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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호 Dec 06. 2020

우리는 다른 이름의 『스토너』다.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를 읽고

책을 읽기 전 줄거리와 후기를 읽고, 본 작품을 감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문학의 경우, 읽기 전 줄거리나 구조를 머릿속에 담아두고 읽으면 꽤 도움이 된다. 초행길을 나서기 전에 목적지와 경로가 담긴 지도를 한번 쓱 훑는 느낌이다.


이번 책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도 시작 전 줄거리와 후기를 찾아보았다. 적지 않은 독자들이 이 책을 자신의 인생 책으로 꼽았다. 책과 관련된 이야기들도 흥미로웠다. 1965년에 출간되었지만 당시에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가 50여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대중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 이후 수많은 사람들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받아오고 있다는 사실들이 흥미로웠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을지라도 왜 그토록 소문이 났는지 확인도 해볼 겸, 나도 이번 기회에 인생 책을 찾게 되려 나하는 기대감으로 『스토너』를 읽어 나갔다.

『스토너』의 초판본 표지 삽화. 건물은 불타고 없어졌지만  기둥은 변치 않고 우뚝 서있다.

책의 주인공 스토너는 미주리 농과대학에 입학하고 2학년 때 기초교양으로 영문학 개론 수업을 듣게 된다. 수업 중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읽고 그는 가슴속에 알 수 없는 흥분을 느낀다. 그리고 아서 슬론 교수의 도움으로 자신이 교육자가 될 사람임을 깨닫게 된다. 스토너라는 방황하는 여행자가 소네트라는 이정표와 아서 슬론이라는 가이드를 만나게 된 장면을 나는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대 내게서 계절을 보리
추위에 떠는 나뭇가지에
노란 이파리들이 몇 잎 또는 하나도 없는 계절
얼마 전 예쁜 새들이 노래했으나 살풍경한 폐허가 된 성가대석을

내게서 그대 그날의 황혼을 보리
석양이 서쪽에서 희미해졌을 때처럼
머지않아 암흑의 밤이 가져갈 황혼
모든 것을 안식에 봉인하는 죽음의 두 번째 자아
그 암흑의 밤이 닥쳐올 황혼을.

내게서 그대 그렇게 타는 불꽃의 빛을 보리.
양분이 되었던 것과 함께 소진되어
반드시 목숨을 다해야 할 죽음의 침상처럼
젊음이 타고 남은 재 위에 놓인 불꽃

그대 이것을 알아차리면 그대의 사랑이 더욱 강해져
머지않아 떠나야 하는 것을 잘 사랑하리.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이후 그는 문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일을 평생의 직업으로 삼는다. 1,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쟁터에 뛰어들 때에도 그는 학교를 지켰다. 첫사랑의 실패, 친구의 죽음, 직장 동료와의 불화, 알코올 중독자가 돼버린 그의 딸처럼 스토너의 삶은 그에게 단 한 가지 기쁨, 학문 외에 그 무엇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어렵사리 찾아온 진정한 사랑(캐서린)도 떠나보내고 일터에서는 모욕(로맥스)과 멸시(워커)가 그를 줄곧 괴롭힌다. 휴식을 찾고자 집에 가면 히스테릭한 아내가 그를 냉담히 대한다. 하나밖에 없는 딸은 어머니의 질투심과 변덕에 지쳐 점점 그와는 멀어진다. 


이렇듯 쉴 새 없이 고통받는 그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의 가슴속에는 연민이 자리 잡는다. 측은한 마음으로 스토너를 바라보게 되지만 그는 그런 삶의 굴곡에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갈 뿐이다. 역정을 내거나 울부짖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마치 그 일은 독자가 대신해줄걸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 책은 신념에 관한 이야기기도 하다. 문학만을 위해 쉼 없이 정진하는 그의 모습은 한 인간의 신념을 지키는 일이 왜 숭고했는지를 보여준다. 비록 그 신념의 결과가 반드시 빛나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자신의 노력에 대한 보상과는 상관없이 순수한 열정으로 학문을 연구하는 스토너가 존경받아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이 책에 수많은 작가들이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는 이유와도 같다. 누구나 살면서 실존적인 결단력이 요구되는 순간을 맞지만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또한 신념을 굽히는 일 또한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기에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고 다독이며 나아가야 한다.


독한 삶이든, 화려한 삶이든, 스토너처럼 인내하는 수수한 삶이든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똑같다는 것. 그는 죽음을 앞둔 병상에서 같은 질문을 몇 번이나 되뇐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면 독자는 그동안 스토너를 향하고 있던 치유의 염원이 결국 독자 자신에게도 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올해 들어 우리에게는 유독 많은 어려움이 찾아왔다. 펜데믹으로 인한 공포. 일자리를 잃거나 불확실한 미래에서 오는 두려움, 무기력함 등 작년과 너무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다. 윌리엄 스토너의 고독과 뚝심을 응원하며 느꼈던 위로와 위안이 2020년의 우리들에게도 필요하다. 

또한 그가 인생의 황혼에서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 "넌 무엇을 기대했나?"는 독자들에게 묻는 것이기도 하다.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기 위해 우리는 각자의 역사를 반추하게 된다. 연말을 맞아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선물하는 기분으로 각자의 대답을 써 나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감옥과도 같은 고립감을 느꼈을 그를 응원했던 것처럼, 작금의 고독을 이겨 낼 수 있도록 모두를 응원하고 싶다는 말로 글을 마친다.


우리는 모두가 다른 이름의 스토너다.
For 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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