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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호 Nov 29. 2020

『먹는 인간』을 읽고

먹는다는 것은 산다는 것

저자 ‘헨미 요’는 나라별로 역사나 문화에 담긴 갖가지 이야기를 찾아내는 재주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저 호기심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대단한 집요함이 있다. 취잿거리를 찾아 파고드는 기자의 열정과 작가로서 서사를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어떤 글은 마치 정치나 사회 영역을 다루는 보도국 기자의 칼럼 같고, 어떤 글은 가볍고 달콤하게 쓴 것이 독자에게 다양한 읽는 맛을 느끼게 해주었다. 풍미가 있는 글이다.


책이 인상 깊었던 이유가 몇 있는데, 첫 번째는 작가의 필력이다. 식과 생의 경계를 넘나들며 뱉어내는 말들이 담백하면서 동시에 울림이 있다. 그저 유려한 문장을 쓴다는 표현은 아쉽다. 글을 읽다 보면 영상을 보는 것처럼 선명히 글 속이 보인다. 가본 적 없는 나라들의 이미지가 그려지는 경험은 이 책을 읽어 본 독자라면 한 번쯤 경험해봤으리라 생각한다. 또, 저자가 방문한 나라와 경험들은 다소 무겁고 가슴 아픈 주제들이 많다. 제국주의 침탈이나 빈곤의 아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방치되어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독자들에게 반사적인 슬픔을 강요하지 않고 오히려 작가의 관점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객관성을 잃지 않은 채 이야기하는 모습이 ‘먹은 인간’이 인상 깊은 또 하나의 이유다.


국가적, 종교적 시야에서 결국 개인사로 연결되는 저자의 견문은 크고 작은 시사점을 남긴다. 하루 세 번 내가 버리는 음식 쓰레기가 다른 나라에서는 사고파는 가치를 지닐 수 있으며(방글라데시), 인육을 먹었던 자들과 남겨진 자들의 삶의 관계는 반성과 용서라는 비교적 단순한 인과관계로 설명될 수 없고(필리핀), 동물 사료를 만들며 정작 본인은 하루하루를 연명하기에도 벅찬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쓰고 동물이라고 읽는다) 등의 이야기는 비단 25년 전 쓰인 단순한 식생사(食生史)라고 읽히진 않는다. 특히 마지막에 소개된 한국 편에서 위안부 할머님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의 대한민국에서도 진행되고 있는 가슴 아픈 역사다. 이 같은 인류사를 통해 독자는 가슴 아픈 역사를 잊지 않아야 하는 국민(국가)의 의무와 개인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책을 덮으니 아쉬움이 가장 먼저 찾아왔다. 내가 알고 있는 음식과 세상이 너무 좁다는 아쉬움, 당장 이를 넓히고 싶지만, 시국이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헨미 요’와 같은 저자가 작금의 시대상을 다시 한 번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 등이 남는다.


독자들은 작가와 15개국의 여행을 마치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온다. 긴 시간을 함께한 기분이다.

옮긴 이의 말처럼 먹는다는 것은 산다는 것이다. 그저 함께 잘 먹고 잘살고 싶을 뿐이다.

이 단순하고 짧은 진리를 위해 우리는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을 식과 생을 이어간다.

그럼에도 내일은 조금 더 나아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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