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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호 Nov 29. 2020

『달과 6펜스』를 읽고

그대의 모든 행동이 보편적인 법칙에 맞을 수 있도록 행동하라

"그대의 모든 행동이 보편적인 법칙에 맞을 수 있도록 행동하라"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우리는 보편적인 삶(개인)이 모여 만들어낸 사회(집단) 속에 살고 있다. 타인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최소한의 규칙을 지키고, 때로는 개인의 이익보다 사회의 요구를 만족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찰스는 이 격언을 듣고 이내 곧 '돼먹지 않은 헛소리' 답했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잘나가는 40살 증권 브로커가 그림을 그리겠다는 이유 하나로 가족을 버리고 이민을 갔으니 그에게 보편성을 바라는 일이 오히려 보편적이지 않은 일이다.

                                 [『달과 6펜스』 초판의 속표지 겸 광고(1919) /사진=김병희 교수출처]


민음사에서 출간한 『달과 6펜스』의 작품해설에 보면 '이 소설은 <6펜스>의 세계에 대한 냉소, 또는 그곳의 인습과 욕망에 무반성적으로 매몰되어 있는 대중의 삶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라고 한다. 우리가 무반성적으로 매몰되어 있는 것들을 반추에 보면 개중에 대부분은 보편성을 강요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 잘나가는 증권 브로커처럼 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취준생이 대학을 졸업했는가? 대학에 가기 위해 피땀 흘려 공부하는 학생들과 부모의 노력은 언제, 어떻게 보상받는가? 학군에 맞춰 이사하기 위해 수많은 희생을 참고 견디는 현세대의 삶은 과연 진정한 행복에 다가가고 있는가.


나 역시 <6펜스>로 둘러싸인 삶을 살고 있다. 자기방어적인 측면에서 말하자면 보편성이 모두 세속적인 것은 아니다. 또한, 세속적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쁘지 않다. 경제적 자유와 풍요로운 삶을 위해 노력하는 순간들은 결과와 상관없이 모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보편성은 <달>로 향하는 길이 아님을 알기에 조금 슬플 뿐이다.


책을 읽는 내내 스트릭랜드의 무책임하고 무자비한 예술에 대한 집착이 불편하기도 했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오히려 그의 삶을 가득 채운 열망, 꿈, 삶의 목적이 부러웠다. 마치 태어난 이유를 찾아내서 꿈을 위해 남은 삶을 하얗게 불태운 사람처럼 느껴졌다. 적어도 그가 보여준 예술에 대한 헌신적인 노력만 놓고 본다면, 난 그의 삶에 '위대함'을 느꼈다.


또한, 그를 통해 배운 것들은 칸트의 격언처럼 나의 삶에 아주 작게 영향을 주었다. 예를 들어 찰스는 "죽음이 왜 중요하단 말인가"라며 상식적인 생각을 거부한다. 그에게 목숨이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당장 내일 죽을 것처럼 살기는 어렵겠지만 (아직 창창한 나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방향성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나의 오늘이 오두막에 그려질 최후의 걸작을 향한 길이기를

태우지 않고 후세에게 길이길이 기억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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