 그 호수에 빨려 들 듯 눈을 맞추고 혀를 적셔야 하는 그 순간은 비장하고 오싹했다. 예상보다 더 크게 온몸이 움찔하도록 쓴 맛 태풍이 휘몰아쳤다. 그 후로 혀에 감도는 여운은 이상하게도 왠지 모를 고소함과 포근함, 달콤함이 밀려들었다. 막판에 입에 문 설탕 한 숟가락, 꼭 그 때문이라 말할 수만은 없는.
타들어 가는 여름 그맘때쯤 할머니의 억센 땀방울이 녹아든 익모초를 마시고 나면, 우리는 매번 파릇파릇 되살아났다.
검색을 통해 익모초를 처음 보았다. 흔히 본 듯 어디에나 있을 법한 풀무더기 모습이다. 가시덤불처럼 엉클어진 이파리가 강하고 드센 생명력을 내뿜는다. 지금은 돌아가신 그 시절 할머니를 닮았다. 효능을 알아보니 좀 당황스럽다. 주로 부인과 질환 치료제로, 더구나 비만 체질인 대상에게 쓰면 좋을 찬 성질의 약초라니. 우린 그때 깡마른 소녀들이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을 법한 할머니만의 독한 여름 나기 처방은 그러나 우리에게 탁월한 효험을 발휘했음이 틀림없다. 삶의 거친 표면 아래 꼭꼭 숨겨진 할머니의 진귀한 사랑이 익모초 액 틈새로 흘러나올 때, 우린 놓칠세라 꿀처럼 달게 빨아 목 넘김 했으므로.
공진단의 쓰고 역겨운 맛은 나를 며칠째 곤경에 빠뜨렸다. 생각다 못해 덩어리를 조각내서 아침, 저녁으로 나누어 코를 막고 씹었다. 이렇게 고약한 기분이니 약이 되겠나 싶다.
절로 그 옛날 익모초의 오묘한 맛이 떠올랐다. 동시에 희끗한 머리를 비녀로 쪽진 할머니가 나타난다. 그을리고 주름진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손등으로 훔치며 웃으신다. 얼룩이 밴 잿빛 월남치마 자락에서 퀴퀴하고 달콤한 할머니 냄새가 진동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