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호 Feb 12. 2023

크로스핏을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2

#2. 멘탈 샤워 (Mental Shower)

#2-1. 파괴

우리는 매일 조금씩 파괴된다. 경우에 따라 정신이, 혹은 육체가 그러하고 운이 없는 경우 두 개 모두 해당될 때도 있다. 스트레스로 인해 심신이 고통받으면 사람들은 각자 자기만의 방어기제를 펼친다. 외부의 충격(Action)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반사적인 행동(Reaction)이다. 

나는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2년간 몸무게가 약 17킬로그램 정도 증가했는데(지금도 믿기지 않지만) 당시 나의 방어기제는 폭식과 폭음 두 가지였다. 퇴근하고 매일 맛있는 요리와 곁들이는 반주에 정신을 뺏기고 먹다 보니 지난주에 입었던 바지가 작아져 내 몸에 맞지 않기도 했다. 세탁을 잘 못해서 바지가 줄었나 싶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체중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이러한 '스트레스-해소' 상호작용은 거의 매일 일어나기 때문에 삶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는 알게 모르게 각자의 습관 고리로 이어져, 소리 없이 조금씩 단단히 매듭지어진다. 


파괴가 긍정적 결과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경우도 있다. 우리는 이미 운동을 할 때 자기 파괴를 통한 긍정적 결과를 경험한 바 있다. 힘든 순간을 참고 달리면 심폐지구력이 향상되고 웨이트 트레이닝에서 목표 부위를 강화하기 위해선 근육이 상처를 입고 회복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고통을 참고 견디는 과정 없이 성장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긍정적 결과를 위해선 파괴를 받아들이는 과정(Rebuilding)에서 자기희생과 인고의 시간이 중요하다. 나는 크로스핏을 통해 신체와 정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이고 결과를 온전히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 과정은 거의 매일 일어난다.     


#2-2. Rebuilding

박스에 가면 우선 그날의 와드를 확인한다. 전날 저녁에 올라온 카페 게시글을 통해 이미 보았지만 웜업과 와드 중에 내가 놓친 부분은 없는 미리 확인하고, 와드 무게와 강도를 대략적으로 정해놓는다. 보드판에는 이미 앞서 와드를 끝낸 사람들의 이름과 기록이 적혀있다. 나와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의 기록과 뛰어난 기록을 가진 사람들의 기록을 번갈아 확인하는 과정은 내게 좋은 동기부여가 된다. 함께 기량이 성장하는 과정을 보면서 느껴지는 건강한 경쟁심과 이 과정을 함께 한다는 느낌은 카페인보다 각성효과가 뛰어나다.

보드판에 적힌 다른 사람들의 기록은 내게 동기부여 이상으로 의미는 없다. 오직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나아졌는지가 중요하다. 꾸준히 시간과 노력을 투여하니 결과가 좋아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문제는 이 유익한 과정을 알고도 실천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바쁜 출퇴근, 쉴 새 없이 몰려오는 메일을 처리하고 회의시간을 버텨내면 어느새 몸은 녹초가 되기 마련이다. 작금의 현대인들에게 긍정적 자기 파괴를 통한 성장은 때론 사치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갖가지 제약이 극복되었다 해도 이 과정은 언제나 각오 이상으로 고통스럽다. 충분한 각오가 되어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지금 즉시 플랭크 3분 후 다시 글을 읽어 주시길.


그나마 위안인 점은 나에게만 고통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와드는 숙련자, 중급자, 초보자 단계로 구분하여 진행되는데(비기너의 경우 코치가 다른 동작을 정해주기도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각자의 한계를 마주한다. 운동을 잘해? 그럼 더 어렵게, 더 많이. 아직 연습이 필요해? 그럼 네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강도로. 그렇게 와드가 시작되면 각자의 시공간으로 향한다. 분명 시작 전에는 계획이 있었지만 정신 차리고 보면 타이머는 끝나있고 나는 아무렇게나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숨을 헐떡거리며 옆을 보니 다들 그러고 있다. 오늘은 정말이지 오기 싫은 날이었는데 역시 오길 잘했다는 생각에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지고 옆사람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서로를 격려한다. 와드가 끝나고 5~10분 정도 흐르면 호흡이 돌아오고, 정신도 따라서 돌아오는데 쿨다운을 하며 내가 와드 때 어떻게 동작을 수행했는지 촬영한 영상을 리뷰하곤 한다.


와드가 끝나고 눕는 것은 만국공통 (Wodnews.com)


#2-3. 성장

와드는 매일 수행하는 과제이자 목표다. 흔히 많이 비교하는 헬스와 더불어 다른 운동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 와드에 있다고 생각한다. 헬스는 비교적 자유도가 높다. PT를 받지 않는 경우 자신이 훈련 프로그램을 스스로 짠다. 어떤 부위를 어떤 방법으로 훈련할지 본인이 정해야 하고 이를 수행하는 방식이다. 크로스핏에서 와드는 이와 비교해 자유도는 낮은 편이다. 코치가 정해준 와드에 자신을 맞추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날의 와드가 턱걸이 10개-버피 10개-로잉머신 10칼로리를 10분 동안 순서대로 최대한 많이 하는 것이라고 하자. 내가 잘 못하는 턱걸이를 하기 위해서 철봉에 밴드를 달아서 다리에 끼운 후 수행해야 한다. 누군가는 로잉머신이 익숙하지 않아 남들보다 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써야 할 수도 있다. 이처럼 와드는 일종의 과제로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제에는 어떠한 보상이 주어질까. 과제를 수행함에 따라 주어지는 성취감, Small Sucess를 경험하는 것이 보상이다(수행능력 향상은 덤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이 부여한 과제를 완주함에 따라 부여되는 보상은 예상외로 내 안에서 생겨난다. 이는 다음 날 다시 박스를 찾아오게 만드는 매듭이 된다. 작지만 강력한 성취감은 누군가에겐 하루 중 최대의 보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따금 최악의 하루를 보낸 날이면 더욱이 박스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처럼 말이다.


 

와드 전 파이팅은 만국공통 (크로스핏 공식 홈페이지)


힘든 시기를 보내는 사람일수록 멘탈 샤워는 필요하다. 하루의 힘듦을 씻어 내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누군가는 음악을 듣고 누군가는 명상을 하거나 달린다. 그 방법이 어떤 것이든 자신만의 방법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방식이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것이면 더 좋겠다. 외롭거나 힘들고 세상 누구도 날 알아봐 주지 않을 때 나만은 나를 알아주고 보듬어야 한다. 세상이 나를 파괴시키려고 할 때, 보란 듯이 딛고 일어서야 한다.


나는 오늘도 박스에 간다.

작가의 이전글 크로스핏을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